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간첩이 북한 간첩만 있나

소종섭 2024. 7. 3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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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원대 민·형사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그러면서 "격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외국과 적국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라며 "이번에 꼭 간첩법을 개정해서 우리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을 만들자"고 촉구했다.

주호영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 장경태 위성락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 들어 간첩 혐의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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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원대 민·형사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2006년 일이다. 보도한 기사와 관련해서였다. 검찰은 1년 뒤인 2007년 4월, 형사 소송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했다. 민사 소송은 1년여 더 진행돼 2008년 12월 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5부(한호형 부장판사)가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하면서 끝났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여러 건의 소송을 겪었지만, 이때의 일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금액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안이 '미국 간첩' 관련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다른 나라를 위하여 국가의 주요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유출하였을 경우, 국가의 경제·안보 등 국익에 미치는 영향과 국민의 알 권리 등을 고려할 때 보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보도의 주요한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당시 제보자는 "(사업가인 A씨가)국내 여러 사람으로부터 정보와 문서를 받고 있으며, 이것을 영문으로 번역해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그가 미국 정부와 미국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A씨가 '대선 경쟁력 분석' '북핵 관련 정세 분석' 등의 문건을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현장 취재를 통해 A씨와 관련 있는 전직 미국 정보기관 인사가 사용하던 사무실도 확인했다. 당시 재판부가 '국가의 경제·안보 등 국익에 미치는 영향' '공공의 이익' 등을 언급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국회 국정감사 때 시끌시끌하기는 했으나 법적·제도적 후속 조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사건은 조용히 잊혔다.

최근 미국 검찰이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을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오랜 기억이 살아났다. 수미 테리가 받는 혐의는 미국 정부에 알리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는 것이다. '미국 간첩' 사건이나 '수미 테리' 사건이나 속내용이 모두 공개되지 않았으니 전말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기본 얼개는 비슷하다. '다른 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미국은 기소할 수 있으나 우리는 할 수 없다. '적국을 위하여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형법 98조 1항의 '적국'은 오직 북한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2006년이나 지금이나 그 조항은 변함이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정치권에서 법 개정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을 누가, 왜 막았습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격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외국과 적국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라며 "이번에 꼭 간첩법을 개정해서 우리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을 만들자"고 촉구했다. 주호영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 장경태 위성락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 들어 간첩 혐의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번에는 매듭을 짓자. 법안을 내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여야 합의로 꼭 입법을 끝내자. 글로벌 정보전쟁 시대에 언제까지 구멍 뚫린 울타리를 그냥 두고 볼 것인가. 간첩이 북한 간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종섭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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