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로 빚 갚고 눈총 받는 호텔신라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7. 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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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언제쯤 끝날까

면세 사업 부진에 허덕이는 호텔신라를 향한 우려의 시선이 확산하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주가 상승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례적인 표현까지 등장했다.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자사주를 담보로 발행한 교환사채를 두고는 ‘주주환원은커녕 빚 갚는 데 자사주를 쓴 꼴’이라는 뒷말이 따랐다. 호텔신라는 당분간 신사업 등 신성장동력 투자보단 호텔과 면세점 등 본업 경쟁력 강화를 기반으로 재무 구조 개선과 수익성 강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면세 사업 부진에 허덕이는 호텔신라를 향한 우려의 시선이 확산하고 있다. 호텔신라는 본업 경쟁력 강화를 기반으로 재무 구조 개선과 수익성 강화에 주력한다. (신라면세점 제공)
생존 위기 내몰린 면세업계

손익 변동성 확대 우려

호텔신라 실적 부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주가다. 최근 호텔신라 시가총액은 2조원대를 내줬다. 주당 주가는 4만원 후반대로 주저앉았다.

무엇보다 실적 전망이 어둡다. 대부분 증권사가 목표주가를 줄줄이 내렸다. 호텔신라는 면세 부문 실적이 고정비 지출이 큰 호텔 사업 손익 변동성을 완충하는 구조였다. 호텔신라 실적은 크게 TR 부문(면세점)과 호텔&레저 부문으로 나뉘는데, TR 부문 비중이 전체 매출 8할을 차지한다. 문제는 면세 사업 실적이 무너지면서 이런 손익 구조가 작동하기 힘든 환경이 됐다는 데 있다.

2021년까지만 해도 TR 부문 영업이익은 1245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해 호텔&레저 부문은 영업손실 131억원을 냈다. 2022년 TR 부문과 호텔&레저 부문은 각각 21억원, 69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때부터 호텔&레저 부문 수익 규모가 TR 부문을 넘어섰다. 2023년에는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걸었다. 면세점 매출은 대폭 줄었고 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할 만큼 나빠졌다. 호텔&레저 부문도 고정비 부담이 컸던 터다. 그 결과, 지난 1분기 호텔신라 영업이익은 1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줄었다. 면세 사업을 영위하는 TR 부문 영업이익이 45억원으로 전년 동기(232억원)보다 81% 급감한 결과다.

유통업계와 시장에서는 단기간 면세 사업 정상화는 난제라는 인식이 우세하다. ‘황금알 낳는 거위’에 비유됐던 면세점은 생존을 걱정할 처지다. 엔데믹으로 관광이 정상화됐지만, 중국인은 시내 면세점을 찾지 않는다. 면세점 상당수는 아예 문을 닫거나 매장을 대폭 축소하고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면세업계 부진은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의 여행·소비 행태 변화 때문이다. 지난 1분기 외국인 방문객 수는 약 340만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1분기(384만명)의 88%까지 회복했다. 그럼에도 면세점 매출은 2019년 25조원에서 지난해 13조원으로 반 토막 났다. 외국인 관광객이 면세점에서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의미다.

중국인 관광객이 대표적이다. 과거 단체 관광 때는 주요 면세점이 필수 일정으로 포함됐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면세점 대신 홍대, 성수 등을 자유롭게 다니는 여행을 즐긴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것도 달라진 소비 행태다. CJ올리브영과 다이소 등은 명동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사정이 이렇자 시장 일각에서는 올 연말부터 호텔신라가 주요 증권사 분석 종목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호텔신라는 업황 부진으로 거래가 극도로 부진한 데다 운용업계 포트폴리오에서도 찾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호텔신라가 최근 발행한 교환사채를 두고도 뒷말이 따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지난 7월 3일 자사주를 담보로 1328억원 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교환사채는 회사가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자사주 등 발행회사 보유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채권이다. 호텔신라는 무이자로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만기일은 2029년 7월 5일이다. 교환 대상은 호텔신라 보통주 213만5000주다. 호텔신라 측은 “금융비용 절감으로 재무 구조 개선에 방점을 둔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주 가치 제고에 쓰여야 할 자사주가 회사 채무 상환에 쓰이게 된 상황을 성토하는 주주가 적지 않다. 이번 교환사채 발행으로 상당 규모 자사주가 은행 빚을 갚는 데 쓰이게 됐기 때문이다. 호텔신라는 지난 1991년 상장 이후 주주환원을 위해 단 한 번도 자사주를 소각한 적 없다.

