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넛 유심히 보세요... 지구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Planet B(제2의 지구)가 없기에, Plan B(플랜 B)또한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유명한 표어 중 하나입니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플랜 A를 선택해야 할까요? 유일하고 유한한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지구를 위한 플랜 A를 제안합니다. <기자말>
[그린피스 신민주 캠페이너]
▲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영국의 (당시) 리시 수낵 총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로 분장한 독일 자연보호청년회 활동가들이 2023년 8월 2일 '오버슈트데이'를 맞아 독일 베를린의 총리청 앞에서 지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EPA/연합뉴스 |
오버슈트데이(Earth Overshoot Day)라는 것이 있다. 오버슈트데이는 해마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지구의 연간 생태 자원 용량을 모두 써버린 날을 뜻한다. 한글로 표현하면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로 번역할 수 있다.
오버슈트데이가 한 해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지구의 자원을 모두 소모한 날을 뜻하기 때문에, 오버슈트데이 이후의 인류는 한 해가 끝날 때까지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 써야 한다.
애석하게도 거의 매년, 오버슈트데이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1970년대에는 12월이었던 전 세계의 오버슈트데이는 2024년에는 오늘인 8월 1일로 바뀌었다. 한국의 오버슈트데이는 훨씬 빠르다. 한국은 이미 올해 4월 4일에 오버슈트데이가 지나갔다. 전 세계가 한국처럼 자원을 빠르게 소진한다면, 우리에게는 한 개의 지구가 아닌 적어도 3.8개의 지구가 필요할 것이다.
오버슈트데이가 조금씩 빨라지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는 기후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개발된 슬로건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라는 말을 완전히 반대로 적용한 '더 소비하고 덜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지구는 우주 바깥에서 볼 때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보일 만큼 젊은 행성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래의 자원까지 마구 당겨써야 하는 처지의 행성으로 지구가 남게 될 때, 그 내부의 지구 생태계는 그 어떤 것보다 빠르게 늙어갈 것이다. 젊은 행성 위에 존재하는 늙은 세상은 인류를 포함한 자연을 위협한다. 허용된 속도보다 빨리 성장하겠다는 다짐은 결국 고갈과 소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다만 자원의 문제로만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 도넛 경제학이 제시하는 도넛 경제 모델. |
ⓒ Doughnut Economics Action |
2010년대 말,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둥그렇게 생긴 도넛 모양 그림 하나를 경제 모델로 제시했다. 우상향하거나 우하향하는 그래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점과 선이 아닌 면으로 된 둥그런 도넛 모양을 제시한 것은 분명 새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이에 더 나아가 우리가 모두 그 도넛 모양의 그림 위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이트 레이워스의 설명에 따르면, 도넛의 경계면 안쪽은 사회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삶의 존엄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영역을 상징한다. 각 영역에 대한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회 구성원들은 교육이나 의료, 민주주의, 주거나 식수와 식량 부족 문제 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부족만큼 과잉도 위기를 초래한다.
도넛의 경계면 바깥쪽은 유한하고 유일한 지구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생산되고 폐기될 때 발생하는 위협을 뜻한다. 생태계 파괴, 오존층 파괴, 대기 오염 등 기후위기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경제 이론들이 어떻게 하면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집중했다면, 케이트 레이워스는 성장 또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와 같은 도넛의 경계면 바깥의 위협은 흔히 우리 사회에서 도넛의 경계면 안쪽의 위협보다 덜 임박한 문제로 여겨진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을 논할 때 빈곤과 주거, 교육과 복지, 식수와 식량 등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지만, 자연의 파괴는 자주 거론되지 않는다. 미래에 일어날 비극을 쉽게 현재에 체감하기는 어려운 일인 까닭이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당겨서 쓰는 일은 충만한 현재를 위해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만, 항상 기대한 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미래의 자원이 충만한 현재의 '질'을 만드는 대신 오로지 '양'만을 늘리는 데 집중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GDP(국내총생산)의 향상을 경제의 최우선 목표로 세우고 있지만, GDP는 사회 전반적인 평등과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GDP가 도넛 경제 바깥쪽의 환경 파괴를 측정하는 수치로도, 도넛 경계 안쪽의 내용(교육, 의료, 민주주의, 주거 등)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수치로도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년 한국에서 대규모 인명과 자연, 재산의 피해를 낳는 기후재난은 GDP의 측면에서는 플러스(+) 요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 기후재난 복구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의 가격도 GDP의 숫자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숫자로는 때로는 시장의 가치 이외의 것들을 포괄할 수 없는 법이다. GDP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이 필요하고, 더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이론의 근거들은 대부분 그렇다.
그렇다면, 미래의 자원까지 끌어다 쓸 만큼 가쁘게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던 한국 청년들은 어떤 현재를 맞이하고 있을까?
▲ 2024년 5월 취업자 수 증가폭이 기상여건 악화와 조사기간 휴일 포함 등에 따라 39개월 만에 최소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고용센터에 마련된 구직상담, 구직등록 창구. |
ⓒ 연합뉴스 |
최근 들어 '그냥 쉬었음'이라는 설문조사 문항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지난 6월 통계청 국가통계포털과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 등에 따르면 일도, 구직활동도, 직업 훈련도 받지 않고 한 해 동안 '그냥 쉰'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청년이 40만 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국가통계포털에 잡힌 NEET 청년의 수는 전체 청년의 수의 4.9%이기에 절대다수는 아니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소진감을 느끼는 청년'은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 되면 SNS 중 하나인 X(구 트위터)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개쓰레기 요일"이 찾아왔다는 분노를 쏟아내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에 등재되고, 한국은 여전히 OECD 자살률 1위이며, MZ 세대의 빠른 퇴사가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된다.
더 빨리 성장해야한다는 말 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없는 세상에서 지구만큼이나 인간도 빠르게 소진된다. 내 옆의 사람을 돌보는 것도,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경제의 규모를 늘리는 것과 상관없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경제의 질, 즉 지구 위에 사는 존재들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양적인 확대를 위해 미래의 힘을 모두 끌어다 쓰면서 다가올 황폐화된 미래를 걱정하는 삶은 지구와 인간 모두에게 가혹하다. 이 모든 것은 '어떻게 함께, 지구를 원래의 속도만큼 천천히 늙어가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유한한 지구에서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기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라 사회의 선택과도 연결된다. 더 많은 삶의 선택지를 가지는 것은 나의 의지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상황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구를 위해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일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단열이 보장된 주택일 수 있다. 자연을 가꾸고, 남을 돌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여가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더 좋은 삶이 좋은 차를 사는 것, 좋은 집을 가지는 것만이 아니라면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경제가 꼭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 늙어가는 지구 위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면 경제의 목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노력을 시작한 나라도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2019년에 경제 성장이 아닌 구성원의 행복에 초점을 둔 '행복예산제(Wellbeing budget)'를 채택한 바 있다. 노원구에서는 일상에서 온실 감축 방법을 고민하며 정책에 대해 말하는 '1.5도 라이프스타일'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에, 미래를 만드는 것에, 삶의 질을향상하는 것에 예산을 투여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종은 강한 종도, 똑똑한 종도 아닌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좋지 못한 쪽으로 빠른 변화가 시작된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모두가 살아남는 방법은 조금 더 천천히 사는 방법을 익히는 노력으로 가능하다. 조금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며, 더 존재하기. 지구의 서버 종료 대신, 변화를 만들어 가자.
덧붙이는 글 | 그린피스는 지구와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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