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예산은 기재부 예산실 소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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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의 한 예산실 간부는 왜 예산요구서를 공개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신 예산요구서의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예산편성에서 국민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기여한다"고 판결했다.
기재부는 정부 예산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다.
정당성이 아니라 제도만 따져도 예산요구서는 당연히 공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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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요구서를 보면 우리가 어떤 예산을 삭감했는지 알려지잖아요. 그러면 어떤 부서에서 누가 그걸 주도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요. 담당 사무관한테 아마 항의 전화가 쏟아질 텐데 정상적으로 업무가 되겠어요?”
기획재정부의 한 예산실 간부는 왜 예산요구서를 공개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예산요구서란 정부 부처가 기재부에 예산을 달라고 요청하는 문서다. 기재부는 예산요구서를 바탕으로 예산을 늘리거나 줄인 뒤 정부 예산안을 만든다. 기재부는 민원이 늘어나고 업무가 과중해질 수 있다며 예산요구서를 비공개하고 있다.
사법부의 생각은 다르다. 기재부는 언론사 및 시민단체와 예산요구서 공개를 놓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1심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은 기재부의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재판부는 “업무 과중 등 피고(기재부)가 주장하는 사정들은 막연한 추측 내지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신 예산요구서의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예산편성에서 국민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기여한다”고 판결했다.
국회의 예산편성 과정을 생각해보면 기재부의 걱정은 과도한 우려다. 기재부는 정부 예산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다. 정부안과 국회안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두 예산안을 양쪽에 놓고 비교·분석할 수 있다. 국회가 어떤 예산을 자르고 추가했는지, 어떤 지역구의 예산이 증가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예산을 깎은 국회의원이나 보좌관, 비서관들이 전화 폭탄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평가, 감시, 감독이 이뤄질 뿐이다.
혹 국민들이 기재부의 예산 구조조정에 무작정 분노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 국민들은 오히려 무분별한 포퓰리즘을 더 싫어한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를 위해 필요 없는 예산을 늘릴 때,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깐깐한 검증 없이 예산이 편성될 때 “내 세금을 이렇게 쓰느냐”고 소리친다. 만약 기재부가 구조조정으로 소중한 예산을 절약했다면 숨길 게 아니라 국민에게 자랑하고 홍보해야 할 일이다.
정당성이 아니라 제도만 따져도 예산요구서는 당연히 공개돼야 한다. 국가재정법 16조에 따르면 정부는 ‘예산과정의 투명성’과 ‘예산과정에의 국민참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투명한 예산편성이 이뤄지려면 각 부처가 처음 작성한 예산요구서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한창 예산논의가 진행될 때 예산요구서를 공개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최종 예산안이 나온 뒤 공개하면 그만이다. 예산요구서를 본 국민의 목소리는 기재부가 판단해 다음 해 예산안에 반영하면 된다.
예산은 기재부 예산실 소유가 아니다. 국민들이 힘겹게 벌어 낸 세금으로 조성한 국민들의 재산이다. 내 세금을 정부가 어떻게 예산으로 활용했는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을 ‘정당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기재부는 1심 패소 후 항소했지만, 정작 항소이유서는 아직 제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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