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 ‘인민재판’ 지적엔 반성부터 했어야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탈북 의원에 충격 준 회의 분위기
본회의장에서 욕설 퍼부은 초선
인격적으로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야차(夜叉: 모질고 사나운 귀신의 하나. 염마청에서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죄인을 벌하는 옥졸)의 목소리와 표정(야차를 본 적은 없고, 상상 속의 야차를 두고 하는 말임을 양해하시라)을 흉내 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국회의원 모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그 중 극히 일부, 정말 듣기 거북한 막말·욕설·모함·모욕적 말투를 버리지 못하는 의원들을 보면 ‘야차 같다’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는 뜻이다.
조심하라는 위원장의 사전 경고
도대체 이들은 어디서 그런 말투를 배웠을까? 국회 안에서 경쟁 정당의 의원이나 증인, 심지어 참고인에 대해서까지 그런 언어적 행패를 부려도 된다는 가르침을 누구에게 받았을까? 어릴 때부터의 언어 습관일까? 아니면 같은 당의 선배 의원들에게서 집중 훈련이라도 받은 것일까? 헌법, 국회법,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 그 어디에도 ‘국회의원의 막말·욕설 권리’를 찾을 수 없던데, 해당 의원들은 어떤 제도나 법률에 근거해서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걸까?
국회법 제46조(윤리특별위원회)에조차 ‘말과 말하는 태도’ 관련 규정이 없다는 것은 이 법 자체가 국회의원의 발언에서 도덕적 윤리적 의무를 해제해 준 셈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 4일 대검찰청 7월 월례회의 때 이원석 검찰총장은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 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인용해 자신이 생각하는 ‘검사의 길’을 보여줬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국민이 부여한 책무를 다하기 바란다.”
그 흉내를 내서 대한민국 일부 의원들에게 조언하자면 이렇게 될까?
“세평에 휘둘리지 말고, 체면 생각하지 말고, 국회의 신뢰와 권위에 구애되지 말고, 성난 늑대처럼, 겁 모르는 싸움꾼처럼, 크게 한 건 하려는 투기꾼처럼, 욕설과 막말과 모함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말하는 아이처럼, 무엇도 누구도 겁낼 필요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지난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최민희 위원장은 처음부터 위세를 과시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증인선서를 마치고 증서를 제출한 뒤에 자리로 돌아가자 최 위원장이 불러 세웠다. 이 후보자가 자기 앞에 서자 최 위원장은 악수를 청했다. 이 후보자가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최 위원장이 바로 앞에서 손가락 네 개로 다시 불렀다. 그리고는 귀엣말로 “저와 싸우려 하시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마이크를 통해 회의장 전체에 다 들리는 귀엣말로!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하루 동안 진행하는 관례가 깨져 이 후보자는 26일까지 사흘을 버텨내야 했다. 최 위원장의 현란한 갑질이 계속되는 가운데 ‘뇌 구조’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는 26일 이 후보자를 향해 “뇌 구조가 이상하다”고 했다. 이 후보자가 모욕당했다며 즉각 사과를 요구했지만, 최 위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참에 최 위원장의 뇌 구조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건 실례가 되는 걸까?
탈북 의원에 충격 준 회의 분위기
그는 29일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의 발언과 관련 ‘전체주의 체제’ 운운하며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탈북자 출신인 박 의원이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망신 주기’로 진행했다고 지적하면서 한 말이 아주 불쾌했던 듯하다.
“한 인간에 대한 심각한 인신공격, 집단공격, 인민재판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어 인사청문회를 경험하면서 한 말이었다. 최 위원장 입장에서는 듣기가 거북했더라도 경청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거꾸로 심하게 힐난했다.
“아니 저희에게…, 저기요 전체주의적인 국가에서 생활하시다 보니 민주주의적 원칙이 안 보이십니까? 인민재판이라는 표현을 여기서 쓰는 게 말이 됩니까. 여기가 대한민국 국회입니다.”
