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법, 민주당 제동” 한동훈에 野 반발…속기록선 행정처도 우려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블랙요원’ 정보 유출 관련, ‘간첩법’ 개정 불발 원인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포문을 연 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다. 한 대표는 30일 페이스북에서 “21대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간첩법(형법) 개정이 무산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국적 동포 등이 대한민국 정보요원 기밀 파일을 유출했지만, 황당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간첩죄로 처벌 못 한다. 우리 간첩법은 ‘적국’인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 대표가 언급한 간첩법은 형법 제98조에 규정된 간첩 개념을 확대하는 법 개정안을 뜻한다. 현행법에선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자,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를 간첩죄로 처벌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만을 뜻한다. 이때문에 21대 국회에선 적국뿐만 아니라 ‘외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 제98조에 외국을 포함시키는 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다. 이 중 3건(김영주ㆍ홍익표ㆍ이상헌)을 민주당이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한 대표는 “정작 심의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법 개정이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31일 “가짜뉴스”라며 반발했다. 김민석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한 대표는 전형적인 소탐대실형 헛똑똑이”라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 시절 법원행정처가 강력하게 반대해서 여야 의원이 공히 법 보완을 주문했던 정황이 국회 속기록에 다 나와 있다. 책임이 있다면 본인이 더 크고, 그리 통과시키고 싶었다면 본인이 장관 시절 노력했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박주민 의원도 “당시 법원행정처와 법무부 간 합의안 마련과 이견 조율을 위해 심사가 진행됐고, 국민의힘 의원님들 또한 우려점을 개진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속기록에 따르면 당시 법원행정처가 법 개정에 난색을 표하자 민주당 법사위원이 공감하는 대목이 나온다.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은 “군사기밀보호법 상 군사기밀에 해당하지 않는 정도의 국가기밀을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에 대해 탐지, 수집, 누설하는 경우 모두 중한 형으로 처벌하는 게 타당한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우방국, 동맹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과 적국, 준적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 종류는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펼쳤다.
이에 민주당도 “간편하게 다 간첩으로 싹 몰아서 세게 규율하는 건 너무 단순한 사고”(박용진), “간첩죄로 규율한다면 ‘이런 행위가 앞으로 간첩’이란 걸 알리고 공감을 얻는 시간이 필요하다”(권칠승)고 호응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법원행정처가 입법적 검토가 좀 필요한데 그 부분에 대한 준비가 굉장히 안 돼 있다. 지난번 논의 이후 한 단계도 진전된 게 없다”(유상범)며 추가 논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소병철 소위원장이 “소위에서 계속 심사하자”고 하자 양당 모두 동의했다. 이후 법안은 소위에 계류하다가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민주당은 23일 박선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간첩법 개정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해당 법안은 형법 98조에 ‘외국 등을 위한 간첩죄’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21대 때 양당이 추진하던 법안과 같은 취지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민주당은 간첩죄 개정에 앞장서왔다. 한 대표 주장은 오만방자한 책임회피”라며 “윤 대통령은 안보참사에 대해 안보 책임자를 즉시 경질하라”고 주장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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