에셋 헤비 → 에셋 라이트

위탁경영 확대로 활로 모색

단기간에 돌파구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호텔신라는 고정비 지출이 큰 호텔&레저 부문 사업 기조를 ‘에셋 헤비’에서 ‘에셋 라이트(자산 경량화)’로 전환에 속도를 낸다. 고정비 비중이 큰 산업은 매출액이 일정 수준을 밑돌면 단위원가 부담이 급증하는 ‘레버리지의 역습’에 노출된다.

지금까지 호텔신라는 호텔&레저 부문에서 ▲직접투자 ▲임차 ▲위탁경영 등 3가지 형태로 사업을 벌여왔다. 호텔신라는 1990년 문을 연 제주호텔까지는 대부분 직접투자였다. 직접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다. 부동산 매입부터 개발까지 대규모 투자금이 소요되고 리스크가 크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목된다.

호텔신라는 신라스테이 브랜드를 독립법인으로 분사한 뒤 임차 운영을 늘렸다. 임차 운영은 부지·호텔 개발을 외부 기관이 맡고 운영사는 임대료를 내고 해당 공간을 빌려 호텔로 쓰는 식이다. 호텔신라 입장에선 토지 매입과 건설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리스 부채’ 도입으로 임차 운영도 입지가 좁아졌다. 이전에는 임대료 등 운용리스를 비용으로 인식했지만, 회계 기준 조정으로 운용리스는 리스 부채로 분류된다. 이 탓에 호텔신라는 총 차입금과 부채비율 관리가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호텔신라는 자산 경량화 기반 위탁경영 방식을 확대해 수익성 개선에 주력한다. 위탁경영은 일종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글로벌 호텔 체인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건물을 소유한 기업이 호텔 경영 노하우가 있는 업체(호텔신라)에 경영을 맡기는 형태다. 대규모 고정비 투자에 따른 사업 리스크를 줄여 자산 경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위탁경영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이정호 호텔&레저부문장(부사장)이다. 이 부사장은 호텔신라 임원진 가운데 몇 없는 호텔 전문가로 평가된다. 그는 5성급 라인 더 신라를 비롯 신라스테이·신라모노그램 등 3대 브랜드를 삼각 편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가운데 위탁경영 확장의 선두에 선 브랜드는 신라스테이다. 임차 운영으로 직영 사업을 벌이던 신라스테이는 2021년 서부산점을 시작으로 위탁경영을 확대 중이다. 최근 제주도에 레저형 호텔을 선보인 데 이어 올 하반기 지방에 추가 출점이 잡혀 있다. 위탁경영 확대로 신라스테이 수익성은 개선세를 탔다. 2021년 55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23년 281억원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6%에서 19%까지 올라왔다.

다만, 위탁경영 해외 확장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분위기다. 기대를 모았던 미국 지점은 올해 겨우 착공에 들어갔다. 호텔신라는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산호세에 신라스테이 위탁경영 계약을 땄다. 200개 객실 규모 부티크 호텔로 당초 2021년 문을 열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장기화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면세 사업에서는 인천공항점 수익성 확보에 집중한다. 신라면세점은 지난해 4월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DF1(향수·화장품·주류·담배)과 DF3(패션·액세서리) 구역 영업권을 땄다. 이외 임대료·인건비 등 고정비를 줄이려 시내면세점 영업 공간을 축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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