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서울다운’ 문화 활동, 등산과 독서

2024. 7. 3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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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본 서울의 문화생활
세계 도시문화포럼 보고서
山 많은 서울 녹지비율 28%
등산은 시민들이 즐기는 문화
도서관·책 대여 총수 상위권
‘책 안 읽는다’는 비판에 의문
70년대 대학문화 깊은 관련
박물관·미술관 숫자 세계3위
세계적 랜드마크 없지만
문화 인프라는 글로벌 수준

‘글로벌’이라는 말은 2020년대 들어와서 그리 많이 들리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글로벌’을 통해 오랜 시간 형성된 자유무역 질서는 언젠가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비해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위협과 정치적 갈등이 커졌고, 기후 위기의 양상도 극심해지면서 미래를 향한 꿈을 꾸는 이들보다 생존 자체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늘었다. 그렇다 보니 ‘글로벌’이라는 말은 어느덧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까지 들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지구가 계속 작아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고 보면 글로벌화의 황금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기관과 조직들의 활동 결과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이 가운데 세계 주요 40여 개 도시의 문화생활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연구하는 세계도시문화포럼(World Cities Culture Forum)이 있다. 지난 2013년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여기에 가입한 서울시의 문화생활 현황 역시 이곳의 데이터를 통해 살필 수 있다.

2012년 런던시 주도로 창립한 세계도시문화포럼은 시민들의 문화생활 육성을 위한 세계 여러 도시 정책 비교 촉진을 목표로 삼았다. 60여 개 항목을 ‘기본 데이터’,‘ 문화 인프라’, ‘문화 참여와 관광’, ‘창조경제’, ‘교육’ 등 크게 다섯 범주로 묶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으며, 문화생활 관련 정책과 현황에 관한 도시 문화 관련 보고서를 내고 있다. 다섯 개 범주의 하부 항목은 총수, 퍼센트, 10만 명 당의 통계 등이 있는데, 이 중 퍼센트와 10만 명당 통계는 정확한 비교에 큰 도움이 된다. 개별 도시들이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처리 방식도 조금씩 다르고 데이터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연도 역시 차이가 있긴 하다. 데이터 축적 외에 교류의 촉진을 위해서 해마다 총회를 여는데 2017년에는 서울에서 열렸다.

다섯 개 범주에서 서울은 어디쯤 있을까. 우선 ‘기본 데이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외국 출생 인구 비율’과 ‘공공녹지 공간 비율’이다. 서울의 경우 약 4%가 외국에서 태어났는데 이는 32개 도시 중 적은 편에 속하긴 하지만 이웃 도시인 도쿄와 타이베이보다도 높고, 이민국의 역사가 긴 브라질 상파울루나 국제적 이미지가 강한 홍콩보다도 높다. 녹지 공간 비율은 약 28%로 이는 33개 도시 중 중간 정도 위치다. 도쿄 7.5%, 타이베이 6.6%보다 훨씬 높은 셈인데 서울에 공원이 많아서라기보다 도시 안에 산이 많기 때문이다. 등산은 서울 시민들이 많이 즐기는 ‘서울다운’ 문화생활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진=조용준 기자

‘문화 인프라’는 하부 항목이 가장 많은데 그 가운데 10만명 당 서점 수는 5.3개로 33개 도시 중에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도서관은 10만 명당 11.5개로 2위를 차지했고, 책 대여 총수는 10위였다. 이렇게 보면 서울은 독서가 활발한 도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최근에 자주 회자하는 “한국인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비판에 의문이 생긴다.

서울의 독서 문화는 1970년대부터 형성한 ‘대학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고 등산과 나란히 ‘서울다운’ 문화 활동으로 꼽을 수 있겠다. 최근 활발한 양상을 보이는 다양한 독서 모임과 독서 블로그 등은 이러한 ‘전통’의 새로운 표출로 볼 수 있겠다. 이밖에 박물관과 미술관 숫자는 파리와 LA에 이어 3위, 화랑은 뉴욕, 파리, 런던에 이어 4위, 연극 극장 수는 5위, 영화극장 수는 7위, 영화제 개최 건수는 4위로 나타났다. 이렇게 보면 서울은 역사가 오래된, 랜드마크 같은 박물관이나 극장은 없지만, 문화예술 인프라로만 보면 거의 세계 톱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 참여와 관광’ 범주를 보면 시민 참여 비율은 문화 인프라 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년에 박물관, 미술관, 화랑 등을 방문하는 서울의 생산 가능 인구 비율은 약 25%로서, 이는 21개 도시 중 15위다. 가장 높은 런던은 61%였다. 인프라 순위는 높지만, 그만큼 이용하는 이들이 적다는 방증이다. 다른 도시 시민들에 비해 긴 노동 시간과 오랜 통근 시간 탓이 아닐까 짐작한다. ‘외국인 관광 통계’는 2010년 통계의 총수로 보면 33개 도시 중 홍콩과 런던에 이어 3위를 차지했는데, 인구 퍼센트로는 175%인 11위를 차지했다. 최근 과잉 관광객 반대 시위가 일어난 바르셀로나는 3위를 차지했는데 무려 521%를 나타냈다. 서울보다 바르셀로나가 외국인 관광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창조 경제’ 범주의 고용 비율은 흥미롭다. 32개 도시 중에 3.73%로 26위를 차지한 이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한 도시는 바르셀로나였다. 창조 경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또한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했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서울이 낮은 등수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 범주가 있다. 성인 중 대학 졸업 비율은 28개 도시 가운데 39%, 15위다. 가장 높은 도시는 61%로 나타난 멜버른이지만, 젊은 세대 중심으로 계산하면 서울도 비슷한 비율일 것이다. 유학생 총수는 10위를 차지했는데, 비슷한 인구수인 뉴욕이나 도쿄보다는 낮지만 유학생 유입 역사가 훨씬 짧다는 것을 고려하면 대학의 국제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 경제 성공 요건 중 하나인 미술과 디자인 교육 기관을 보면 일반 대학 미술과 디자인 전공 학생 수는 20개 도시 중 1위, 전문학교 포함할 때도 1위다. 서울은 창조 경제 발전에 중요한 자산을 확보한 셈이다.

세계도시문화포럼의 데이터 안에서 서울은 이미 문화적으로 세계 주요한 도시가 되어 있다. 파리나 런던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적 랜드마크가 없긴 해도 문화 인프라와 창조 경제 관련 교육 기반이 세계 많은 도시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다. 그렇게 보자면 서울의 문화 정책은 뭔가를 더 짓거나 만드는 인프라의 확장보다는 이미 있는 곳들의 ‘활용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에 방점을 찍는 쪽이 훨씬 필요해 보인다. 이를 다름 아닌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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