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영의 글로벌 포커스] 트럼프냐 해리스냐 섣부른 예측보다 치밀한 대응 전략이 먼저다
미국 대선(11월 5일)이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후보 교체론을 촉발한 6월 27일 첫 TV 토론,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암살 위기를 모면하고 강인한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선거 유세와 공화당 후보 지명, 바이든 대통령의 7월 21일 전격적인 후보 사퇴까지. 최근 한 달 동안 초대형 변수들이 쏟아지면서 미국 대선 국면이 미증유의 시계 제로 상태로 들어섰다.
총격 사건 이후 공화당은 바이든 사퇴에 따른 득실을 계산하면서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확실시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쪽으로 공격의 초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민주당은 트럼프 당선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고조된 열기가 당 내외에서 뜨겁게 느껴진다. 유력 대권 후보들이 속속 해리스 지지를 표명하는 가운데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선언 불과 이틀 만에 후보 선출에 충분한 지지(대의원의 3분의 2)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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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스, 바이든의 정책 이어갈듯
트럼프 집권하면 정책 급변 우려
누가 되든 한·미 관계 강화책 필요
조야에 인적 네트워크 확대해야
」
그동안 답보하던 후원금도 기록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대권 도전 선언 1주일 만에 2억 달러(약 2764억원)의 선거자금을 모았을 정도다. 위스콘신주에서 개최된 첫 대중 집회에서 해리스는 경제 정책, 노조 문제, 낙태 이슈 등 정책적 측면에서 트럼프 후보와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그뿐만 아니라 트럼프를 범죄자로 몰아붙여 지지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예측 빗나갔던 1992년과 2016년 대선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은 ‘트럼프 대세론’을 이어 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이 후보 교체라는 미국 헌정사상 초유의 포석으로 대선 국면을 뒤집을 것인가. 아직은 대선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 필자는 1992년과 2016년 두 차례 워싱턴 현지에서 미국 대선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두 선거에 공통점이 있었다. 당초 예측이 크게 빗나갔다는 점이다. 1992년 초반에는 대부분 전문가가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낙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때문에 유력한 민주당 후보들은 아예 출마를 피하는 분위기였다. 2016년 대선 때는 투표 전날까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승리가 당연시됐다. 그러나 전혀 다른 투표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 옆엔 고립주의와 국제주의 혼재
미국 대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우리가 할 일은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지 한·미 관계를 지속해서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지난 4년간 경험한 한·미 관계는 상당 부분 연속성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할까.
먼저 한·미 관계 발전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트럼프 후보는 암살 기도 이후 ‘미국의 통합’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공화당 후보 수락 연설을 보면 통합과 거리가 멀었다. 정적에 대한 신랄한 공격과 함께 트럼프 1기 때보다 더 강한 경제적 내셔널리즘, 동맹에 대한 깊은 불신감, 거기에 더해 북한 김정은을 비롯한 전체주의적 지도자들과의 접근 의지 등 대한민국을 긴장시킬 내용으로 점철된 연설이었다.
일각에서 대미 관계에 일정한 거리를 두자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외교·안보·경제 현실을 고려할 때 그것은 현명한 대안이 아니다. 트럼프 캠프의 외교·안보 인사 중에는 고립주의자가 많지만, 힘에 의한 평화와 동맹의 협력을 중시하는 ‘레이건주의자(Reagan Republican)’들이 혼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에 어떤 목소리가 트럼프 2기의 정책으로 구현될지가 중요하다. 여기에는 동맹국들의 노력도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므로 한국의 대미 외교는 이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 예상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대미 협상 전략을 치밀하게 마련해야 한다. 2016년 대선 기간에 당시 트럼프 후보의 발언에서 필자가 특히 예의주시한 현안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 무역 불균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이었다. 무역 불균형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천연가스(LNG) 수입을 서둘렀고, 한·미 FTA 개정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임명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취임 초기부터 수차례 면담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 후보 캠프의 선거 공약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은 물론이고,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440억 달러)를 넘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고도화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바이든 정부 시절 대규모로 이뤄진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문제 등이다.
1기 정부 참모들의 정책 건의서 주목
이런 문제들에 대한 트럼프 캠프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트럼프 1기 정부에 참여했던 참모들이 주축이 된 정책 건의서(‘프로젝트 2025’),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의 주요 건의서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방한하는 트럼프 캠프 인사들과 만나 이런 이슈를 화제로 심도 있게 대화해야 한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와 기술, 군사 능력에 대해 높게 평가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호주, 그리고 한국이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한 기대를 종종 피력한다. 이들은 한국의 방산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들 분야는 미국의 차기 정부와 한·미 관계를 지속해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좋은 기초다.
셋째, 대미 협상 전략 마련과 함께 중요한 것이 대선 캠프와의 인적 관계 구축이다. 주미 한국대사관에는 특별한 조직이 있다. 미국 의회와의 관계를 다루는 의회과다. 의회과는 평소 상원 팀, 하원 팀으로 나뉘어 활동했다. 그런데 필자가 대사 시절 대선이 있던 2016년에는 민주당 팀, 공화당 팀으로 나눠 운영했다. 각 선거 캠프와의 인적 네트워크 심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당시 야당이던 공화당과도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대선 이전에 만난 공화당 전국위원장 라인스 프리버스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고, 마이클 플린은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은 법무부 장관이 됐다. 경제 각료 중에는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던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을 취임 전부터 누차에 걸쳐 만났다. 그는 “나를 스토킹하느냐”고 농담하면서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미 관계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흔들려서는 절대 안 될 정도로 우리 국익에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다. 면밀히 대비하면 이번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더 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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