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문 닫힌 노량진 컵밥거리…"공시생보다 일반인이 더 많아, 주말이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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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갈수록 애들(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없어지니까. 일반인들이라도 오는 주말이 대목이죠."
'공무원 시험과 컵밥의 성지'로 불리며 활발한 상권을 자랑하던 노량진은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공무원 시험(공시) 열풍이 잦아들고 컵밥에 대한 선호도 낮아지며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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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급 공무원 경쟁률, 32년만에 최저
"해가 갈수록 애들(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없어지니까…. 일반인들이라도 오는 주말이 대목이죠."
30일 낮 12시께 찾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평일 점심시간이지만 사육신공원 인근에 길게 늘어진 컵밥거리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17년째 컵밥집을 운영하는 김영순씨(69)는 "코로나19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바글바글했던 예전의 4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10여분간 김씨의 가게를 지켜봤지만, 단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았다. 김씨는 "여름 휴가철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주변 가게들은 일반 손님이 많이 오는 주말에만 문을 여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19곳의 점포 중 14곳의 셔터는 굳게 닫혀있었다.
'공무원 시험과 컵밥의 성지'로 불리며 활발한 상권을 자랑하던 노량진은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공무원 시험(공시) 열풍이 잦아들고 컵밥에 대한 선호도 낮아지며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빠른 회전율과 합리적인 가격을 바탕으로 점심시간이면 컵밥거리가 붐볐지만 이젠 즐비한 프랜차이즈와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손님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날 만난 임용고시 준비생 최모씨(27)는 "3년째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한 번도 컵밥거리에 가본 적 없다"며 "가격적 메리트는 있는 것 같지만 좀 더 보태서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국가공무원 9급을 준비하는 A씨(25)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편이라 컵밥은 먹어본 적이 없다"며 "주변에 보면 공시생들이 확실히 줄어들다 보니까 컵밥만이 아니라 그냥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사람이 없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과 준비생 수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추세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의 경쟁률은 21.8대1로 1992년 이후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5년 전의 경쟁률은 37대 2였다. 일반직 공무원 시험 준비자는 지난 5월 기준 13만1000명(통계청)으로, 5년 전인 2020년 5월 28만3000명에 비해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노량진에는 공무원, 경찰 등 입시학원 60개가 있었지만 불과 5년 새 30여개로 줄어들었다.
컵밥거리 인근에서 1인 도시락 식당을 운영하는 윤모씨(28)는 "지난해보다 올해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어느 정도 공시생들의 수요를 기대하고 2년 전 가게를 넘겨받았는데 갈수록 장사가 안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노량진 곳곳에는 공실과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은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노제승 신화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공시생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 빈자리는 다른 1인 가구들이 채우고 있다"며 "그래서 건물주들도 노량진 상권이 학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노량진이 '고시촌'으로만 받아들여졌다면 이제는 그 트렌드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시기"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얼어붙은 노량진 상권을 공시생 감소라는 원인과 함께 재개발 사업 진행의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노량진에 거주하는 인구수는 큰 변화가 없지만 주변에 재개발 사업 지구가 많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며 "몇 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 재개발이 마무리돼야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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