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도 없던 남수단의 첫 승, 그 영광 뒤엔 한국인 있었다
파리올림픽 남자 농구에 처음 출전한 남수단이 대회 판도를 뒤흔드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국제농구연맹(FIBA) 랭킹 33위 남수단은 28일(한국시간) 프랑스 릴의 피에르 모루아 아레나에서 열린 푸에르토리코(16위)와의 대회 C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친 끝에 90-79로 이겼다. 올림픽 본선 무대에 처음 출전한 ‘농구 막내’가 데뷔전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직후 선수단은 물론 관중석을 찾은 남수단 팬들까지 뒤엉켜 눈물바다를 이뤘다.
남수단은 지난 20일 이미 ‘예고편’을 선보였다. 세계 최강 미국과의 연습경기에서 시소게임 끝에 100-101, 단 한 점 차로 졌다. 33개의 3점 슛을 시도해 14개를 꽂아 넣는(성공률 42.4%) ‘양궁 농구’로 미국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다. 이어 벌어진 이날 푸에르토리코전은 남수단의 실력이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무대였다.
남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지난 2011년 수단에서 분리 독립한 이후 13년이 지났지만, 연이은 내전으로 인해 자국 내에 실내체육관이 한 곳도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농구 종목에서 급속도로 경쟁력을 키운 건 신체적인 장점에다 굳은 의지를 결합한 결과다.
남수단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딩카족은 전 세계에서 평균 신장(남자 1m90㎝·여자 1m80㎝)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서 활약했던 루올 뎅 남수단 농구협회장의 키가 2m6㎝다. ‘농구 DNA’를 확실하게 갖춘 셈이다.
열악한 환경은 헝그리 정신으로 극복했다. 남수단 포워드 웬옌 가브리엘은 “우리나라엔 변변한 훈련 시설조차 없다. 생활 환경도 마찬가지다. 나를 포함해 대표팀 동료 대부분이 난민으로 떠돌던 사람들”이라면서 “우리가 모여 훈련하는 기간은 1년 중 몇 주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자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남수단 농구의 기틀을 세운 게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남수단에서 축구를 가르치던 임흥세 감독과 현지 교민회장 출신 김기춘씨가 의기투합해 남수단 올림픽위원회(SSOC)를 창립했다. 이 과정에서 산하 단체로 농구를 포함한 9개 종목 협회를 함께 만들었다.
농구공과 유니폼 등 기본적인 훈련 장비조차 없어 한국 스포츠계가 도움을 줬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이에리사 현 국가스포츠정책위원장의 주선으로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이 남수단에 자금과 스포츠용품을 전달했다. 한국농구연맹(KBL)은 각 구단에 부탁해 수집한 프로 선수들의 유니폼을 전달했다. 그 덕분에 남수단 농구대표팀 출범 초기엔 선수들이 한국 프로농구팀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훈련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을 앞두고는 국내 스포츠 브랜드 낫소가 농구용품을 후원하는 등 도움을 줬다.
올림픽 기간 중 휴가를 얻어 국내에 머물고 있는 임흥세 SSOC 부위원장은 “농구대표팀의 승전보에 남수단 전역이 축제 분위기가 됐다”면서 “대한민국 스포츠의 따뜻한 후원이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남수단 체육계 관계자 모두가 감사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올림픽 본선 첫 승을 거둔 남수단 농구대표팀은 다음 달 1일 오전 4시 같은 장소에서 ‘최강’ 미국과 C조 조별리그 2차전을 벌인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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