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끊어달라"... 두 엄마, 국회의 답을 기다린다
[복건우, 남소연 기자]
▲ 29일 오후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오른쪽)와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가 공관 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취재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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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고의니까."
햇수로 4년이었다. '생명안전기본법' 일곱 글자가 국회에서 거듭 폐기되는 악순환을 지켜본 세월이 그랬다. 지난 4년은 산업재해 유족에게 말 그대로 "흐지부지"였다. 경상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법 제정을 끈질기게 요구했던 '용균이 엄마' 김미숙과 '덕준이 엄마' 박미숙의 말이 그랬다. 두 사람은 29일 저녁 우원식 국회의장과 '산업재해 피해 가족 초청 만남'을 1시간가량 앞두고 있었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한번, 폐기된 일곱 글자를 되살리려면 새롭게 시작된 국회의 시간 속에 '유족의 목소리'를 집어넣어야 했다.
김미숙과 박미숙은 4년 전 '산업재해'라는 공통 분모로 처음 만났다. 김미숙은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 아들(고 김용균)을, 박미숙은 2020년 쿠팡 대구물류센터에서 심야노동을 하던 아들(고 장덕준)을 산재로 떠나보냈다. 평범했던 일상과 결별하고 '유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 지 각각 6년과 4년. 두 사람은 지금도 일터 곳곳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비극을 막으려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생명안전포럼 발대식에 참석해 우원식 국회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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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남에는 두 사람을 비롯해 고 이한빛 피디 부모님 이용관·김혜영씨,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희생자 고 김형주씨 유족, 경동건설 산재 희생자 고 정순규씨 유족 등이 함께했다.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국회의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두' 미숙이 국회의장 만난 이유
생명안전기본법은 지난 2020년 우원식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국회의장)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됐으나 제대로 된 논의 없이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23년엔 국회 국민동의청원 5만 명을 달성해 행안위에 회부됐으나 마찬가지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 법안은 '안전권'을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이를 침해당한 피해자의 권리를 시혜나 배려가 아닌 사회 안전망 개념으로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독립조사기구 설치, 안전영향평가 실시 등도 포함한다.
▲ 29일 오후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가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의 사건사망일, 센터, 직군, 나이, 성별, 계약 형태를 정리한 표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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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법안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산업재해 한 건 한 건의 죽음이 '일터에서의 죽음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로 이어지면서 생명안전기본법 필요성에도 목소리가 모아졌다. 김미숙씨는 "유족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나올 때마다 일일이 싸움을 하는 건 너무 어려우니까 인간의 기초적인 인권과 가치를 보호하고 우리 사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법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올해는 꼭 통과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아리셀 화재 참사도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대 규모의 산업재해 참사였다. 김미숙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근로계약서를 안 쓰는 등 보이지 않는 편법과 악법 속에서 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참사의 책임이 있는 원청 사업주와 본부장을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안전기본법을 비롯해 산업안정보건청(산안청) 설치 등 노동자의 목숨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들을 우리와 손잡고 논의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오른쪽)와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생명안전포럼 발대식에 참석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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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21대 국회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흐지부지 시간만 지났고 지금도 기업 정보라든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과태료 처분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등 유족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국민을 죽게 만드는 현실을 국회의원들이 이젠 정말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라고 호소했다.
"고통 끊어달라" 생명안전법 하반기 재발의
국회의장을 만난 다음 날인 30일 김미숙씨는 "지금 기소와 처벌이 너무 약하니까 노동 전문 법정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전날 얘기하더라"라고 전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22대 국회 생명안전포럼 발대식'을 열었다. 올 하반기 생명안전기본법 재발의 추진을 약속하는 자리였다. 세월호·이태원·스텔라데이지호·아리셀 등 재난·산업재해 참사 피해자 단체 20곳이 참석했다.
우 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생명안전포럼이 2020년 7월 처음 발족하고 중대재해처벌법과 생명안전기본법을 중심에 두고 의정활동을 했다"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은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생명안전기본법은 출발시키지 못했다. 그 사이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22대 국회에서 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 29일 오후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오른쪽)와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가 공관 입구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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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과 박미숙은 이날 22대 국회의 답변을 기다리며 의원회관 가운데 나란히 앉았다. "22대 국회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국회여야 합니다."
두 사람은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날도 생명안전포럼 발대식에 참여해 산업재해 유족의 이야기를 직접 전했다. 생업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비극을 막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두' 미숙이 또다시 긴 싸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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