자신이 이끈 인사청문회가 바로 ‘인민재판’을 연상케 했다는 체제 경험자의 말이었다. 박 의원은 전체주의 체제를 못 견뎌 탈북해 온 사람이다. 한국의 국회에서는 ‘민주주의적 원칙’이 준수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텐데 소리 지르고, 면박·모욕주고, 훈계하는 식으로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기겁했을 법하다. 그런데 최 위원장은 되레 심하게 나무랐다. 이 ‘갑질 구조의 오작동’에 대해 최 위원장은 결국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다(사과할 줄 아는 것만 해도 어딘가).
소리를 질러대며 후보자를 야단치는 의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라고 윽박지르는 의원(‘말라야의 호랑이’라는 닉네임을 가졌던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 奉文 대장이 싱가포르 주둔 영국군 사령관 퍼시벌 Arthur Percival 중장과의 항복 협상 자리에서 “예스까 노까”라고 윽박질렀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는 통역이 너무 버벅거리는 게 답답해서 “예스까 노까로 간단히 물어봐”라고 했다는 것인데 어쨌든 지금까지도 야마시타의 호통으로 전해진다) 등 행태는 가지가지다. 이죽거리는 투로 상대의 인격에 심한 상처를 입히는 의원도 있다.
“어제 하루 종일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이진숙을 이토록 변하게 했을까?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 기자를 저토록 변질시킨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25일 청문회에서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이런 말로 질문을 시작했다.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라고 하지나 말지. 2007년 당시 재편됐던 여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원로 정치인을 저렇게 변질시킨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무리 소속 정당의 입장에 구애된다고 해도 어떻게 후배 기자를 ‘괴물의 아바타 또는 하수인으로 만드는지, 정치 세계의 비정함이 염천(炎天)에 한기(寒氣)를 안긴다.
본회의장에서 욕설 퍼부은 초선
직위 자랑이 과방위 최 위원장보다 훨씬 더한 상임위원장도 있다. 막말 모욕 이죽거리기 호통치기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다. 전직 국방부 장관과 현직 해병대 장군을, 말 끼어들기, 불성실답변 등의 이유로 10분씩 밖에 나가 있다가 오게 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두 팔 들고 한 발로 서 있으라고 해야지”라며 조롱성 웃음을 흘렸다. 둘 다 공공연히 군을 모욕준 것이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28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송 4법 찬성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신의 야유·모욕성 발언에 대해 항의하자 초선인 박 의원은 여당 의원석을 가리키며 “뭐 하는 거예요. 이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마이크를 옆으로 밀치고는 “이 새X들이”라는 말까지 했다. 국민의힘 임종득 의원을 보고는 “옛날에 (청와대) 행정관으로 내 밑에서 일하던 친구”라고 조롱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이런 예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들이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도 그런 말투를 쓸까? 개딸들에게도 그렇게 막말을 할까? 유권자들에게는 어떨까? 오직 국회 안에서 그러는 것은 ‘면책특권’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헌법 제45조).
이 규정 뒤에서 활개를 치는 것이라면 인간적으로 너무 창피한 노릇이 아닌지 모르겠다.
“증인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 출석하여 증언함에 있어 폭행‧협박, 그 밖의 모욕적인 언행으로 국회의 권위를 훼손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3조 국회모욕의 죄).
그러니까 자기들이 채택한 증인(심지어 참고인도)들을 국회 안으로 불러들여 놓고 기분 내키는 대로 호통을 치고 모욕을 줄 수 있는 제도적 방어 수단을 만들어 놓고 용감한 척 설쳐대는 격이다. 이러면서 입만 열면 ‘국민’을 들먹이며 ‘국민의 대표’ 지위를 과시한다는 것인가.
과식하면 동티가 나게 돼 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과욕을 부리면 언젠가는 그걸 토해내야 할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언제까지나 지금의 지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껏 5년짜리 임기 대통령이 왜 이리 겁이 없냐.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국민이 무섭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보기 바란다”(정청래 4.19).
자신에게도 꼭 이렇게 험하고 무례한 표현으로 주의(注意) 주기를 권한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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