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굴욕당한 지도자의 변신... 윤 대통령과 비교된다
한국은 물론 국제 정치를 보면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정치를 바라보는 작은 'tip'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말>
[박민중 기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함께 지난 10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 만찬 리셉션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김건희 여사, 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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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취임하자마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리투아니아 빌뉴스, 그리고 올해는 미국 워싱턴까지. 마치 대한민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국처럼 보인다.
대통령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틀간 진행된 나토 정상회의에서 무려 10여 개국과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다. 추가적으로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IP4) 정상회의와 퍼블릭 포럼 기조연설의 일정까지 소화했다. 1박 2일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고려할 때, 과연 10여 개 국가의 정상과 가진 정상회담이 얼마나 진지한 회담이었을지 의문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들은 외교 성과로 2가지를 보도했다. 첫째,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 공동성명은 북핵 대응으로 미국 핵 자산을 전시·평시를 막론하고 한반도 임무에 배정할 것을 문서로 담았다고 한다. 이에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미동맹은 명실상부한 '핵 기반 동맹'으로 확고하게 격상됐다"고 강조했는데, 전시는 그렇다 쳐도 평시에 미국 핵 자산을 한반도 임무에 배정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주축으로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체코 원전 수주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데일리>는 '영업사원 1호' 윤석열의 뚝심…K원전 수출길 열렸다'라는 기사를 통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윤 대통령이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에서 적극적으로 세일즈 외교를 했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총 20분 간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막판 5분간 한국 원전 기술의 우수성과 가격 경쟁력을 적극 피력했다고 한다. 해당 기사는 정권 초기부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석열 대통령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한국 정부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최종 계약은 내년 3월에 이루어진다. 즉, 앞으로 약 8개월 간 체코 정부와 협상을 성공해야 진짜 원전 수주에 성공하는 것이다.
독일 <도이치 벨레> 기사에 따르면, 한국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가격 경쟁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원전 건설 단가를 타국과 비교해보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인다. 한국이 kW(킬로와트)당 3571달러인데 비해 프랑스는 7931달러로, 한국은 이번 입찰에서 경쟁국이었던 프랑스에 비해 약 절반 수준이었다. 과연 이 계약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경제성을 담보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DC 메리어트 마르퀴스 호텔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퍼블릭포럼 인도·태평양 세션에서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케네스 와인스타인 석좌와 대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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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과 국내 언론들이 이번 나토 정상회담을 지나치게 한국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별개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전과 다소 다른 기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기류는 나토의 관심이 아시아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는 지난 2022년부터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동시에 북한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다뤘다.
지난 10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단순히 유럽의 지역적 안보 위기가 아닌 세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그 어느 때보다 유럽과 나토의 전통적인 안보 파트너들(friends and partners)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그 핵심 파트너들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2022년 이후 3년 연속 나토 정상회담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로 구성된 인도·태평양 국가들(IP4)이 참여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그 전쟁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한 것이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중국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10일 정상회담에서 모든 회원국들이 동의한 내용이라며 아래와 같이 밝혔다.
"중국은 러시아의 전쟁을 결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존재(decisive enabler)다. 그리고 중국의 지원은 러시아가 유럽-대서양 안보에 가하는 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토 정상회담은 물론 윤석열 정부가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21세기 들어 국제정치의 근간이 되고 있는 '미·중 경쟁'의 틀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0-2000년대 초반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등에 업고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4년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을 발표하는데, 이는 해상 무역의 의존도를 줄이고 철도를 활용해 유럽과의 중동·유럽과의 무역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약 20여 년간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급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실질적으로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한국, 일본, 호주, 인도를 중심으로 진을 쳤다. 이것이 바로 4자 안보협의체로 불리는 '쿼드'(Quad)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9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 후 러시아 최고 영예인 성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 사도 훈장을 수여하고 있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 |
ⓒ AFP/연합뉴스 |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인도는 핵심적인 국가다. 실제 2022년 백악관이 발표한 외교안보 전략보고서(Indo-Pacific Strategy)에 따르면, 미국은 인도를 파트너(a like-minded parter)를 넘어 남아시아 지역의 리더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인도를 이 지역 안보협의체인 쿼드 성공의 열쇠(driving force)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인도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인도와 중국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는 1962년 이후 지속적으로 국경 분쟁을 안고 있는데, 이는 두 국가가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약 32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다. 특히 지난 2020년에는 히말라야 라다크의 갈완 계곡 부근에서 분쟁이 발생했고, 당시 BBC 보도에 따르면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42명이 사망했다. 미국 입장에서 이 같은 양국관계는 중국을 견제하는데 유용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인도의 외교 행보를 보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인도의 대중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인도는 최근 지난 4년 전 중국과의 국경 분쟁 이후 유지하던 중국 기업의 대(對)인도 투자 규제 완화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로이터 통신>은 '2020년 이후 악화된 양국의 경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 23일에는 니르말라 시타라만 인도 재무부 장관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는데, 이는 모디 정부의 고위 내각 장관으로는 첫 사례다.
