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도배 中가정집서 "남부지검입니다"…14억 뜯은 그놈 잡았다 [영상]
" 잘 생각을 해보세요. 개인정보가 이미 유출된 거잖아요. "
꽃무늬 벽지로 도배된 중국의 한 가정집. 검정색·연두색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남성이 자신을 ‘남부지검 수사관’이라고 소개하며 누군가와 통화한다. 그는 한 손에 펜을 든 채 수화기 너머의 상대를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다른 업무를 보고 있었다면 중단하라” “본인이 어떤 행동을 하든 저희 쪽에 기록이 남아야 한다” “도착 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며 채근하고 압박한다.
이 남성이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런 방식으로 갈취한 돈은 모두 14억여원. 범정부 차원 보이스피싱 합동단속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 거점 조직의 범행은 계속됐다. 하지만 이들이 꼬리를 밟힌 건 지난해 3월이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경찰이 공조해 추적한 끝에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과정까지 포착했다.
국정원은 검찰, 금융감독원, 은행 등을 사칭하며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금전을 편취한 중국 소재 보이스피싱 총책 이모(30대·중국인)씨와 최모(30대·한국인)씨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들 조직은 검찰 수사관과 금융감독원, 은행 직원 등을 사칭해 피해자들이 범죄에 연루됐다고 협박하거나 저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고 속여 금전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은 해당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일반 기업체의 운영방식에 버금갈 정도로 체계적인 범행 매뉴얼을 갖췄다고 전했다. 상담 역할을 맡은 조직원들을 자체 제작한 ‘피싱용 양식’에 따라 ▶피해자의 신원 사항 ▶직장정보(재직기간과 연봉 등) ▶금융정보(대출 여부·신용카드 개설 연도 등) ▶휴대전화 기종 등을 일목요연하게 기입해 범행에 활용했다. 이들 조직은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이라며 피해자를 속이는 범행 시나리오와 ‘서울중앙지방법원’ 명의의 가짜 구속영장도 만들어 피해자 협박에 활용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실시간으로 입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행 장소와 시간, 수금책의 인상착의 정보 등을 경찰청에 넘겨 지원을 요청하고, 그 즉시 관할경찰서에서 긴급 출동하는 방식으로 공조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취업준비생, 군인, 대기업 직원 등 28명을 대상으로 한 총 9억 3000만원의 피해를 사전에 막는 데도 성공했다고 한다.
지난 4월 26일 국정원이 보이스피싱 범죄 정보를 제공한 지 1시간 만에 경찰이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일도 있었다. 국정원은 당시 낮 12시 “수금책이 20대 여성 피해자의 용산 집으로 이동할 예정”이라는 정보와 함께 파란색 상의에 검정색 바지를 입었다는 수금책의 인상착의를 경찰에 넘겼고, 경찰청은 5분 뒤 용산경찰서에 경찰 투입을 긴급 지시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곧장 수금책을 검거하며 5000만원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추적 활동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국내 단순 수거책 검거보다는 범행을 주도하고 있는 해외 원점을 타격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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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보이스피싱 다시 증가세…합수단 활동 1년 연장
2022년 7월 범정부 차원 보이스피싱 합동수사단 출범 이후 감소세였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올해 상반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적신호가 켜졌다. 이에 정부는 검찰·경찰·금융감독원·국세청·관세청 등 7개 기관 합동수사단의 활동 시한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합동수사단(단장 홍완희 부장검사)에 따르면 2021년 3만982건(피해액 7744억원)에 달했던 보이스피싱 피해는 지난해 1만8902건(4472억원)으로 줄었다가 올해 1~6월 1만52건(3242억원)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합수단 측은 그 배경으로 “고령자 등 대상의 스미싱 문자와 악성 앱 유포 등 범행 수법이 고도화되고, 조직적인 비대면 사기 범죄가 진화하는 양상”이란 점을 꼽았다.
홍완희 합수단장은 이날 “한명에게 거액을 뜯는 과거 전통적인 사기 방식에서 벗어나 요즘엔 범죄 집단이 5000만 국민을 대상으로 비대면 범죄를 기획한다”며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체포·구속영장·수사개시통보서 등 서류를 보내면 100% 가짜”라고 말했다.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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