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짜리 한강뷰 보러 오세요"…카페·갤러리 열어젖힌 아파트 [아파트 개방시대]
지난해 8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에는 8047㎡(약 2438평)에 달하는 공공개방시설이 있다. 입주민뿐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단지는 지난달 1일 국민 평형(전용 84㎡)이 42억5000만원에 거래돼 화제가 됐다. 가격만 보면 '철옹성' 아파트인데, 단지 내 일부 시설을 시민을 위해 개방했다.
특히 단지 내에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카페만 두 곳이다. 지난달 22일 문 연 스카이브리지 카페로, 한강변 쪽 아파트 9층과 11층 높이에 조성돼 “40억짜리 한강 뷰를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났다. 카페 두 곳 면적만 858㎡(260평)에 달한다. 이곳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한 잔은 5500원으로 입주민은 35% 할인을 받는다. 카페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별도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서울에 공공개방시설 있는 아파트만 31곳
이 아파트에는 도서관ㆍ북카페ㆍ스터디 카페ㆍ독서실ㆍ영어돌봄센터ㆍ클라이밍센터ㆍ어린이영어도서관ㆍ아트갤러리 등 14개 공공개방시설이 있다. 입주민이 아니더라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스터디 카페 이용료는 2시간에 4500원으로, 입주민은 20% 할인된다. 임유경 영어돌봄센터 원장은 “아파트 상가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돌봄시설을 보고 문 열 때까지 기다렸다는 분도 있고,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문의도 많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아파트 단지 문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 서울에서 이런 공공개방시설을 갖춘 아파트 단지가 쏟아지면서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정비사업을 통해 공공개방시설을 만들었거나, 계획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31곳에 달한다. 이 중 준공된 단지는 서초구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와 래미안 원베일리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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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간격 완화 조건으로 공공개방시설 지어
이런 개방시설은 무상으로 지어지는 게 아니다. 혜택을 받고 만든다. 31곳 모두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돼, 동(棟) 간 거리(인동간격) 기준이 완화됐다. 과거 서울시는 아파트 인동간격을 앞 동이나 옆 동 높이의 약 0.8배 이상(2022년부터 0.5배 이상)으로 띄우도록 했다. 일조권 확보를 위해 인동간격이 필요하지만, 일률적인 규제 탓에 층수가 똑같은 성냥갑 아파트가 지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공공개방시설이 취지대로 잘 운영된다면 부족한 동네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시설 이용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공공개방을 원치 않는 입주민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시설 개방에 갈등, 주민등록등본 요구도
국내 최초로 헬스장ㆍ수영장ㆍ카페 등 공공개방시설(4566㎡)을 만든 아크로리버파크는 2016년 8월에 준공했지만, 이후 1년이 넘도록 공공개방시설을 개방하지 않았다. 결국 서초구청이 건축법 위반으로 건축물대장에 위반 건축물로 표기하고, 이행강제금을 매년 부과하겠다고 통보한 끝에 반포동 주민에 한해 시설을 개방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설을 이용하려면 절차가 까다롭다. 주민등록 등본을 지참해 반포동 주민임을 증명하고, 별도 출입카드를 받아야 한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아크로리버파크는 첫 개방 사례이다 보니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시행착오가 많았다”며 “래미안 원베일리부터 문제점을 보완해 입주민 전용 커뮤니티 공간과 개방공간을 분리하고, 개방공간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도록 단지 바깥쪽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래미안 원베일리는 공공개방시설 위탁 운영자도 따로 뽑았다. 이 운영자는 임대료를 따로 내지 않는 대신 운영수익으로 관리비를 내야 한다. 2400평이 넘는 원베일리 공공개방시설의 경우 한 달 전기세만 1700만원 이상으로 이를 포함한 관리비가 월 55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위탁운영을 맡은 김진욱 한솔아이키움 대표는 “공공개방시설 면적은 큰데 모든 시설이 카페와 같은 수익시설이 아니다 보니 어려움도 많지만, 잘 운영해서 공공개방시설도 좋은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래미안 원베일리 역시 입주자들의 반대로 관련 시설 개방이 늦어지기도 했다. 결국 서초구가 이전 고시 취소를 해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할 수 없게 하겠다고 경고한 끝에 최근 개방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 특별건축구역으로 인센티브를 받고 공공개방시설을 만들기로 한 단지는 정비사업 단계별로 해당 내용이 잘 지켜지는지 철저히 관리·감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모든 아파트 단지마다 일괄적으로 공공개방시설을 만들기보다 주변 상권이나 권역에 맞춰 지역에 진짜 도움이 되는 시설을 만들어 적정 규모로 개방해야 운영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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