다음으로, 인도의 대러 행보다. 경제적 측면에 집중된 인도의 대중 행보에 비하면 인도의 대러 행보는 대담해 보인다. 나토 정상회담이 열리기 이틀 전인 지난 8일, 3연임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첫 해외 순방지로 모스크바를 선택했다. 인도 총리는 취임 후 전통적으로 주변국(네팔, 방글라데시 등)을 첫 번째로 방문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라는 점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고려한다면, 모디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격적인 만남은 만남 그 자체로 미국은 물론 나토 회원국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의 발표처럼 모디 총리의 이번 방러에선 '지역 및 세계 안보 문제'에 대한 내용도 주요 의제로 다뤄진 듯하다. 실제 모디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을 통해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번 방러의 핵심은 양국 사이 경제 교류의 확대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인도는 자국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의 석유와 원자력 에너지가 필요하고, 반대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 제재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인도를 활용해 경제적인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모디 총리의 방러 이후 러시아 원전기업인 로사톰(ROSATOM)이 인도에 원자력 발전소 6기를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모디 총리는 이번 방러에서 푸틴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의 원자력 기술 전시관을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2015년 이후 약 9년 만에 이뤄진 모디 총리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현재 650억 달러(약 90조 1800억 원)의 연간 무역 규모를 2030년까지 약 1000억 달러(약 138조 7400억 원)로 확대하기로 했다. 실제 이 계획의 성공여부와 별개로, 현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국가인 인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와 이 같은 외교행보를 보인다는 것은 미국과 나토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7년 9월 5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부대행사인 신흥시장·개발도상국 정상 대화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 AP/연합뉴스 |
그렇다면 인도는 왜 이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가? 그리고 모디 총리의 외교가 윤석열 정부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먼저, 모디 총리가 이 같은 외교적 행보를 보이는 것은 '민심'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6월 4일, 약 6주 동안 진행된 인도 하원의원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다. 다수 언론들은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인 인도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이 총 543개의 의석 가운데 과반을 넘어 최대 400석까지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결과는 과반 의석수(272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240석에 그쳤다. 이는 지난 2014년과 2019년 각각 282석과 303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매우 저조한 성적이다.
예상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 모디 총리의 인도인민당이 이러한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은 수치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 이면에 내재된 높은 실업률과 고물가, 심각한 빈부격차 등으로 대변되는 '민생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모디 총리는 집권 3기에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모디 행정부는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저렴하게 수입해 현재 인도가 겪고 있는 에너지 대란을 해결하는 동시에, 모디 행정부의 제조업 육성 정책을 안정적으로 이행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를 보면서 윤석열 정부에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년간 나토 정상회담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과연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첫 해외 순방지로 2022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담을 선택했다. 당시 나토에 참석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가치 외교'였고, 이후 윤석열 외교는 사실상 '탈중국 노선'을 천명했다.
이후 2년 동안 윤석열 정부가 '가치 외교'의 기치 아래 3년 연속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하면서 얻은 국가이익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몇백억씩 우크라이나 지원을 하면서 오히려 약 30년 동안 한국의 제1의 교역 대상국이며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이었던 중국과의 관계만 훼손된 것이 아닌가?
지난 6월 총선에서 사실상 패배한 모디 총리는 외교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역사적 패배를 기록하였음에도 외교를 통한 돌파구가 아닌 막다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지금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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