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냉랭한 민생, 달아오르는 부동산

2024. 7. 3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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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내수 경기는 좋지 않은데, 수도권 주요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먼저 세가지 통계를 살펴보자. 첫째,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보다 0.2% 줄었다. 1분기 1.3%의 깜짝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경기 개선세가 다소 미약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7월 KDI 경제동향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했다. 소매판매, 설비투자, 건설투자가 모두 감소했고, 수출과 내수의 경기 격차는 지속되고 있다.

둘째, 지난달 발표된 ‘2023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국내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3만2032곳 중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 비중은 40.1%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국내기업 10곳 중 4곳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는 뜻이다. 고금리에 따른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매출액증가율, 총자산증가율, 매출영업이익률도 전년대비 감소했다.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동반 하락했다.

「 자금 부동산에 묶이며 경기 부진
냉온탕 정책 반복으로 신뢰 상실
부동산을 경기 조절에 쓰지 말고
분양가 상한·전세 제도 개선해야

셋째,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으로 전년 대비 13.7% 증가했다.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올해 상반기 실업자 중 지난 1년 사이 자영업자였던 사람은 월평균 2만6000명으로, 작년 대비 23.1% 증가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6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6월 전국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04%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6월 18일 주택산업연구원은 하반기 서울 집값은 1.8%, 수도권 집값은 0.9% 상승이라 전망한 반면, 지방은 2.7% 하락할 것이라 예상했다. 연합뉴스

반면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의 아파트 시장은 열기가 뜨겁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하는 6월 서울의 주택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가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 기준 서울 아파트 계약건수는 2020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7000건을 돌파했다. 이전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신고가 거래 비중도 9%에 달한다. 과거 부동산 시장과 확연히 다른 특징이라면 서울과 주요 수도권 지역의 준신축 아파트 단지 위주로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다음 세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빌라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 수요가 빌라에서 아파트로 옮겨오면서 아파트 전세값이 상승했다. 이는 다시 아파트 매매가격을 밀어올렸다. 둘째, 신생아 특례대출, 디딤돌·버팀목대출 등 정책형 주택담보대출의 영향이 있다. 정책대상인 9억원 이하 주택매매가 증가하고, 해당 주택의 매도자들이 9억원 이상의 상급지로 갈아탔다. 셋째, 하반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과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주택공급 위축 우려가 동시에 매수심리를 자극했다.

정리해보자.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가계의 자금은 수도권 아파트 시장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비단 가계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 ‘우리나라 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기업부채는 2023년말 2734조원으로 2018년 이후 총 1036조원 증가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부문에 대한 신용공급이 확대된 것을 기업부채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부동산에 기업과 가계의 자금이 지나치게 쏠리는 것이 국가경제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좋을 리가 없다. 인구비상사태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준비하기도 부족한 마당에 상당수의 돈은 부동산에 묶여있다.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습. 해당 회의 내에서 주택공급과 가계부채 등과 관련한 대책이 제시되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정부의 첫번째 부동산 대책은 1967년 11월 29일 발표된 ‘부동산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다. 이후 57년동안 부동산 대책만 100건 이상이 발표됐다. 경기 침체시는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경제에 부담을 주기 시작하면 규제를 강화하는 냉온탕 정책의 반복이었다. 부동산 정책은 이제 백약이 무효하다. 시장 참여자들이 부동산 정책은 때가 되면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지적한다. 첫째, 부동산 정책을 경기의존적으로 바꾸지 말고,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목적은 주거안정이 되어야지, 경기 조절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지지 기반의 표를 얻기 위해 부동산 정책을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부동산 가격의 왜곡과 대출관행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전세 보증과 전세 대출을 서서히 줄여나가야한다. 전세 보증과 전세 대출은 집값 버블의 가능성을 야기한다. 셋째, 집값 안정 효과는 미미한데 장기적으로는 공급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는 분양가 상한제를 개선해야 한다. 분양가 상한제가 있다고 주변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리 없다. 한 명의 현금 부자에게 로또 아파트 당첨 혜택을 주기 위해 수만 명의 아파트공급을 지연시킬 필요가 하등 없다.

이같은 지적이 임진왜란 발발 9년 전 율곡의 ‘십만양병설’과 같은 처지라는 걸 전문가들도 알고있다. 결국 임진왜란과 같은 국가적 위기는 불현듯 닥칠 것이고,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망칠 것이다. 통계 숫자가 보여주는 민생의 실존적 고통은 외면한 채, 붕당정치에 골몰하는 이들을 뽑은 우리의 업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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