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안 입은 올림픽 여자 도우미... 파리가 바꾼 것들
[이진민 기자]
▲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개된 프랑스 역사 속 여성 위인 10명의 동상 소개. |
ⓒ KBS |
2024년 파리 올림픽은 달랐다. 식물학자 잔 바레(1740~1807)를 포함해 프랑스를 빛낸 황금 여성을 소개했다. 센강에 황금색으로 솟아오른 황금 여성 동상은 올림픽 대회가 끝나도 파리의 곳곳에 존치할 예정이다.
제33회 파리 올림픽은 지난 27일 "함께 나누자(Venez partager)"는 슬로건을 내걸고 개막했다.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파리 올림픽은 친환경 기술부터 AI까지 스포츠와 다양한 의제를 접목했다. 그중 하나가 '성평등'이다.
이번 올림픽은 역사상 최초로 여성 선수와 남성 선수의 숫자가 같다. 성비 50 대 50인 올림픽은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그간 올림픽 조직위원회(IOC)가 '성평등 올림픽'을 위해 여성 출전 종목과 혼성 종목을 늘리고 의무화한 노력의 결실이다. 그렇다면 파리 올림픽은 '성평등'이 완전히 안착했을까. 현실은 평등과 차별 그 사이였다.
▲ 3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육상 400m 계주 결선 시상식을 위해 도우미들이 꽃다발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2023.10.3 |
ⓒ 연합뉴스 |
그동안 시상식의 도우미는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몫이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자격 요건에 '혈색이 좋고 반짝이는 피부', '볼륨 있지만 뚱뚱하지 않은 몸매' 등 외모와 신장에 대한 규정을 넣었다. 또한 신체를 부각한 의상을 착용해 성 상품화 비판에 휩싸였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도우미들이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변형한 유니폼을 착용다. 얇고 달라붙는 재질에 속옷라인까지 드러났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성희롱에 가까운 반응이 들끓었다.
▲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시상식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2024.7.30 |
ⓒ 연합뉴스 |
2024년 파리 올림픽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여성과 남성 도우미 모두 동일한 복장을 착용한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구별이 없는 '유니섹스' 의상을 선보인 것으로 그들은 컬러 셔츠에 바지, 가브로슈 모자를 착용했다. LVMH 산하 브랜드에서 나온 자투리 천을 업사이클링으로 제작한 것으로 친환경적인 면까지 고려했다.
이를 두고 "신선하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라는 공식이 깨졌다", "성적 요소가 없어서 보기 편하다",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이다"의 댓글이 달리는 등 달라진 도우미의 역할과 의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구촌 축제라는 올림픽의 위상에 맞게 젠더 감수성을 고려한 모습이다.
▲ 20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브라질의 플라비아 사라이바가 프랑스 파리 베르시 아레나에서 열린 예선 경기에서 마루 연기를 하고 있다. 2024.7.28 EPA 연합뉴스 |
ⓒ EPA/연합뉴스 |
물론 올림픽에 남아있는 성차별도 있다. 28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IOC 주관 방송사인 올림픽 방송서비스(OBS)는 올림픽 촬영진에게 "여성 선수를 남성 선수와 같은 방식으로 촬영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야니스 엑사르코스 OBS 최고 경영자는 "불행히도 일부 경기에서 촬영 감독이 여성과 남성 선수를 포착하는 방식에서 여전히 고정관념과 성차별이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성 선수들은 매력적이거나 섹시하다는 이유로 대회에 참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엘리트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이라며 "촬영 감독과 TV 편집자들이 '무의식적 편견'으로 인해 남성보다 여성을 더 많이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 20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의 신노스케 오카가 예선 경기에서 안마 연기를 하고 있다. 2024.7.27 |
ⓒ AFP / 연합뉴스 |
파리 올림픽의 아쉬운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7일 영국의 베테랑 해설위원인 밥 발라드가 성차별 발언을 했다가 중계방송에서 퇴출당했다. 그는 호주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수여 받고 관중들의 박수에 화답하는 장면을 두고 "여자들이 어떤지 알지 않느냐. 그들은 놀고, 화장하는 걸 좋아한다(you know what women are like… hanging around, doing their make-up)"고 말했다.
발라드의 발언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성차별적 발언"이란 지탄이 쏟아졌다. 결국 유로스포츠는 29일 성명을 통해 "발라드가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며 "그를 즉각 해설위원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당사자 역시 개인 SNS를 통해 "누군가를 화나게 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며 "나의 발언으로 시청자들이 불쾌했다면 사과한다"고 했다.
▲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에서 프랑스 선수단을 태운 보트가 트로카데로 광장을 향해 수상 행진을 하고 있다. 2024.7.27 |
ⓒ 연합뉴스 |
루이즈 미셸을 "교사이자 작가, 페미니스트 운동가"라고 소개했고, 프랑스에서 낙태를 합법화한 주역인 시몬 베유, 여성 최초로 세계 일주한 식물학자 잔느 바렛, 페미니즘 고전 <제2의 성>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을 언급했다. 여성 운동을 전면에 내건 이번 개막식에 SNS 반응은 뜨거웠다. 파리 올림픽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본래의 뜻이 오염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공중파 방송을 탔다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 참가를 처음으로 허용한 건 다름 아닌 1900년 파리 올림픽이었다. 당시 여성 선수의 비율은 단 2%였다. 시대는 변화했고 여성은 꾸준히 운동했다. 테니스, 골프에 한정됐던 출전 종목은 마라톤, 레슬링 등 격한 스포츠로 확장되다 지난 1991년에 모든 종목에 여성 선수가 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 2024년, 파리 올림픽은 개막식부터 세부적인 구성까지 전반적으로 '성평등 올림픽'이라기에 충분하다. 물론 곳곳에 여전히 성차별적인 요소는 존재한다. 중요한 건 이를 바로 잡으려는 움직임이다. 여성에 대한 존중은 보편적 가치라는 걸 각인시킨 파리 올림픽. 세상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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