“품격과 절실함 더 보여주고 싶었다”…필리버스터 최장 기록 경신 김용태[스팟 인터뷰]
29일 오후 9시 47분.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이 13시간 12분에 걸친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이하 ‘EBS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마치고 본회의장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날 오전 8시33분에 시작한 김 의원의 반대 토론은 2020년 12월 당시 국정원법 개정안에 반대 토론자로 나섰던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12시간 47분보다 25분 긴 역대 최장 기록이다. 사회를 본 우원식 국회의장도 “대단히 수고했다”고 격려했고,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박수와 포옹으로 김 의원을 반겼다.
김 의원은 당초 35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바탕으로 4시간 정도 토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맹탕 필리버스터’라는 비판과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의 막말에 생각을 바꿨다. 김 의원은 31일 중앙일보에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때문에 야당이 각종 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화 이후 쌓아온 합의제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Q : 왜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섰나.
“사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폐기될 법안을 두고 벌어지는 필리버스터의 실효성에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방송 4법’(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EBS법)에 EBS법이 포함된 게 이해가 안 됐다. EBS는 MBC·KBS와 달리 정치적인 편향성 논란이 크지 않았고 교육 방송의 역할을 해오려 노력해왔다. 민주당의 방송 장악을 위한 무리수를 알리고자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Q :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을 경신을 염두에 뒀나.
“전혀 없었었는데, 28일 박선원 민주당 의원의 토론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박 의원이 여당 의원들에게 욕설과 조롱을 한 것이 너무 기분 나빴다.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여당보다 야당 의원이 더 오랜 시간 찬성 토론을 하자 당 내부에선 '여당의 필리버스터가 진정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서 품격을 갖춰 국민께 방송4법을 반대하는 진정성을 전달하려고 했다. 우리가 더 젊은 정당임을 보여주겠다는 오기가 들었다.”
김 의원은 필리버스터 동안 굶은 채 물만 마셨다. 사회를 본 국회의장의 양해를 구한 뒤 화장실을 세 차례 다녀왔다. 김 의원은 “이렇게 길어질 걸 알았다면 에너지바라도 준비했을 것”이라며 “구두를 신었는데, 종아리부터 허리까지 올라오는 통증 때문에 마지막에는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Q : 필리버스터 동안 여야 의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중간에 말을 끊지 못하니 추 원내대표와 정희용 의원이 스케치북에 ‘몸은 괜찮냐’고 써와서 내 컨디션을 확인하고 갔다. 나경원·박덕흠 의원 등 동료 의원들이 당번도 아닌데 본회의장을 찾아와 격려해줬다. EBS 편성표를 두고 일부 야당 의원들과 설전은 있었지만, 평소 친분이 있던 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사진도 찍어주는 등 대부분은 경청했다.”
Q :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는 법안을 왜 자꾸 강행처리할까,
“이재명 전 대표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의사일정부터 법안 처리까지 여야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정치 문화를 만들어왔다. 22대 국회는 여소야대라지만 합의제 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다. 민주당은 팬덤을 앞세워 합의제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다.”
Q : 야당의 독주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 어디서 끊어야 할까.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해병순직 사건과 김건희 여사 의혹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춰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야당과 타협은 할 수 없지만, 두 과제에 대해 현명한 답을 내놔야 한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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