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모두 잃어도, 침수 재난지원금은 무조건 300만원?

옥천신문 이훈 2024. 7. 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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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재난지역 지정에도 고통 받는 수해민, '재난지원금 현실화' 필요

[옥천신문 이훈]

 주택 가구가 입은 피해에 견줘 턱없이 낮은 수준의 재난지원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택의 건축 재질이나 평수, 가재도구를 포함한 동산 규모에 따라 피해액과 복구비용이 천차만별인데도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정부의 보상 기준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 옥천신문
 
#1. 밤새 내린 폭우로 충북 옥천 군서면에 사는 70대 노인 A씨의 집 앞 하천 제방이 터져 주변 논밭이 잠겼다. 물은 이내 A씨의 거실에 있던 통유리를 깨고 들어와 허리까지 차올랐다. 떠다니는 유리 파편과 나뭇가지에 A씨의 머리와 다리가 찢어지고 긁힌 줄도 모르고 물을 퍼냈지만, 집 밖 논밭이 잠긴 마당에 하등 의미 없는 일이었다.

아침 7시 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져나갔지만, 10년 치 살림살이가 고작 몇 시간 퍼부은 비에 쓸려 내려갔다. 자동차는 하천 하류에서 발견됐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탈한 상황에서도 A씨는 정신을 부여잡고 비가 삼켜버린 살림 목록을 종이에 써내려갔다. 내가 재난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질줄 알았다. 하지만 군 담당자로부터 안내받은 재난지원금은 단 300만 원. 폭우가 들이닥쳤던 때만큼 허탈한 순간이었다.

#2. 충북 옥천 이원면 혼자 사는 70대 노인 B씨는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마룻바닥에 앉아 날을 샌다. 잠을 자던 와중에 물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던 7월 8일 새벽의 기억 때문이다. 금이 가고 부서지고, 제대로 된 배수시설도 갖추지 못한 B씨의 집은 비가 오면 금방이라도 다시 봉변을 당할 듯 위험해 보이지만, B씨는 집을 떠나지 못 한다. 그날 이후로는 다시 물이 샐까 불안한 마음에 외출조차 못 하고 있다.

마을 이장은 가족도, 친척도 없는 B씨에게 당분간 마을회관에서 지낼 것을 권유했지만,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영 불편하다. 그래서 B씨는 수해를 입은 당일에도 마르지도 않은 마룻바닥 위에서 밤을 보냈다. 수해가 할퀴고 간 마음을 치유하고, 임시로 머무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절실해 보였지만, 당장 B씨가 기댈 수 있는 지원도 재난지원금 300만 원이었다.

수해를 입은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일상으로의 회복을 돕는 것,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 의무다. A씨와 B씨가 안내받은 재난지원금의 지급 근거를 담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2조에 명징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는 선언적 구호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해를 입은 주민들은 공적 지원 수준이 미약하고, 일상의 회복은 요원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옥천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정됐다. 군은 국고를 추가 지원받아 조속한 피해 복구에 군정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지만, 특별재난지역 선정과 수해민 개개인의 일상 회복은 사실상 다른 이야기다.

특별재난지역에 대한 국고의 추가 지원은 공공시설물 복구에 한정되고. 수해민 지원은 공공요금 감면 등 간접 지원 형태에 그친다. 이에 군은 특별재난지역 예산 지원에 따른 피해 복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수재민들의 완전한 일상 회복을 위한 복지 체계를 갖추고 작동시키는 데도 행정력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 안 모든 물건 쓸려 내려가도 '침수' 재난지원금은 '300만 원'

'에어컨, 책장 5단, 소파 3개, TV, 아이패드, 냉동고, 승용차, 옷장 3개, 평상, 온수보일러, 심야보일러, 휴대폰 2대, 탁자, 의자 5대, 찬장, 신발장, 신발, 구두, 농약장, 채광막 10, 거름 130포, 비료 4포, 콩·서리태·참깨 반말, 된장 3단지, 고추장 1단지, 빈단지 6개, 아이스박스… 그리고 닭 12마리 중 9마리 죽음'

A씨가 건넨 종이에는 이번 수해로 잃어버린 살림 목록이 적혀 있었다. 거의 모든 살림이 유실됐고, 파손됐고, 고장이 났다. 자원봉사단체가 침수된 A씨의 집안을 모두 비우고 살림을 마당으로 내놓는 데만 이틀이 소요됐다.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동원돼야만 치울 수 있는 양이었다. A씨와 아내는 수장된 살림을 폐기하기 위해 덤프트럭에 싣는 포클레인을 그저 말없이 지켜만 봤다.

주택 침수 재난지원금은 300만 원, "도배·장판 교체 비용도 안 돼"
 
 삽화: 김윤 작가
ⓒ 옥천신문
 
A씨는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면서 꼬박꼬박 세금 낼 것 다 냈는데, 겨우 300만 원 주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 시골에서 침수 피해를 입은 분들은 거의 다 노인들이다. 어떻게 복구하고 살아가라는 것인가"라며 재난지원금 지원 기준과 규모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2023 자연재난조사 및 복구계획수립 편람에 따르면 A씨와 같이 사유시설 중 주택 복구에 대한 지원은 크게 ▲ 주택파손(전파/유실·반파) ▲ 주택침수 ▲ 주택소파 ▲ 세입자보조 등으로 나뉜다.

