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쉬워" 선운어촌계 마지막 어민 정은순 어촌계장

유기만 2024. 7. 3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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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창 갯벌(고잔마을, 하전마을, 만돌마을) 3명의 어민들

[유기만 기자]

 고창갯벌과 양식장, 마을 현황(고잔마을,하전마을,만돌마을)
ⓒ 유기만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 갯벌은 "곰소만 내에 위치하는 개방형 갯벌로 계절에 따른 퇴적물의 변화 폭이 커서, 갯벌의 외측부터 안쪽으로 갈수록 모래갯벌, 혼합갯벌, 펄 갯벌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는 갯벌 퇴적 스펙트럼의 전형을 볼 수 있는 갯벌(고창군 홈페이지)"이다.

고창갯벌의 북쪽은 부안군으로 줄포, 곰소, 모항, 격포가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만돌갯벌, 하전갯벌이 있다. 갯벌의 성질에 따라 양식하는 것도 다르다. 외측 모래갯벌에는 김 양식장이 있고 모래와 펄이 혼합된 혼합 갯벌에는 바지락 양식장이 있고 펄이 많은 갯벌에는 동죽, 가무락 양식장이 있다.

고창 갯벌에서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3명의 어민을 만났다. 만돌마을에서 김 양식을 하는 김진근씨, 하전마을에서 바지락 양식을 하는 이희봉씨, 고잔마을에서 동죽양식장을 하는 정은순씨로부터 바다와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은순 고잔마을 어촌계장
ⓒ 유준
 
고잔마을에서 만난 정은순씨는 1952년생으로 고잔마을 출생이다. 고잔마을은 정가가 이주하여 우물도 파고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아버지도 새우로 젓갈을 담아 팔고, 칼로 가무락(모시조개)도 캐서 팔아 생활했으며 집안 대대로 바다 일을 했다고 했다. 마을에서 연애해서 결혼하여 평생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30대 중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삼 형제를 홀로 키웠다고 한다. 동죽 양식장과 떡방앗간을 하면서 삼 형제를 키웠고 인터뷰는 7월 28일 그의 자택에서 했다.

- 어린 시절 바다는 어땠습니까?
"어렸을 적에는 반찬이 없으면 바다로 갔어요. 나가면 바로 앞에서 꼬막도 잡고 동죽도 잡고, 게도 잡아서 반찬을 해 먹었어요. 8살 때부터 엄마 따라다녔어요."

-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어업에 종사했습니까?
"생업으로 한 것은 34~35살부터 했어요. 나가서 동죽 40킬로 잡으면 20킬로씩 나눠서 머리에 이고 날랐어요. 지금은 트랙터로 40분 걸리는데 걸어가면 두 시간 정도 걸려요. 그때는 젊었으니까, 힘이 있었어요. 그때는 동죽 가격도 쌌어요. 20킬로에 만 오천 원 했어요. 그만큼 조개가 많았어요. 20~30명씩 같이 바다에 나가서 동죽을 잡았는데 동네에서는 동죽 잡다가 골병들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죠. 다른 조개 보다 동죽은 물을 머금고 있어 무거워요. 힘들어도 함께 가서 잡으면 재미도 있었죠. 30대 중반에 그렇게 잡다가 동죽이 너무 싸니까 돈이 안 돼서 다른 일 잠깐 하기도 했어요. 동죽이 너무 많으니까, 돈이 안 되었죠."

- 언제부터 동죽이 안 잡히기 시작했습니까?
"동죽이 2016년부터 조금씩 안 잡히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원전 온배수 영향도 있고 새만금 영향도 있다고 해요. 아버지 때는 동죽이 많았어요. 새우도 많았고 농발게도 많았고 모든 게 많았죠. 지금은 별로 없어요."

- 현재 바다를 생각하면 마음이 어떠세요?
"아쉽죠, 아쉬워. 종패를 넣으면 패사하고 조개도 안 잡히니까! 많이 아쉬워요. 바다가 돈이거든, 바다에서 돈 벌기가 제일 쉬워요."

- 어촌계장 일을 하고 계시는데 선운 어촌계는 몇 분이나 계시는가요?
"송현리 고잔마을에 50가구 사는데 나 혼자 어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고령화되어서 일을 못 해요. 선운어촌계는 50명 정도 되었는데 현재 21명이어요. 계원 21명 중 혼자 어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10년 지나면 이 마을도 없어질지 모르겠어요. 돈이 안 되니까 젊은이들이 없어요."

- 대대손손 좋은 바다를 물려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방법이 있어요?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요. 다른 어촌계장들하고 바다 살리기 만들어서 하고 있는데..."

정은순 어촌계장의 막내아들은 서울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현재 동죽 해감 등을 하는 수산물 가공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을 생각하면 바다가 잘되어야 하는데 갈수록 조개가 잡히지 않아 아쉽다는 말을 거듭했다.

