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양궁을 응원하며, 저도 활을 쏘았습니다

김경준 2024. 7. 3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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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배웁니다 17] 첫 전국대회 참가... 밀양 궁도대회 후기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경준 기자]

2024 파리 올림픽이 시작됐다. 종목을 불문하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모두 시작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은 대한민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10연패' 신화 달성이다. 역시 '활의 민족'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지금 국민들은 양궁 경기에 모든 관심과 환호가 집중돼 있다(관련 기사: 변화무쌍한 바람 이겨냈다... 여자 양궁, 올림픽 단체전 10연패 https://omn.kr/29ll6 ).

그런데 국궁(전통활쏘기)도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아는가? 비록 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지역·전국 단위로 크고 작은 대회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나 역시 국궁을 시작한 뒤로 서울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구청장기·시장기 대회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는 편이다. 다만 전국 대회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지방까지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활 쏘러 경남 밀양까지 간 이유

그러다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동안 밀양 영남정에서 '제5회 밀양시장기 전국 남·여 궁도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접수했다. 단체전(100명)·개인전(840명)·실업부(55명) 등 무려 1000명이 넘는 궁사들이 모여 활 솜씨를 겨루는 자리였다. 대회는 3순(15발) 경기로 진행된다(개인전의 경우 420명씩 이틀에 나눠 진행).

내가 속한 공항정에서는 나 혼자만 참석하게 됐다. 서울에서 밀양까지 거리가 멀다 보니, 다들 부담을 느낀 탓이다. 결국 나홀로 활과 화살통을 멘 채, 밀양행 KTX 열차에 몸을 실었다.

무더운 날씨에 굳이 그 먼 밀양까지 가서 대회에 참가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밀양은 약산 김원봉·석정 윤세주 등을 비롯한 항일비밀결사 '의열단'의 주요 멤버들을 배출한 '의열의 도시'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를 통해 밀양 출신 의열단 지사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하여 대회날보다 하루 앞서 밀양에 도착, 의열단원들의 생가 터와 의거 현장 등을 답사한 뒤, 독립운동가 박차정·황상규 지사의 묘역을 찾아 대회 출전을 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전국 궁도대회 출전을 앞두고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차정 지사의 묘소를 찾아 인사드리는 모습.
ⓒ 김경준
마침내 대회 당일이 밝았다. 대회장에 가면 '현장 접수'를 통해 자신의 작대(순서)를 정하게 된다.

대회는 오전 7시부터 시작이었다. 그런데 밀양에 내려오기 전, 선배 접장님들로부터 "오전 5시만 돼도 접수하려는 줄로 장사진을 이룬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다. 빨리 접수할수록 빨리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늦게 가면 기본 3~4시간은 기다려야 활을 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침잠 많은 나는 도저히 새벽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빨리 간다고 간 게 7시였다. 숙소에서 출발하니 딱 7시에 도착했다.

첫 전국 대회 출전, 이름 불리자 다리가 후들후들
 
 밀양 영남정
ⓒ 김경준
 
내가 배정 받은 작대는 27대. 무려 189번째 접수자였다. 처음엔 금세 내 차례가 올 줄 알았다. 그래서 활(각궁)도 미리 세팅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8시... 9시... 10시...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다른 선수들이 활 쏘는 모습을 구경도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휴게실 구석에 누워 쪽잠을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났기에 피곤했지만, 사람 많은 데서 누워 자기 민망해 도전하지 못했다. 언제 불려나갈지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에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27대, 공항정 김경준씨 나오세요!"

11시가 돼서야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무려 4시간을 기다려 쏘는 활이었다. 그런데 사대에 서니 갑자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서울 지역 대회는 여러 번 출전했지만, 전국의 궁사들과 나란히 서서 활을 겨룬다고 생각하니 지역 대회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긴장감이 있었다. 발가락을 꽉 움켜쥐며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켜보려 했으나, 한 순(5발)을 다 낼 때까지 떨림은 계속 됐다.
 
 활과 화살, 그리고 궁대(화살띠). 의열단의 도시 밀양에서 열리는 대회이기에 특별히 '조선의용대' 대원들이 착용했던 뱃지를 달고 출전했다.
ⓒ 김경준
 
"관중이오!"

첫 발부터 화살이 시원하게 과녁의 정중앙을 때렸다. 그러나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던가. 그다음부터는 엉망이었다. 정면을 향해 곧게 날아가던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기 직전에 자꾸만 오른쪽으로 빠졌다. 풍기(활터에서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세워둔 깃발)를 보니, 오른쪽을 향해 부는 바람이 만만찮았다. 

이후 과녁의 왼쪽 방향으로 일부러 '오조준'을 해가며 나름대로 바람을 계산해보려 했으나, 화살은 어김없이 과녁보다 오른쪽에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거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날 나는 계산에도 실패, 극복에도 실패했다. 

최종 성적은, 15시 3중(15번 중 3번 과녁에 꽂힘). 지역 대회에서도 이렇게까지 처참한 성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전국대회 신고식치고는 참 쓰라린 결과였다. 

애꿎은 바람을 원망해보기도 했지만, 이내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기로 했다.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3순을 잇달아 관중시켜 15시 15중을 달성한 고수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도 바람은 공평하게 불었을 것이다. 결국은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첫 전국 대회에 출전하여 활을 쏘는 기자의 모습 (2024.7.29 / 밀양 영남정)
ⓒ 김경준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악조건을 극복하고 쏘는 족족 맞히는 이들을 보며 '저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평소에 나는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던가' 반성하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가장 큰 가르침은 '인내'였다. 이 무더운 날씨에, 수백 명의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활터에서, 언제 불려나갈지 모르는 긴장 모드로 기다리는 것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다.

당연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활을 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궁사들의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오랜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체력과 마음의 여유야말로 고수가 되는 비결 아닐까. 비록 입상은 못했지만 큰 공부를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밀양 의열단기 전국활쏘기대회'는 어떨까
 
 활을 쏘는 선수들의 모습
ⓒ 김경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이번 대회의 타이틀은 '밀양시장기'였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의 경우 지역이 배출한 위인이나 역사적 사건을 타이틀로 거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정읍은 '동학농민혁명 기념', 통영은 '한산대첩기', 남원은 '황산대첩 기념 이성계장군기' 등이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밀양 역시 '의열단기 활쏘기대회' 등으로 타이틀을 바꿔서 추진해보면 어떨까 싶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밀양은 무수히 많은 의열단원들을 배출한 의열의 도시다. 호국무예인 전통활쏘기를 겨루는 대회에 '의열단'이라는 타이틀, 얼마나 적절하고 폼나는가(궁도라는 말 자체도 일제강점기 이후 정착된 일본식 용어이므로 기왕이면 활쏘기대회나 궁술대회로 대체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현재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활쏘기 대회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내가 알기로 춘천 호반정에서 열리는 '의암류인석대한13도의군도총재배'가 유일하다. 밀양에서 의열단기 활쏘기대회가 열린다면, 좋은 선례로 기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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