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VC 신규투자, 18.8%↑…초기투자 비중은 축소
초기투자 줄고, 후기투자 늘어
“시장 고려한 보수적 투자”
올해 상반기 국내 벤처캐피털(VC)의 신규 투자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초기 투자 비중이 줄며 보수적인 투자 경향이 확인된 만큼, 수년간 얼어붙은 벤처 투자 시장의 혹한기가 풀렸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31일 한국VC협회 벤처투자정보센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규 투자를 받은 기업은 총 1228개였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8% 늘어난 2조6754억원의 신규 투자가 이뤄졌다. 연간 신규 투자 규모는 2021년 7조6802억원, 2022년 6조7640억원, 지난해 5조3977억원을 기록해 점차 감소 추세였는데, 지난해 하반기에 나타난 개선세가 올해 상반기에도 확인된 것이다.
전체 투자 재원을 보면 올해 상반기 새로 결성된 조합은 총 109개였고, 신규 약정금액은 지난해 동기보다 20.3% 늘어난 2조3504억원이었다. 규모로는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의 '스마일게이트혁신성장펀드'가 2652억원으로 가장 컸고, 스톤브릿지벤처스(2505억원), 에스비브이에이(1887억원) 등의 펀드가 뒤를 이었다. 이로써 올해 상반기 운영 중인 조합과 금액은 각각 2019개, 58조452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1817개, 53조542억원보다 증가한 것이다.
상반기 업종별 신규 투자 비중은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가 32.1%(8599억원)로 가장 컸다. 그다음은 ▲바이오·의료(15.7%, 4208억원) ▲전기·기계·장비(14.1%, 3771억원) ▲유통·서비스(12%, 3223억원) ▲ICT 제조(7.5%, 2011억원) 등 순이었다.
다만 업계에선 투자시장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앞서 벤처 투자 시장은 저금리 정책 등에 힘입어 2021년 정점을 찍었다가, 미국발 고금리 기조와 기업가치 하락, 기업공개(IPO) 규모 축소 등 요인으로 수년간 혹한기를 맡고 있다. 한 VC 관계자는 “‘시장 환경이 개선됐다’는 판단에서 새로운 투자를 진행했다기보단, 펀드 계획에 따라 미뤄오던 투자를 불가피하게 집행한 투자 사례도 많을 것”이라며 “출자 사업으로 투자 대상 기업까지 선정하고도 시장 상황과 출자자(LP)의 사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자금 집행을 지연시켰다가, 최근 펀드가 결성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초기보다는 후기’에 주목하는 안정지향적 투자 기조도 확인됐다. 올해 상반기 업력별 신규 투자 비중은 후기가 42.8%로 가장 컸고, 중기는 35.8%, 초기는 21.4%를 기록했다. 초기 투자 비중은 2022년 29.6%를 기록한 뒤 매년 감소세인 반면, 후기 투자 비중은 2022년(30%)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VC의 기본 목표가 성장 가능성을 가진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모험자본’이지만, 여러 출자자(LP)의 투자금을 함께 운용해야 하는 만큼 회수(엑시트)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하반기 금리 인하와 함께, 보다 모험적인 투자 사례들이 나타나야 ‘투자시장 활성화’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로선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갖췄지만, 당장 수익성이 확인되지 않아 투자를 받지 못하는 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구태훈 빅뱅벤처스 대표는 “펀드를 운영할 땐 투자 기간이 설정되고, 투자 계획도 이에 따라 세운다”며 “지금은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여러 VC가 투자 재원을 계속 붙들고 있다가, 살아남은 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통해 일부 투자를 집행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는 “포텐셜(잠재력)을 갖춘 기업에 VC의 선투자가 본격적으로 집행될 때 시장 분위기가 개선되기 시작한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의 옥석가리기 분위기 자체는 기업의 포텐셜만 보고는 투자하기를 여전히 주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포텐셜이 있는 기업들에 얼마나 신규 투자가 이뤄졌는지 등 실질적인 내용을 따져보면 실제 시장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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