하전마을에서 바지락 양식을 하는 이희봉씨는 1978년 하전마을 출생이다. 할아버지는 목선에서 고기를 받아 내다 파는 생선 판매업을 했고 아버지 때부터 바지락 양식장을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중국에서 회사 생활을 했는데 잠깐 도와주러 왔다가 부모님이 바지락 양식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고 또 자신이 생각해도 회사 생활보다 나을 것 같아 직장을 정리하고 2010년에 귀어했다고 했다.

고창 어촌계 중에 하전 어촌계가 가장 계원이 많았는데 계원이 약 200명이고 청년회도 50~60명으로 젊은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마을에는 이희봉씨처럼 고향을 떠나 다른 일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야 바지락 양식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 처음 바지락 양식장을 시작했을 때 어땠어요?
"전국에서 하전마을이 단일 규모로 바지락 생산량이 제일 많았죠. 2010년부터 2016년 사이에는 전국 바지락 생산량의 60%가 하전 갯벌에서 나왔으니까요. 엄청 많이 나왔죠."

- 언제부터 잘 안 되었나요?
"2016년까지 새만금 안에서 바지락 종패가 나왔어요. 거기서 종패를 사다가 뿌리면 폐사하는 것들도 없고 잘되었죠. 그런데 2016년 이후 새만금에서 바지락 종패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요. 충남이나 중국산 종패를 사서 뿌렸는데 폐사가 많이 되죠. 아무래도 먼 거리에서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이곳에 뿌려지면 적응이 힘들겠죠?"

- 얼마나 줄었습니까?
"3년 전부터 급격히 폐사량도 늘고 생산량도 줄기 시작했어요. 3년 전에는 종패 값만 겨우 건졌습니다. 제 인건비는 하나도 없었죠. 지난해에는 더 안 좋아서 저만해도 3천만 원 적자를 봤습니다. 올해도 지금 심각해요. 2월에 한 번 종패가 유실되는 일이 있었고 5월에 그나마 살았던 애들이 일부 폐사했거든요. 지난해보다 생산량이 더 줄 것 같아요."
 
 2024년 5월 23일 바지락이 패사한 모습(이희봉 씨 바지락 양식장)
ⓒ 이희봉
 
-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대출도 받고 예금, 적금도 깨고 양식량도 줄이면서 버티고 있는데 아마 이렇게 가다가는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생길 것 같아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하전 갯벌이 대부분 비슷하거든요."

- 왜 이렇게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고 생각하세요.
"일단 새만금 갯벌에서 나오던 좋은 종패를 구하기가 힘들고 바지락은 모래와 펄이 혼합이 잘된 혼합갯벌에서 잘되는데 시간이 갈수록 갯벌이 바뀌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예전에는 밤에 트랙터를 타고 나가보면 플랑크톤이 반짝반짝 보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안 보이기도 하고요."

가업을 이어받아서 바지락 양식을 하고 있는데 대대손손 후손에게 좋은 갯벌을 물려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종패가 나와야 하는데 새만금에서 종패를 받아서 고창 갯벌에 뿌릴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새만금 해수 유통을 더 많이 해서 안에서 조개가 자랄 수 있게 해야겠죠."

- 갯벌을 보면 어떤 심정이 들어요?
"갑갑하죠. 8월 중순부터 바지락을 캐는데 올해는 얼마나 생산량이 줄었을까? 정말 갑갑합니다."

이희봉씨가 지난 5월 23일 찍은 동영상을 보내줬다. 그 영상 속에는 갯벌 밖으로 죽어서 폐사한 바지락 껍데기로 가득했다. 또한 영상을 촬영하는 이희봉씨의 한숨도 가득 담겨 있었다.
 
 김진근 씨가 갯벌 센터 관람차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준
 
만돌마을에서 김 양식을 하는 김진근씨는 1974년 만돌마을 출생이다. 아버지와 함께 김 양식을 한 지 25년째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곡성 분이신데 6·25 때 이곳 저곳 돌아다니시다가 아버지가 어려서 아기 때 만돌에 왔다고 했다. 김진근씨는 김양식과 함께 고창갯벌 센터에서 8년째 해설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7월 28일 일요일 근무 중인 김진근씨와 함께 고창 갯벌 관람차를 타고 인터뷰를 했다.

- 어린 시절 바다는 어땠나요?
"동네는 컸어도 1986년에야 도로가 포장되었어요. 밭도 없고 논도 다 다랑논이었는데 갯벌은 넓으니까, 갯벌에서 야구하고 공차고 그물에서 물고기 서리해서 먹고 그랬어요. 놀이터였죠. 중학교 때 김 양식을 했으니까 그때는 일손이 부족하고 그래서 많이 도왔어요. 가을이면 참나무 같은 것을 사 오면 그걸 뾰족하게 깎아서 바닷물에 1년씩 담가놨다가 무겁게 해서 잘라서 메고 양식장으로 나르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 엄청 힘들었어요. 아들 많고 자식 많은 집은 큰 도움이 되었죠. 김 양식하려면 무조건 해야 했으니까요. 지금은 어구도 좋아지고 아주 좋아졌죠"

