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 고전, 스타 … 올 여름 한국 연극계의 트렌드
대극장 장기공연, 고전 희곡, 스타 캐스팅. 올여름 한국 연극계의 트렌드를 설명하는 세 개의 특징이다.
소극장 연극이 중심인 국내에서 올해는 대극장 연극이 유난히 많았던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1335석의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에서 ‘벚꽃동산’(6월 4일~7월 7일)이 올라간 데 이어 702석의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햄릿’(6월 9일~9월 1일), 1221석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맥베스’(7월 13일~8월 18일)가 잇따라 무대에 올라갔다. 그리고 8월 6일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에서 글림컴퍼니의 ‘엔젤스 인 아메리카’가 개막해 9월 28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이들 대극장 연극은 공연 기간이 모두 한 달 이상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고전 희곡을 무대에 올리는 한편 영화나 TV 드라마를 통해 인지도 높은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사실 장기간 대극장을 채우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벚꽃동산’은 러시아의 사실주의 연극의 거장 체홉의 4대 장막극 가운데 하나다. 제정 러시아 말기 몰락해가는 귀부인 류바와 농노에서 부유한 사업가가 된 로파힌의 이야기를 그린 원작은 이번에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에 의해 현대 한국 배경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칸의 여왕’ 전도연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박해수가 출연한 이 작품은 연일 화제를 모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손진책 연출 ‘햄릿’과 양정웅 연출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햄릿’은 박정자 전무송 손숙 등 한국 연극계의 전설적인 원로 배우들을 필두로 다양한 세대의 배우 24명이 모인 축제의 장이 됐다. 원전 텍스트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한편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햄릿 공주라는 젠더프리 캐스팅을 시도한 국립극단의 ‘햄릿’(7월 5~29일)과 비교되며 두 작품을 함께 보려는 관객이 많았다.
또 ‘맥베스’는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강렬한 미장센과 속도감 있는 전개를 통해 고전 희곡이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영화 ‘국제시장’ ‘베테랑’ ‘서울의 봄’을 통해 트리플 1000만 배우 반열에 오른 황정민을 비롯해 김소진, 송일국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막 전부터 매진을 기록한 이 작품은 최근 1회차를 추가하기도 했다.
현재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 신유청이 선보이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현대연극의 고전이다. 미국의 대표 극작가 토니 쿠쉬너의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밀레니엄을 앞둔 세기말의 혼돈과 공포를 담았다. 3시간이 소요되는 파트 원과 5시간의 파트 투로 이뤄져 있는데, 이번에는 파트 원만 다룬다. 주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유승호, 손호준, 고준희, 정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연극에 데뷔한다.
이외에 대학로 소극장에도 드라마와 영화, OTT 등의 매체 연기에서 꾸준히 활약하던 배우들의 출연이 이어지고 있다. 연극 ‘클로저’(4월 23일~7월 14일)엔 원더걸스 출신 안소희를 비롯해 이상윤과 진서연 등이 출연했고,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마친 박성훈은 연극 ‘빵야’(6월 18일~9월 8일)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현우와 문소리도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8월 13일~10월 27일)에 출연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유명 배우들의 연극 출연은 OTT 시장의 위축으로 영화와 드라마 제작이 줄어든 이유가 가장 크다. 이에 따라 배우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연극이다. 연기의 공백을 채우는 것과 함께 현장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으려는 목적이 크다. 황정민과 박해수처럼 무대를 고향으로 생각하는 배우들이 꾸준히 무대를 찾는다면, 유승호와 안소희 등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많이 배우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런 스타 배우들의 출연은 연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엄현희 연극평론가는 “최근 대극장 연극이 늘어난 것은 관객에게 선택의 폭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면서 “소극장 연극이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날카로운 메시지를 보여준다면 대극장 연극은 묵직한 이야기와 인상적인 미장센으로 강한 울림을 준다. 매체 배우들은 무대를 통해 새로운 커리어를 쌓고 동시에 연극계엔 활력이 돈다는 점에서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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