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스타 이소룡을 '레전드'로 만들어준 영화

양형석 2024. 7. 3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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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이소룡 주연의 미국과 홍콩 합작영화 <용쟁호투>

[양형석 기자]

194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고 이소룡은 어린 시절 홍콩에서 자라며 무술을 배웠다. 하지만 이소룡은 학창시절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소룡의 아버지는 불량학생으로 자라는 아들을 두고 볼 수 없어 이소룡을 미국에 있는 고모에게 보냈다. 미국 이주 후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이소룡은 1960년대부터 액션영화와 TV시리즈에 출연하며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이소룡은 TV시리즈 <그린호넷>에서 케이토 역으로 주목 받기도 했지만 조연이나 카메오 출연을 전전했고 결국 '아메리칸 드림'을 포기하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이소룡은 홍콩으로 돌아와 1971년 <당산대형>, 1972년에는 <정무문>을 크게 흥행시켰고 영화사 협화전영공사를 설립해 자신이 감독과 주연, 제작, 각본을 맡은 <맹룡과강>으로 다시 한 번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그렇게 1970년대 홍콩 최고의 액션배우로 군림하던 이소룡은 미국의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액션영화 한 편을 공동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이소룡은 미국으로 컴백해 찍은 이 영화를 통해 서구권에서 '브루스 리'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인지도를 얻었다. 할리우드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소룡이라는 동양배우를 일약 '레전드 액션스타'로 만든 영화 <용쟁호투>였다.
 
 이소룡은 <용쟁호투>를 통해 '주연'으로 미국시장에 컴백했다.
ⓒ 동아흥행(주)
 
두 나라 이상이 제작에 참여한 합작영화들

흔히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이 문장은 영화에서도 얼마든지 통용될 수 있다. 실제로 영화 제작사들은 더 높은 흥행성적을 위해, 또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나라의 제작사와 투자사, 또는 영화인들과 힘을 합쳐 영화를 만다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2개 이상의 나라가 동시에 제작에 참여하는 소위 '합작영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합작영화 중 하나는 역시 미국과 영국의 합작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다. <해리포터>는 영국의 작가 J.K 롤링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미국의 워너 브라더스와 1492픽처스, 영국의 헤이데이 필름스가 합작해 만든 시리즈다. 배급은 미국의 워너 브라더스가 맡았지만 다니엘 레드클리프를 비롯해 엠마 왓슨, 루퍼트 클린트 등 영국배우들이 주요배역을 연기했다.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미국과 엄청난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중국도 서로의 장점을 국대화하기 위해 여러 합작영화를 만들었다. 그 중 지난 2018년에 개봉했던 액션공포영화 <메가로돈>은 1억3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5억2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메가로돈>은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는 여름용 블록버스터 팝콘무비'라는 평가 속에 작년 속편이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 1993년 한 차례 실사영화로 만들어졌다가 흥행에 실패했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작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13억6100만 달러라는 눈부신 성적으로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슈퍼배드>와 <미니언즈>로 유명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가 게임 <슈퍼마리오>를 만든 닌텐도와 함께 만든 미일합작 애니메이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3위에 올라있다.

송강호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브로커>는 칸영화제 2회수상, 일본 아카데미 감독상 3회수상에 빛나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했다. <브로커>는 단순히 '일본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연출과 편집을 담당한 고레이다 감독 외에도 일본에서 제작과 조연출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충분히 '한일합작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개그짤'이 된 이소룡의 시그니처 표정
 
 분노와 회한이 뒤섞인 이소룡의 시그니처 표정은 세월이 흘러 개그짤로 활용되고 있다.
ⓒ 동아흥행(주)
 
미국에서는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방문 이후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여기에 한국의 정청화 감독이 만든 홍콩액션영화 <철인>이 미국에서 흥행하면서 홍콩을 비롯한 동양 액션영화의 성공 가능성이 확인됐다. 이에 워너 브라더스에서는 과거 미국에서 활동했다가 홍콩에서 최고의 액션스타로 성장한 이소룡에게 러브콜을 보내 <용쟁호투>를 제작했다.

<용쟁호투>는 워너 브라더스와 이소룡이 설립한 홍콩영화사 협화전영공사가 합작해 만든 영화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서구권 관객들의 취향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동양의 무술영화 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실제로 <용쟁호투>는 서구권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것과 달리 홍콩에서는 다른 이소룡의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홍콩 현지에서의 아쉬운 반응과 별개로 이소룡은 <용쟁호투>를 통해 최고의 동양인 액션배우로 떠올랐다. <용쟁호투> 개봉 이후 서구권에서는 동양 무술 열풍이 불었을 정도. 특히 영화 후반부 한(석견 분)과 거울의 방에서 싸우는 장면은 대단히 유명하다. 이소룡은 이 장면에서 한의 무기에 긁혀 배에 상처를 입는데 흘러내린 피로 복근에 '王'자가 그려지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관객들이 이소룡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그니처 표정 역시 <용쟁호투>에서 나왔다. 리(이소룡 분)가 한의 왼팔인 오히라(로버트 월 분)와 싸우면서 흉기를 사용하는 오히라를 쓰러트린 후 높이 점프해 급소를 밟으면서 괴성을 지르는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은 여동생의 복수를 하는 리의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는 명장면이지만 훗날 많은 매체를 통해 주로 코믹하게 패러디됐다.

서브 주인공 역할 충실히 해낸 로퍼
 
 <용쟁호투>에서 로퍼(왼쪽)은 윌리엄스와 콤비(?)로 활약하며 준주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동아흥행(주)
 
<용쟁호투>는 동양배우 이소룡이 주인공이지만 미국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작가가 각본을 쓴 영화인 만큼 미국인 서브주인공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했다. 지난 2020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존 색슨이 연기한 로퍼였다. 내기를 즐기는 성격으로 빚쟁이에게 쫓기다 한이 주최한 무술대회에 참가한 로퍼는 리를 도와 한의 악행을 막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고 석견이 연기한 <용쟁호투>의 최종보스 한은 소림사의 무술가였다가 변절해 악당이 됐고 납치한 여자들을 마약에 중독시켜 부유층에게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인물이다. 가라데 고수 윌리엄스(짐 켈리 분)와의 대결에서 손쉽게 승리할 정도로 강하지만 리와의 대결에서는 크게 힘을 쓰지 못하고 패했다. 한은 절단된 왼팔에 각종 날카로운 무기들을 갈아 끼면서 상대에게 위해를 가한다.

한의 오른팔 볼로는 엄청난 근육질의 소유자로 리의 잠입을 막지 못한 경호원들을 손쉽게 처리할 정도로 괴력의 소유자이자 잔인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한의 명령으로 리를 처리하려 했던 볼로는 대신 나타난 로퍼와 대결하는데 로퍼의 로블로 킥에 맞으면서 다소 허무하게 패한다. 볼로를 연기한 액션배우 양사는 <용쟁호투> 이후 한 동안 '볼로 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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