A씨 사례에 해당하는 주택침수는 '세대 당 300만 원'으로 동일하게 지급된다. 반면 전파와 반파는 평수와 피해규모에 따라 최소 3300만 원에서 최대 1억2000만 원까지 지원되나, 기둥이나 벽체, 지붕 등 주요 구조부가 50% 이상 파손돼 수리 또는 개축하지 않고서는 주택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로 한정한다. 집안 모든 가재도구가 소실되는 침수를 겪어도 일률적으로 300만 원만 지급되는 이유다. 아울러 거주 공간인 주택 외 창고나 마당, 우사 등은 피해 지원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옥천군에 따르면 지난 8~10일 폭우로 주택 침수 신고를 접수한 세대는 총 71세대이나, 행안부 조사 기준 '주택 침수'에 해당돼 재난지원금 신청 대상이 되는 세대는 58세대다. 그런데 이중 57세대가 주택침수, 단 1세대만 반파에 해당했다. 

이에 주택 가구가 입은 피해에 견줘 턱없이 낮은 수준의 지원금 규모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주택의 건축 재질이나 평수, 가재도구를 포함한 동산 규모에 따라 피해액과 복구비용이 천차만별임에도 보상금이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데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새로이건축 박병찬 대표는 "도배, 장판 교체하는 데만 200만 원 이상이 들고, 평수에 따라서는 300만 원이 훌쩍 넘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오래된 집일수록 목문을 쓰거나 석고벽인 경우가 많은데, 당장 피해가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체해야 하거나 다시 뜯어내고 수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라고 말했다.

지역 내 한 봉사단체 관계자 C씨도 "과거 태풍 피해로 물이 집에 들어왔는데 그때는 지원금이 200만 원이었다. 도배, 장판을 새로 해야 하는데 그때도 (지원금 부족해서) 재료만 사서 직접 했다. 100만 원이 늘어서 300만 원이 됐는데 이 수준으로는 지금 집을 못 고친다. 특히 고령층일수록 재료를 사서 직접 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에 충북도의회 건설환경소방위원회 위원인 박용규 도의원은 "주택 침수 현장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건지지도 못한 가구들도 있었다. 재난지원금 300만 원으론 부족하다.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됐다고 하지만 실제 지원 규모는 예상치보다 낮고, 실질적으로 수해민 개인에게 크게 도움이 되진 못 한다. 5분 자유발언 등을 통해 수해민에 대한 지원책 확대를 충북도에 요구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덕흠의원실 전상인 보좌관도 "주택 침수 재난지원금 300만 원 가지고는 도배, 장판하는 분들을 부르지도 못한다"라며 "문제로 인지하고 있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풀어 나가야 한다. 문제 해결 방법을 의원실 차원에서도 연구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군, 지정기탁금 활용해 주택 침수 71세대에 100만원씩 추가 지원

이런 가운데 옥천군은 지정기탁금을 활용해 추가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황규철 군수는 "재난지원금 300만 원은 26일부터 지급될 예정이다. 여기에 지정기탁으로 들어온 성금을 활용해 주택 침수 피해를 입은 71세대에 100만 원씩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지급 방법에 대해 조율 중에 있다. 또 행안부에서 실사를 나와 군서면 피해 가구에 LG전자 후원 물품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떤 가구에 지원할지에 대해서도 논의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이상기후로 자연 재난의 빈도와 강도 예측이 어려워 피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풍수해보험 가입을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풍수해보험은 태풍, 홍수, 호우, 해일, 강풍, 풍랑, 대설, 지진 등으로 발생한 피해에 따른 손해를 보상하기 위한 국가 정책보험으로, 민간보험사가 운영하지만 보험료 일부를 국가 및 지자체에서 보조한다.

주택, 비닐하우스(온실), 소상공인 사업장이 가입 대상이고, 가입자는 보험료의 30% 이하만 부담하면 된다. 일례로, 80㎡(약 24평) 규모 주택의 경우 피해액 90% 보장에 해당되는 1년 만기 상품의 자부담금은 1만5000원 수준이다. 나머지 3만5000원가량은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한다. 

특히 충북도와 옥천군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재해취약지역 내 가구에 보험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는데, 가입률은 저조한 상황이다. 옥천군에 따르면 풍수해보험료 전액 지원(자부담 0원) 대상에 해당하는 전체 가구 2200여 가구 중 보험 가입 가구는 800여 가구로, 가입률이 36%에 불과하다. 

군 안전건설과 자연재난팀 담당자는 "온실(비닐하우스)과 달리 주택은 침수를 겪을 거라고 생각을 잘 안 하신다. 보험이라는 말에 안 좋게 인식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라며 "풍수해보험 가입 독려 홍보를 범정부적 차원이 아니라 지자체에 맡겨두니 홍보가 약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주택 가구가 입은 피해에 견줘 턱없이 낮은 수준의 재난지원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택의 건축 재질이나 평수, 가재도구를 포함한 동산 규모에 따라 피해액과 복구비용이 천차만별인데도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정부의 보상 기준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 옥천신문
 
 주택 가구가 입은 피해에 견줘 턱없이 낮은 수준의 재난지원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택의 건축 재질이나 평수, 가재도구를 포함한 동산 규모에 따라 피해액과 복구비용이 천차만별인데도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정부의 보상 기준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 옥천신문
     
 주택 가구가 입은 피해에 견줘 턱없이 낮은 수준의 재난지원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택의 건축 재질이나 평수, 가재도구를 포함한 동산 규모에 따라 피해액과 복구비용이 천차만별인데도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정부의 보상 기준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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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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