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는 정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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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 모였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데 22대 국회는 식물이다.
정치는 정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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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 모였다. 저마다 표정은 달랐지만, 분위기는 비장했다. 각자 손에는 피켓을 들었다. 서로를 응시한 채 진영을 이뤘다.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민의힘은 특검법을 수용하라!" "의회 폭거 방송 독재, 민주당은 각성하라" 두 소리가 한데 뒤엉켰다. 어느 한쪽도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대 진영의 목소리를 뒤덮으려는 듯 서로 더 악다구니를 썼다. 그리고 얼마 후 이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엿새 후인 30일 오전 국민의힘이 '방송 4법'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종료됐다. 토론 시작 110시간여 만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의결을 거쳐 토론을 강제 종결했다. 이들은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된 방송 4법의 마지막 법안인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 법)'을 통과시켰다. 로텐더 홀에서 시작한 법안 상정 시위부터 통과까지 엿새 간 여야는 타협점을 찾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은 밤새 필리버스터로 시간을 보냈고, 어떤 의원이 얼마나 쉬지 않고 발언했는지가 화제가 됐을 뿐이다.
이정복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는 정치의 핵심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인 권력과 부의 배분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서 정쟁은 필수다. 콩 한 쪽 가를 때도 의견이 오가는 데 하물며 부와 권력을 나누는 데 있어 집단 간 논쟁은 당연한 셈이다. 조금이라도 뜻을 관철하기 위해 타 집단과 싸우고 물러서며 타협하고 조정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는 감성이 아니다. 상대를 배려해 양보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줄 건 주고받을 건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이합과 집산이 성행한다.
하지만 22대 국회에는 정쟁이 없다. 도무지 서로를 마주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눌러 승리의 결과만을 취하려고 할 뿐이다. 정쟁이 없으니 협의할 사안도 없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데 22대 국회는 식물이다. 결국 피로감만 쌓인다. 야당 단독 법안 상정의 끝은 결국 폐기다.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거쳐 재표결하면 의석 2/3(200석)를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의 악순환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여야 의원들 역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본회의장 앞에서 피켓 시위에 참여한 한 여당 의원은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를 막기 위해 이렇게까지 했지만, 사실 무력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바뀌지 않는 결과에 답답함만 늘고 있는 셈이다.
정치는 정쟁이 필요하다. 벨기에 출신 정치철학자 샹탈무페는 여러 세력이 끊임없는 논쟁과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갈등적 합의'를 강조했다. 정쟁이 결국 민주주의를 더 건강하게 한다는 역설이다. 피켓을 들고 상대 진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는 있다. 법안 통과 저지를 위한 밤샘 필리버스터의 수고도 정당하다. 다만 상대방의 목소리를 짓누르고, 타협 없는 승리만을 목표로 하는 정치는 없어져야 한다.
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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