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주의 시선] 탈고 미뤄진 백서, 그래도 가야 할 길

임종주 2024. 7. 3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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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주 정치에디터

“어떻게 하늘과 땅을 사고팔 수 있는가?”(시애틀 족장의 말). “우리는 선조로부터 대지를 물려받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후손에게서 빌려올 뿐이다”(북미 원주민 잠언). 며칠 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에서 접한 문구다. 땅을 한낱 정복과 소유, 탐욕의 대상으로 여겨온 물신주의 세상에 남다른 울림을 준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6월18일~10월9일) 전시회 모습. 연합뉴스


흔히 인디언으로 불린 북미 원주민들은 그 방대한 땅을 외지인에게 빼앗기고 척박한 보호구역으로 내몰리면서도 나름의 부족공동체(미국·캐나다 정부 집계 1100여개) 문화를 꿋꿋이 지켜왔다. 그러나 물밀듯 밀려든 벽안(碧眼)의 이주민들에겐 그마저도 세력 확장의 저해 요소로 간주됐다. 부족들을 때로는 어르고 때로는 달래면서 백인 주류문화로 흡수하려는 시도가 뒤따랐다. 그러다 된통 탈이 난 게 ‘1969 백서(White Paper)’ 파동이었다.

캐나다 정부는 1969년 미국 민권운동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자 새 인디언 정책을 백서로 발표했다. 핵심은 시민권 부여와 사유재산제 도입이었다. 원주민에게 시민권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무한 경쟁을, 사유재산은 전통적 토지 공동소유 개념의 와해를 각각 의미했다. 그 종착지는 인디언 공동체의 소멸이었다. 백서는 나오자마자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비판에 직면했다. 원주민들은 “미래 세대를 절망과 도시 빈곤의 추악한 유령으로 내모는 문화적 학살”이라며 반발했다.

북미 원주민에게 자연은 위대한 존재고, 아이들의 가장 큰 선생님이라는 생각은 아기 요람에도 담겨 있다. 에드워드 S 커티스의 ‘압사로가족 어머니와 아이’. 미국국회도서관


걷잡을 수 없는 시위로 궁지에 몰리게 된 캐나다 정부는 결국 이듬해 백서를 공식 철회했다. 주류 시각에 갇혀 과거사에 대한 성찰을 간과한 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백서는 원주민 차별의 잔혹한 역사를 다루는 데 소홀했을 뿐 아니라 원주민 의견 수렴에도 실패했다”(브라이언 멀로니 정부연구소). 과거에 대한 몰성찰은 현재를 진단하는 눈을 가렸고, 미래는 현실과 동떨어진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다. 흑서 신세로 전락한 백서는 역설적으로 북미 원주민 민족주의를 싹틔워 인디언 정치 조직화의 새 시대를 여는 계기로 작용했다.

북미 학계 일각에선 아예 백서라는 말 자체를 폐기하자는 운동도 벌어졌다. 원래 백서는 정부의 입법 방안을 제시하는 정책 문서로, 영국 정부가 표지를 흰색으로 했던 데서 유래했지만, 그런 내력과는 상관없이 명칭에서 백인 우월주의 냄새가 풍긴다는 이유에서였다. 백서는 이런 굴욕에도 요리·여행 같은 일상 매뉴얼이나 의사 결정을 돕는 문서로까지 쓰임새가 확대됐다. 정치권력의 지배 수단인 크레덴다(합리적 설득)로서의 유용성도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퇴행적 양태가 곧잘 고개를 들었다.

국민의힘 조정훈 총선 백서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3차 총선백서 특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22대 총선 백서를 둘러싼 논란이 딱 그짝이다. 4·10 총선 참패에 대한 진지한 성찰 대신 책임론 공방에 매몰되면서 백서는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다시피 했다. 애초 친윤석열계로 인식된 조정훈 의원이 집필 작업의 키를 쥔 채 당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친한동훈계는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이다. 백서의 신뢰·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반발했다. 조 의원의 당대표 불출마 선언이 나오고 나서도 편파 논란은 해소되지 않았다. 백서에 담길 내용은 물론 공개 시기를 두고도 7·23 전당대회 내내 친윤·친한 간 크고 작은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백서가 계파 갈등의 불쏘시개로 변질하면서 진작 마치겠다던 탈고는 끝내 전당대회 이후로 미뤄졌다. 냉철하고 통렬한 성찰·반성을 통해 보수 혁신과 쇄신의 나침반으로 삼겠다던 당초 취지는 빛이 바랬다. 전당대회가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으로 시작해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청탁’ 폭로전으로 끝나는 등 최악의 진흙탕 싸움으로 흐른 것도 어쩌면 예견된 사태일 터이다.

「 여당 갈등 불쏘시개 된 총선 백서
성찰·반성 대신 계파 책임론 매몰
과거 교훈 없이 장래 밝을 수 없어

여당 새 지도부 출범과 함께 ‘과거 대신 미래로’라는 목소리가 더 득세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의 실패에서마저 교훈을 얻지 못하고 공당의 장래가 밝기만을 기대하는 건 과욕이다. 일시적인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에 취해 민심의 매서운 회초리마저 무뎌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백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성찰과 혁신 의지의 가늠자다. 반성적 접근을 배척한 미래 비전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보름 전쯤 캐나다 원주민 부처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다코타와 라코타 원주민 부족에게 “여러 세대가 겪은 과거의 피해에 사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야만적 원주민 정책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사과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반백 년 전 성찰의 기회를 도외시한 데 따른 뼈아픈 후과다. 시·공간을 초월해 백서가 숙고해야 할 실증적 지침이다.

임종주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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