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할 고충 해결" 충남도가 여성농민 위해 설치한 것
[이재환 기자]
▲ 지난 25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의 한 비닐하우스 앞에는 여성농민을 위한 간이 화장실이 설치됐다. |
ⓒ 이재환 |
들판이나 농지에서 일하는 여성 농민들에게 대소변과 같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농경지가 노출이 쉬운 벌판 혹은 노지이다보니, 그나마 몰래 숨어서 볼일을 보기도 어렵다. 여성농민들은 모기와 뱀 등에 물릴 위험까지 감수하며 풀숲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도 한다. 일부 여성농민들이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커피는 고사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충남도가 올해 처음 시행한 여성농민을 위한 간이 화장실 설치 지원 사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간이 화장실을 설치한 여성농민들도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충남도는 올해초부터 '여성농업인 지원 정책'의 하나로 여성농민들의 일터인 농지에 최근 21개의 간이 화장실이 설치했다. 도내에 14개 시군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치 숫자는 미미한 편이다. 정책 시행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다. 그럼에도 농지에 간이 화장실을 설치한 여성농민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친환경적이고 냄새도 안 나, 만족"... 설치조건 완화는 숙제
지난 30일 기자는 충남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에 있는 한 농장의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이 농장에는 지난 25일 여성농민을 위한 간이 화장실이 설치됐다. 이웃한 4개 농가가 모여 홍성군에 '간이 화장실 설치'를 신청해 설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간이 화장실의 관리는 농장주인 여성농민 A씨가 맡았다.
A씨는 "(간이 화장실이 없을 때는) 우리 농장으로 일을 하러 왔던 지인의 경우, 화장실에 가기가 불편하다며 물도 마시지도 못하고 일을 했다"라며 "게다가 농장주가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에 실습을 나온 예비 여성 농민들의 고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성들은 노지에서 소변과 같은 생리현상을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 농민들은 풀숲에서 모기와 뱀 등에 물릴 위험을 무릎쓰며 생리현상을 해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간이 화장실 설치와 관련해 A씨는 "설치한 지 얼마 안됐지만 만족스럽다. 품앗이를 하러 오거나, 아르바이트를 온 분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편해졌다. 미생물 처리로 친환경적이다. 냄새도 안난다. 캠핌카 안에 있는 화장실처럼 물 사용량도 적다"고 전했다.
A씨의 농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며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B씨도 "농촌에서 현장실습을 하는 '예비 여성농민'들은 지인들의 경우, 아예 커피와 물을 마시지 않고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화장실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장주가 남성인 경우,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다. 아예 '물을 안먹고 버텼다'고 얘기 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전했다.
▲ 간이 화장실 내부의 변기 모습. |
ⓒ 한성숙 |
부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 충남도연합 사무처장은 "해당 사업은 충남지역 여성농민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성농민들의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개선해야할 부분도 있다. 우선 설치 조건이 까다롭다. '공공화장실에서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하고, 3가구 이상이 공동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깊은 산속이 아닌 이상 이런 조건에 해당 되는 곳은 많지가 않다. 산속 농가의 경우에도 사람이 없어서 3가구 이상 모이기도 어렵다. 내 경우에도 조건이 맞지 않아서 간이 화장실 설치를 신청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을 하는 도중에 볼 일을 보기 위해 5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으로 가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마을 회관 화장실도 개방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작업장과 가까운 곳에 친환경 간이 화장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의견을 취합해서 도에 건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충남도 "추이 지켜 보며 설치 확대해 나갈 것"
충남도에 따르면 도는 올해 간이 화장실 설치 목표를 75개소로 잡고 있다. 총 사업비는 2억2500만 원이다. 도비 5400만 원, 시군비가 1억4850만 원이다. 자부담이 2250만 원이다. 비율로 환산하면 도비 24%, 시군비 66%, 자부담이 10%이다.
충남도청 농업정책과 관계자는 3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올해 처음하는 사업이다보니 개선할 점이 있다"면서도 "추이를 지켜 보고 내년도 예산을 반영할 때 좀더 확대 설치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록 간이 화장실이지만 냄새가 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소변과 대변이 분리 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대변은 발효가 되면 퇴비로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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