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원전 수주 기쁜 일이지만 원전 생태계 회복 아직 멀었다 [정범진이 소리내다]

정범진 2024. 7. 31. 00: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덤핑이라면 기업 참여했겠나
2기 수주로는 신규 투자 한계
흔들리지 않는 원전 정책 필요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24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특사 자격으로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를 만나 윤석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지난 7월 17일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8년을 매달려온 사업에 굵은 획이 그어진 것이다. 선정 1주일 전 체코 실무진의 보고서에서도 한국이 기술성과 경제성 평가에서 경쟁국인 프랑스를 멀찌감치 앞서고 있었다. 다만 프랑스의 외교력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발표 직전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년 3월 본 계약까지 복잡한 협상의 과정이 남아있다. 이 협상은 체코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한 시기에 준공되어 전기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덤핑 수출이라며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우려를 전하기도 한다. 우려는 할 수 있지만 예단을 갖고 폄훼할 일은 아니다.

정근영 디자이너

두코바니 5·6호기 건설 사업은 약 4000억 코루나(약 24조원)로 발표됐다. 건설 금액이 프랑스보다 크게 낮다고 해서 덤핑일까. 일단 경쟁 상대인 프랑스전력공사(EDF)는 핀란드에 건설 중인 올킬루오토 원전 공사 기간을 13년 지연시켰고 자국의 프라망빌 원전도 10년 이상 지체됐다. 공사를 일정에 맞게 할 수 없으면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당초 약속한 일정을 준수하였고 예산도 초과하지 않았다.


UAE 1기당 7조원, 체코는 12조원


당시 사업과 비교해 보자. 두코바니 원전은 1기당 12조원이고 UAE 바라카 원전은 7조원 수준이다. 또 두코바니 원전의 발전 용량은 1000MW(메가와트)이고 바라카 원전은 이보다 큰 1400MW이다. 물론 2024년과 2009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물가 인상분을 고려해야 할 것이고 또 유럽 지역 건설의 품셈이 달라야 할 것이지만 덤핑으로 보기 어렵다. 프랑스보다 싸다는 점은 우리의 기술력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사업은 한수원을 중심으로 한 팀 코리아가 수주한 것이지만 참여 기업은 손해가 날 것 같으면 언제든지 빠질 수 있는 구조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한국전력기술,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은 얼마를 받아야 할지 각자 계산하였고 그 가격이 반영된 것이다. 정부나 한수원이 하향식(Top-down)으로 위에서 총액을 결정하고 알아서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상향식(Bottom-up)으로 참여 기업이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적어내고 그것을 합산한 결과라는 말이다. 덤핑이었다면 이들 기업은 빠졌을 것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소송 문제도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제기된다. 법률 관계는 쉽게 예단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큰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웨스팅하우스와 한전은 기술전수 계약을 했고 2007년에는 라이센스 계약을 했다. 라이센스 계약의 취지는 라이센스를 받은 그대로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계약에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미국에는 안 된다는 뜻도 아니다. 미국은 별도 협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계약의 취지와 금액을 본다면 이제 와서 문제를 삼기 어렵다. 미국 법원에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소송은 특허권 차원이 아니라 핵 안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웨스팅하우스는 소송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1심에서 패소했다.

박경민 기자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단 체코라는 원전 선진국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체코는 한국보다 먼저 원전을 운영한 나라로 자국의 능력만으로 가스중수로를 설계하여 건설한 이력도 갖고 있다. 이 나라가 면밀한 검토 끝에 한국의 원전을 택했다는 것은 다른 유럽 국가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이는 체코 테멜린 3·4호기는 물론 네덜란드, 슬로베니아, 핀란드, 스웨덴,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UAE 추가 원전 수주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체코 원전 수주는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파괴된 원전 생태계를 회복하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탈원전 기간 동안 국내 중소기업은 망하거나 업종을 전환하였다. 원전 기자재 생산을 위해 설치한 공작 기계는 고철값에 팔아야 했다. 이들 기업은 새 정부에서 원전 건설을 하겠다고 해도 투자를 꺼린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전에 건설 중이었던 6기를 신규 원전으로 포장해 놓았을 뿐이다. 지난달 발표된 제11차 기본계획도 3기 정도의 신규 원전만 반영한 상황이다. 정부의 원전 건설 의지가 확고한 것인지 의문이다.


낙수 효과 한계, 장기 일감 필요


업체 입장에서 시설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원전 수출이 이루어지고 추가 수출이 기대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낙수 효과는 더딜 것이다. 두코바니 원전은 2025년 계약 후 2029년에야 착공이 될 것이다. 따라서 허가 전 사전 공사와 일부 선주문이 필요한 장기제작소요품목(Long lead items) 외에는 낙수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냉정하게 보면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진 원전 생태계 복원은 10%도 안 됐다. 지금 원전 몇 기를 수출한다고 공장·설비를 다시 짓지 않는다. 장기적 물량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원전 생태계는 복원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원전 정책이 있어야 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