- 김 양식은 어떻습니까?
"만돌 김양식장은 어촌계가 운영하고 있어요. 어촌계에서 할당을 받아서 하는데 옛날에는 100어가가 할당을 받았으니까 면적이 적었죠. 지금은 가구 수가 줄어서 면적이 늘었습니다. 김 색깔이 진할수록 건강한 김인데 최근에는 김 색깔이 진하지 않아요. 백화현상도 오고 영양분이 모자란 거죠. 강으로부터 건강한 먹이원이 와야 하는데 부족한 거죠. 또 고창 갯벌 가장 외측에 김 양식장이 있는데 모래가 패여서 지주가 조금씩 드러나기도 해요. 그래서 조금씩 안쪽으로 양식장이 이동하기도 합니다. 수온이 9월 이후에는 떨어져야 하는데 안 떨어져서 웃자라기도 하고 냉해도 입고 그렇습니다. 원전 온배수와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죠"

- 올해 다시 한빛 원전 측으로부터 김 양식 면허 갱신을 받아야 한다는데?
"한빛 원전이 들어오면서 보상을 받고 10년씩 면허 말소를 연장하면서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올해가 다시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데 원전 측과 전혀 이야기가 되고 있지 않아요. 올해 10월에 연장 계약이 끝나는데 원전 측에서는 부정적인 것 같아요. 갱신이 안 되고 김 양식을 하면 불법이 되는 거죠. 그러면 판매에도 지장이 많고 원산지 표기도 안 돼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해서 안 좋습니다. 올해는 어업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 지속 가능한 바다를 후손 대대로 물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지혜롭게 이용해야죠. 갯벌센터에서 일하다 보니까 미래가 보여요. 개인이 영리하는 갯벌 어업보다는 예전처럼 마을 양식 방법을 지금부터 준비해야죠. 개인들이 하다 보니까 불법을 저질러도 행정에서 관리하지 않으면 터치를 못 해요. 어민들도 어구 쓰레기 많이 버립니다. 단체 구성원이 운영하면 그런 것들을 잘 관리할 수 있겠죠. 앞으로 갯벌은 그렇게 관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네에 주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없어요. 예전에 300가구였는데 지금은 호구 상으로는 120호되는데 갯벌 활동하는 어가는 50어가도 안 되고 30%가 고령화되었어요. 수익이 안 되니 자식들이 안 내려옵니다. 어선업도 마찬가지죠. 다 잡아버리면 내년에 잡을 게 없어요. 갯벌이나 바다는 농지와 다르게 개인 농지로 소유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공동어장으로 같이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죠. 어업과 환경을 같이 유지하도록 제도를 조금씩 바꿔가야 합니다."

- 8년째 계약직으로 해설사를 하고 계시는데 해설사의 입장에서 어업을 보면 어떻습니까?
"해설사는 돈이 안 돼요. 용돈 벌러 왔는데 어업보다 일은 더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만큼 할 만한 일이라 생각해요. 어업은 생계니까 하고요. 8년 전에는 이곳에 와서 여기다 뭐 지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대로 보존하는 좋다는 분이 많아졌어요. 사람들 의식도 바뀌는 것 같아요."

관람차로 고창 갯벌을 둘러보다가 새우 양식장 옆을 지났다. 양식장 호수 위에 갈매기와 오리 떼가 가득했다. 그것을 본 김진근씨가 말했다.

"지금 저 갈매기와 오리들이 물 위로 올라오는 새우를 먹기 위해서 저렇게 있는 거예요. 저 양식장은 실패한 겁니다. 밑에 가스가 가득 차서 새우들이 가스를 피해서 숨을 쉬려고 올라오는 것을 먹는 거예요. 원래 새우들은 바닥에서 생활하는 애들인데 올라오면 안 되는데 올라오는 거예요. 바닥에 가스가 차니까. 갯벌 웅덩이도 고여있는 곳은 냄새가 납니다. 질소가 산소와 결합해서 가스가 생기는 겁니다. 바닥에 가스 차고, 썩었어요. 새만금은 더 할 겁니다."
 
 고창군 곳 곳에 어민들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 유기만
고창 남쪽 끝에는 한빛 원전 배수구에서 온배수를 내보내는 방류제 1km가 가로 막고 있고 북쪽 끝 고창갯벌 위로는 새만금 방조제가 가로 막고 있다. 최근에 서쪽 끝 바다에는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섰다. 고창 구시포, 동호, 만돌마을, 하전마을, 고잔마을 어민들은 바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삼중고로부터 바다를 지키기 위해 2024년 고창바다살리기네트워크를 구성해서 활동 중이다. 올해는 수명을 다한 한빛 원전 1, 2호기에 대해 연장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해이고 새만금 해수유통 방법과 규모를 결정하는 해이다. 그러나 고창 어민들의 절박함과 절심함이 제대로 알려졌을까?

우리는 그렇게 고창을 떠나 부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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