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어렵다’를 쉽게 말하기
피하지 않고 맞서며 경험 넓혀
나를 더욱 풍요롭게 이끌 것
드디어 내게도 이 시기가 찾아왔다. 아이의 끊임없는 질문에 답하느라 의미들의 원형을 되짚어보는 그런 시기.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엄마, 상냥한 게 뭐야?” “상냥하다는 건 사람들에게 친절한 거야” “친절하-는-건 뭐야?” “친절하다는 건 네가 친구들에게 더 많이 웃어주는 거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문장이 만들어진다. 단순하지만 공감 가고, 공감 가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문장에 도착해야 이 꼬리 물기가 끝난다.
아이는 대화 중 수시로 끼어들며 말의 뜻을 확인한다. “쉽지 않아”라고 말하는 내게 아이가 묻는다. “쉽지 않은 게 뭐야?” 대화를 마저 이어가기 위해 나는 가장 빠른 대답으로 무마한다. “어려운 거야.” 아이가 묻는다. “어려운 게 뭐야?” 이미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던 아이기에, 이번 기회에 이 뜻을 익히게 하리라는 다짐으로 적확한 설명을 궁리한다. “끈 있는 신발을 혼자 신을 때 어때?” “어려워.” 이제 끝났다, 생각하며 대화로 돌아오려는데 아이가 한 번 더 묻는다. “쉬운 건 뭐야?”
그러게 정말, 쉬운 건 뭘까. 매일같이 “쉽지 않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정작 ‘쉽다’의 뜻을 네 살 아이에게 설명하려니 멈칫한다. 쉬운 것. 그것은 고민과 에너지를 덜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운 것은 그 반대. 내게 주어진 시간, 체력, 능력, 친절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일. 내 깜냥을 넘어서는 일이다. 아이가 내게 “쉽다는 게 뭐야”라고 질문할 만큼 컸는데도 나는 여전히 너무도 작아 어려운 것투성이다. 이쯤이면 좀 늘 법도 한데 사는 건 도통 늘지 않는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이의 천진한 질문에 이끌려 익숙하고 당연한 세계를 다시 점검한다.
나는 어렵다.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내가 챙겨야 할 사람과 책임은 더 늘어난다. 나는 어렵다. 세상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은 이토록 빠르게 불어나고 늘어나는데 나는 너무 느리고, 부족하다. 어렵다의 자리에 ‘두렵다, 무섭다, 힘들다, 불안하다’를 넣어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으니 내가 느낀 ‘어려움’이라는 감정이 진짜 어려움이 맞는지조차 의심이 든다. 진짜 어렵나? 어렵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어렵다’와 ‘쉽다’의 사전적 뜻에는 공통적으로 ‘까다롭다’와 ‘가능성’이란 말이 등장한다. 어려운 건 까다롭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 쉬운 건 까다롭지 않고 가능성이 많은 일, 어려운 일은 까다롭고 다루기 복잡한 일이다. 그러나 가능성의 가짓수로 난이도를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가능성이 너무 많지만 ‘아직’ 찾지 못한 일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렵다’는 마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상태다. 어려움은 늘 처방을 요구한다. 그 처방은 일의 주도권을 내 쪽으로 가져오는 것. 수많은 가능성을 검토하고, 내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처방한 방식이 언제나 극복이나 해결로 맺어지지 않더라도 어려움에 맞서는 수고는 내 경험의 영토를 한 뼘 확장시킨다. 내가 마주하는 세상과 사람들의 까다로움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시간들이 내 관점의 품과 폭을 넓혔다.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이 부끄러워 발버둥치며 어떻게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우왕좌왕하던 그 손짓과 발짓 덕에 세상을 좀 더 풍성하게 감각할 수 있었다. 내버려두지 않은 어려움은 언제나 나를 더 많이 살게 했다. 그러니까 ‘어렵다’를 쉽게 말하자면, 그건 내가 자라나는 일이다. 더 많이 사는, 더 다채롭게 사는 일이다.
물리적 존재감을 확장하며 자라나는 아이와 달리, 성장보다 노화가 걱정인 나의 ‘자람’은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 그럼에도 앞으로 더 쉬워진다는 보장 없는 나날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일들’이 나를 더 풍요로운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 나를 더 키울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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