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언제 받나”…전국 덮친 ‘큐텐 스캔들’
티몬과 위메프 정산금 지연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 중이다. 모기업 큐텐그룹 유동성 위기를 넘어, 국내 수많은 소비자와 판매자(셀러) 피해가 예상되는 ‘대형 스캔들’로 번지는 모양새다. 돈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셀러는 너도나도 티몬·위메프를 이탈하는 중이다. 피해 소비자는 본사를 직접 찾아 환불을 요구하는 ‘환불런’을 이어가고 있다. 티몬·위메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국내 다수의 유통·금융 기업 우려도 커졌다.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에 티몬·위메프 ‘부도설’까지 나돈다. 구영배 큐텐 대표의 무리한 커머스 기업 인수가 화를 부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판매자·소비자·금융사 모두 ‘탈큐텐’
시작은 위메프였다. 지난 7월 8일 위메프에 입점한 셀러 500여명은 정산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위메프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위메프는 7월 17일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산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일부 정산이 지연됐다’는 설명.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 전산 오류에 따른 헤프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불과 5일 후인 22일, 큐텐그룹 또 다른 계열사인 티몬마저 판매자를 대상으로 무기한 정산 지연을 선언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당장 정산금을 지급하기도 힘들 정도로 현금 유동성이 말라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때부터 사태는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해 상품을 판매하던 셀러는 앞으로도 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너도나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여행사는 소비자가 수개월 전 예약해놓은 항공권과 호텔, 여행 상품을 취소했다. 롯데쇼핑·현대백화점·GS리테일·신세계 등 소비재를 취급하는 수많은 입점 기업 역시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한 교환권과 상품권도 문제가 됐다. 네이버페이, SSG페이, 요기요 등 제휴처는 구입자가 미리 사놓은 상품권 사용을 막았다. 티몬 선불 충전금 ‘티몬캐시’의 페이코 포인트 전환도 중단됐다.
카드사와 계약을 맺고 결제·정산을 대행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도 티몬·위메프를 손절했다. 현재는 티몬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페이 등 제휴를 맺은 간편페이도 모두 떠났다. 티몬에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수단은 자체 포인트인 티몬캐시뿐이다.
정산 못 받은 판매자, 줄도산 우려
결제 취소 막힌 소비자는 본사 ‘환불런’
무엇보다 셀러 피해가 심각하다. 현재 지급 지연된 정산금은 수천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문제는 지연 정산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셀러가 정산받지 못한 대금은 5월 판매분이다. 6월과 7월 판매대금 정산도 불확실하다. 소비자와 입점
업체 모두 이탈하며 거래액이 급감한 상황에서, 말라붙은 유동성을 정상화시킬 길은 더욱 요원해졌다. 돈이 돌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소 셀러는 줄도산 우려도 나온다. 상품 매입 자금이 없어 영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한 이도 늘어나고 있다. 오픈마켓에서 사업을 하는 한 소상공인은 “중소 판매자는 한두 달만 대금을 못 받아도 바로 자금난이 발생한다. 자금경색으로 사업을 접거나 도산하는 업체도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피해도 막심하다. 해외여행처럼 상대적으로 액수가 큰 이들일수록 더 그렇다. 일방적으로 여행 계획이 취소된 것도 모자라 환불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PG사가 카드 결제 취소를 막으면서, 현재는 환불을 받으려면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현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미리 사놓은 선불 충전금과 상품권도 쓸 수 없게 됐다.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다.
소비자 불만은 폭증했다. 연일 수백 명에 달하는 피해 소비자가 티몬과 위메프 본사를 직접 찾아 환불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티몬과 위메프 전 직원은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큐텐 유동성 위기, 이미 예견됐다
상품권 10% 할인율로 ‘급전’ 당기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업계에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위메프와 티몬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큐텐이 양 사를 인수했을 때부터도 그랬다. 현재 두 기업의 합산 자본금은 -9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메프가 향후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은 2021년 1257억원에서 지난해 585억원까지 급감했다. 반면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유동부채는 3094억원이다.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당장 다 팔아도 빚의 5분의 1도 못 갚는 실정이다.
티몬은 더 심각하다. 제출 마감 기한인 4월 말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도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금융감독원에 내지 않고 있다. ‘재무 상태 공개가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위기가 전방위로 확산되기 직전에도 ‘징조’는 있었다. 티몬은 7월 초 티몬캐시를 10% 할인 판매했다. 통상 할인율은 3% 안팎이 일반적이다. 싸게 미리 상품권을 사놓는 이른바 ‘상테크’족이 몰려든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당시 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티몬 현금 유동성 위기가 극에 달한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티몬이 ‘급전’을 당기려는 의도로 말도 안 되는 할인율을 앞세웠다는 지적이었다.
큐텐그룹이 정산 지연 셀러에게 내놓은 보상안도 오히려 의구심을 더 키웠다. 한 재계 관계자는 “큐텐이 보상안으로 포인트 제공과 주식 매입 기회를 줬는데 이를 두고도 뒷말이 많았다. 포인트는 결국 큐텐그룹 거래액과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고 주식 매입은 자본금을 달라고 손 벌린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영배, 무리한 인수가 화 불러
기업 인수에 정산대금 당겨 썼나
업계에서는 큐텐이 무리하게 국내외 커머스 기업을 인수한 게 화를 불렀다고 분석한다. 큐텐은 2022년 티몬을 시작으로 2023년 위메프와 인터파크커머스, 올해에는 AK몰과 글로벌 플랫폼 위시를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셀러에게 정산할 돈을 인수대금으로 끌어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문제는 대부분 재무 상황이 열악한 기업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세간에는 큐텐이 풀필먼트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잇달아 커머스 기업을 인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본잠식에 빠진 커머스 기업은 헐값에 사들일 수 있다. 일단 거래액을 늘리고 덩치를 키워놓으면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기업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며 “상장에 성공만 하면 유동성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리수를 둔 모습”이라고 말했다.
구영배 큐텐 대표 책임론도 부상 중이다. 구 대표는 G마켓을 창업한 인물로 2009년 이베이에 G마켓 매각 후 이듬해 싱가포르로 넘어가 티몬·위메프 모회사 큐텐을 창업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귀국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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