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이 영어소설…억대 인세 미리 받은 이미리내

홍지유 2024. 7. 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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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리내는 35살에 첫 영어 단편소설을 냈다. 그는 “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걸 배웠다. 아주 천천히 발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국어판 서문에 썼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소설가 이미리내(41)의 장편 데뷔작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위즈덤하우스)은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먼저 세상에 나왔다. 서울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토종’ 한국인 저자는 미국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교실에서 “가장 말이 없던 학생”이었던 그에게 교수는 “글 써서 밥벌이 하긴 어렵겠다”고 충고했지만, 10여 년 후 그는 장편 데뷔작으로 미국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하퍼콜린스와 억대 선인세 계약을 맺은 ‘슈퍼 신인’이 됐다.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출간된 책은 한국뿐 아니라 홍콩·이탈리아·스페인·덴마크 등 10여 개국에서도 번역본이 나왔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은 한국의 한 요양원에서 일하는 화자 ‘나’가 치매 환자 구역의 괴팍한 노인 ‘묵할머니’의 인생을 취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평양 인근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 스마랑의 위안소로 끌려간 소녀는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곳에서 정착하지 못한 채 남쪽으로 향한다.

“일본인으로 태어나 북한 사람으로 살다 남한 사람으로 죽어가는” 묵할머니의 인생은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다. 홍콩에 거주 중인 저자를 지난 24일 줌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어떻게 영어로 소설 쓸 생각을 했나.
A : “대학 수업 시간에 영어로 소설을 썼다. 좋아해서 하긴 했는데, 점수는 형편 없었다. 졸업 후 한국어로 소설을 써봤지만 잘 안 됐다. 영어로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한 건 6년 전이다. 남편 직장 문제로 홍콩으로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 문예창작 대학원을 다녔다. 영어가 공용어라 자연스럽게 다시 영어 소설을 쓰게 됐다.”

Q : 어떻게 데뷔하게 됐나.
A : “소설책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기저기 물었다. 일단 단편 문학을 써서 미국 문예지에 보내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첫 단편 ‘뷰티풀’을 썼고 그게 2018년 여름 문예지에 실렸다. 두 번째 단편 ‘북한 접경지대의 처녀 귀신’도 비슷한 시기 문예지에 발탁됐다.”

Q : ‘북한 접경지대의 처녀 귀신’은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의 첫 챕터이기도 하다.
A : “처음엔 단편 소설로만 쓸 생각이었는데 아이디어가 이것저것 떠올랐다. 그렇게 3년 동안 소설을 썼고 2021년에 마무리했다.”

Q : 하퍼와 계약할 때 기분이 어땠나.
A : “시차 때문에 한밤 중에 연락을 받았다. 믿겨지지가 않았고 밤을 꼴딱 샜다. 처음에 에이전시에서 ‘경매에 작품을 내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미국 출판 시장에서 에이전트가 경매에 작품을 내겠다는 건, 적어도 두 곳 이상의 출판사가 이 작품을 원한다는 확신이 있다는 거다. 경매가 열리자 하퍼에서 입찰을 했고 가장 조건이 좋았다.”

Q : 외국어는 어릴 때 배워야 한다는 것이 정설인데, 희귀한 케이스다.
A : “한국에서도 외고나 국제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 유학 준비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 대학에서 영문학 성적은 말아먹었지만 소설은 계속 읽었다. 세상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보면 의외로 되는 것이 꽤 있다.”

Q : 소설의 영감은 어디에서 받았나.
A : “돌아가신 이모할머니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모할머니는 탈북자 중 한 명이었다. 접경 지대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유년 시절 기억에 상상력을 더했다. 오랜 시간 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했는데 그 때 만난 탈북자들에게도 북한 이야기를 들었다.”

Q : 주인공이 위안부로 끌려가 겪는 일이 무척 참혹하다.
A : “그 부분을 쓸 때 특히 힘이 들었다. 한 챕터를 네 달에 걸쳐 썼다. 임신 중이었는데 마무리를 짓고 나니 조기 수축이 올 정도였다. 생존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와 문헌 기록도 자주 봤다.”

Q :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다면.
A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펑펑 울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수백 명을 인터뷰해서 쓴 책이다. 논픽션이지만 문학적인 작품이다.”

Q : 차기작은.
A : “한국의 개농장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한국 TV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EBS)를 보고 소설을 쓰게 됐다. 개 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강아지 훈련사를 직업으로 택한 딸이 주인공이다. 소재는 개 농장이지만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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