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멈춤의 지혜

2024. 7. 3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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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우화다.

가난한 농부 파홈은 원하는 만큼 땅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악마라도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던 중 이웃 바시키르 마을에서 굉장히 넓은 땅을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싶었던 파홈은 바시키르로 가서 그곳 사람들과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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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밀(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우화다. 가난한 농부 파홈은 원하는 만큼 땅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악마라도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쳤다. 대화를 엿듣던 악마는 파홈에게 땅을 줘 그를 유혹하리라 마음먹는다. 얼마 후 파홈은 열심히 모은 돈으로 원하던 땅을 샀다. 하지만 작은 땅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더욱 큰 땅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이웃 바시키르 마을에서 굉장히 넓은 땅을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싶었던 파홈은 바시키르로 가서 그곳 사람들과 계약했다. 1000루블만 내고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에 돌아오면 자신이 밟은 땅을 모두 차지해도 좋다는 조건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거래는 무효였다.

다음 날 파홈은 동이 트자마자 신이 나서 앞으로 걸어갔다. 점심이 지나 돌아올 지점을 통과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의 눈앞엔 더욱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당황한 파홈은 죽을힘을 다해 출발점으로 달려갔다. 해가 지기 직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원래 지점에 도착했지만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슴을 쥐고 피를 토한 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바시키르 사람들은 땅을 파서 파홈을 묻어주었다. 그가 가질 수 있었던 땅은 그가 묻힌 2㎡ 넓이의 무덤이었다. 파홈은 눈 앞에 펼쳐진 더 풍요로운 땅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본래 계획보다 더 멀리 나갔고 무리하게 달린 탓에 죽음을 자초하고 말았다. 족함을 알고 멈추면 좋았으련만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

파홈의 욕망은 인간의 자화상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가져도 더 탐내고, 누려도 더 누리려 한다. 끝까지 올라가도 만족하지 못한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욕망과 탐욕을 칭찬하고 장려한다. 성과주의와 재테크로 상징되는 물질문명 세상에서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끝없는 욕망을 좇다가 망하는 이야기는 단지 파홈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 사건사고의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최근에도 국내 최대 규모인 전자상거래 플랫폼 중 하나가 상품 거래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 입점 업체들이 자금난에 빠지고, 수많은 소비자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무리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관계자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한다. 도에 넘치는 탐욕으로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는 기업과 사업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서도 빈번히 보인다. 충분히 배가 부른데도 더 배를 채우려는 욕심이 악마까지 끌어들이게 되고, 자신과 이웃을 공멸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19세기 문장가 홍길주는 ‘지지당설(止止堂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험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지만, 순탄한 곳을 만나고도 멈추는 것은 지혜로운 자만이 할 수 있다.” 내 욕망이 저 앞에 있을 때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건 쉽지 않다. 깜냥을 잘 헤아려 그치면 좋으련만 ‘조금만 더’ 하는 욕심 때문에 이미 얻은 것조차 잃어버리는 일이 인생에는 허다하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던 이카루스는 태양까지 닿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해 더 높이 날아오르다 추락해 죽고 말았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무 아끼면 반드시 크게 허비하고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갈 수 있다.” 너무 쌓아두기만 하면 반드시 크게 잃는 날이 있다. 분수를 잘 알고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고 오래 이어질 수 있다.

박수밀(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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