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방적공장 취직한 10대 소녀들... "이게 민중의 역사"
[성하훈 기자]
▲ 조선인 여공의 노래 한 장면 |
ⓒ 시네마달 제공 |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1910년 이후 오사카의 방직공장에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제의 착취와 압박으로 피폐한 현실을 버티다 못해 살길을 찾아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일본으로 온 것이었다.
12세 어린 소녀부터 27세 정도의 여성들이었다고 하나 10대 소녀들이 절대 다수였다. 1920년~1930년대 늘어난 여공의 수는 한때 3만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일제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조선인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종군 위안부 등으로 넘기기 이전부터 반도의 여성들이 일본의 방직산업을 지탱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이들이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향한 이유는 기숙사도 제공해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사탕발림식 선전에 속은 면도 있었다. 배고픔이 일상이고 삶을 지탱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뭔가 집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작용했을 터.
하지만 현실은 듣던 것과는 달랐다. 주야교대로 일해야 했고, 야간작업 중 졸음 때문에 사고도 발생했다. 조선 여성들에게 향한 무시와 괄시, 열악한 환경 등을 버티다가 건강이 나빠져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일찍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 여성은 강인했다. 수많은 차별과 폭력 속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힘을 합쳐 부당함에 맞섰고, 먹을 것이 없어서 일본인들이 '쓰레기'라며 버리는 소 돼지의 내장이라도 구해서 먹었고, 한글을 몰라 억울할 때는 직접 야학을 열어 한글을 깨우쳤다. 이국 땅에서 서러울 때마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부르며 이겨냈다.
▲ 30일 오후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조선인 여공의 노래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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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일 개봉하는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그간 대중들이 잘 몰랐던 오사카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다. 100년 전의 여성 노동자의 삶을 현재화시킨 작품이기도 한데 다큐멘터리 영화라고는 해도 배우들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극 영화적 구성이 곁들여 있다는 점은 일반적인 다큐 영화의 구성과는 다르다. 현재의 소녀들이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전개는 공들인 영상과 함께 신선함을 안겨준다. 조선인 여공들의 삶에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는 장치로서 작용하는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혼재된 독특한 작품이다.
30일 오후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연출한 이원식 감독은 제작 경위에 대해 "2017년 일 때문에 오사카 하루키 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오래된 붉은색 벽돌 담장에 새겨진 십자가를 보았다"며 "조사해 보니 그건 여공들이 일했던 공장 담벼락에 감긴 철틀의 흔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1910년 이후 오사카 여성 노동자들은 경제가 어려운 시기 일본으로 향했고, 속아서 간 부분도 있지만 정신대 등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기에 조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감독은 또한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담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감독은 "지금도 전 세계에는 침략과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분쟁과 가난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난민 등을 예로 들었다.
이 감독은 "어린 소녀들이 돈을 벌어 고국에 송금한 것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고 근현대사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우리에게도 1960년대 독일로 갔던 광부와 간호사, 1980년대 중동 건설 현장에 갔던 노동자들의 역사가 있다. 지금은 외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 있기도 하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1920년대 조선인 여공들의 삶을 그들이 남긴 기록이나 생존 인물들의 증언으로 그리고 있다. 당시에 남긴 놓은 흔적을 후세들이 볼 수 있게 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 극영화 형식으로 당시를 재현한 배우들은 모두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교포 4세들이다.
강하나 배우는 일본 종군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한 <귀향>,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등에 출연해 낯익은 배우다. 어머니가 만든 극단에서 4살 때부터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영화가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뜻깊은 영화가 될 것 같았고, 구체적으로 모르는 부분들이 많아서 참여하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촬영하면서 자이니치 4세로서 큰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강하나 배우는 "우리의 이야기고 친구 할머니의 이야기인데 조선 여공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으나 이번에 알게 됐다"라며 "자이니치 차별에 문제 제기한 할머니들 이야기에 자이니치로서 힘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 '조선인 여공의 노래' 제작진. 왼쪽부터 정진미 프로듀서, 강하나 배우, 이원식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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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미 프로듀서는 "일본에 조선인 여공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자료도 많지 않아 책과 논문을 찾고 번역을 붙여가며 하나하나 공부했다"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많은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원식 감독에 따르면 다큐에 등장한 일본인 목사는 조선인 여공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 기록 작업을 했던 분이다. 일본 사회는 왜 이 내용을 알리거나 기록하지 않나 생각해 다큐든 뭐든 만들게 되길 기다렸다고 한다. 이 감독은" 누군가 정리한 분이 계실 것이라는 생각에 수소문해서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내놓은 이원식 감독은 100년 전의 모습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거급 강조했다.
이 감독은 "1910년대 이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통, 차별과 인내의 시간을 겪어왔던 많이 알려지지 않은 민중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한국 사회도 힘든 상황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가정을 지키려 했던 분들을 통해 긍정적인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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