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힐빌리의 메시아

전웅빈 2024. 7. 3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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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은 뒤처졌고, 흑인은 성장했다.

빈곤과 불평등을 연구한 라즈 체티 경제학 교수가 이끈 하버드대 연구팀이 지난 25일 5700만명의 데이터를 추적 분석해 발표한 논문은 제조업 몰락 충격을 받은 백인 노동계급의 상실을 실증했다.

백인 노동자들의 상실은 이처럼 상대적이지만 동시에 실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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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1. 쇠락한 제조업 도시(러스트벨트) 위스콘신주 밀워키. ‘힐빌리’로 불리는 저소득 백인 가정(하위 25%)에서 태어난 1992년생 원숭이띠 A는 27세 때인 2019년 소득이 3만619달러(인플레이션 조정)였다. 같은 지역, 같은 계층에서 78년 태어난 말띠 백인 B가 같은 나이(2005년) 때 얻은 소득(3만4225달러)보다 11%가량 적다. 말띠 B는 소득 하위 48%까지 성장하며 부모세대보다 여유로워졌지만 원숭이띠 A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오를 수 없었다.

#2. 미시간주 켄트카운티의 저소득 흑인 가정(하위 25%)에서 78년 태어난 말띠 C는 27살이 됐을 때 소득이 1만7029달러로 부모세대와 똑같은 빈곤층에 속했다. 반면 저소득 흑인 가정에서 1992년 태어난 원숭이띠 D의 27세 소득은 2만3547달러로 C보다 38% 커졌다.

백인은 뒤처졌고, 흑인은 성장했다. 빈곤과 불평등을 연구한 라즈 체티 경제학 교수가 이끈 하버드대 연구팀이 지난 25일 5700만명의 데이터를 추적 분석해 발표한 논문은 제조업 몰락 충격을 받은 백인 노동계급의 상실을 실증했다. 연구는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하나는 계층 이동이 부모 취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 일자리가 붕괴되는 동안 백인 부모들의 취업률은 떨어졌고, 흑인 부모들의 취업률은 큰 변화가 없었다. 다른 하나는 가난한 백인이 가난한 흑인보다 여전히 부유했고, 격차만 30%쯤 줄었다는 점이다.

백인 노동자들의 상실은 이처럼 상대적이지만 동시에 실제적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백인계층 내에서도 존재했다. 저소득층 출신의 78년생 말띠 백인은 27세가 됐을 때 고소득층 출신의 말띠 백인보다 평균 1만383달러 적게 벌었다. 그러나 92년생 원숭이띠 백인의 계층 간 소득 격차는 평균 1만3202달러까지 확대됐다. 왜 유독 백인 노동계급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열광하는가를 파악할 힌트가 여기 있다고 한다. “다른 그룹은 앞서가는데 우리만 뒤처졌다”는 박탈감을 공유하는 집단에게 트럼프는 타 인종에 대한 배타적 심리를 주입하고, 기득권 정치인들이 협잡한다는 논리를 반복적으로 교시했다. “세계화가 일자리를 파괴했고, 이민자들이 터전을 빼앗았다. 그런데도 기득권자들은 이민자와 소수인종 우대 정책만 펴고 있다.” 트럼프의 연설은 상실의 시대에 갇힌 백인 노동계층에게 복음처럼 들릴 만하다. 혼란에 빠진 사회에서 홀연히 등장하는 구세주,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말한 ‘메시아 콤플렉스’ 현실 버전이다.

이는 가장 분열적인 언어로 화합을 말했다는 트럼프의 지난 18일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우리는 모두 동료 시민”이라며 준비된 원고를 읽다가 돌연 “미친 낸시 펠로시” “못난 바이든”을 애드리브로 내뱉었다. 관중은 인자한 척하는 트럼프보다 대놓고 싸움닭인 트럼프에게 더 손뼉 치며 환호하는 듯했다.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요즘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이런 모습을 ‘그냥 괴상하다’(plain wierd)고 싸잡아 놀리는 밈이 확산하고 있다. 이 표현이 인기를 끌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까지 공개석상에서 이를 언급해 캠페인으로 활용했다. 무기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퇴장으로 활기를 얻은 민주당의 역공일 수도 있겠다.

‘괴상하다’ 놀이는 그러나 백인 노동자들을 소외시킨다. 진보적인 대학 교육을 받은 민주당 엘리트 집단에 또 한번 모욕과 굴욕을 당하고 있다는 감정, 싸움닭 트럼프만이 내 편이라는 유대만 강화할 수 있다. “어리석고 바보 같으며 역효과만 낼 정치 조롱”이라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톰 프리드먼의 지적은 모두가 곱씹어 볼 만하다.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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