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처음 간 웹툰 학원, '실력자'로 오해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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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제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일지도 모를 웹툰 작가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스스로 제 성장을 독려하면서 비슷한 입장의 동년배들에게 이런 사람도 있으니 같이 힘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김종수 기자]
▲ 일단 시작은 했다. 노력을 하다보면 어떤식으로든 결과물은 나올 것이라 믿는다. |
ⓒ 김종수 |
30살, 40살, 50살…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매번 새로운 나이대로 넘어갈 때 기분이 참 착잡하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구나'란 서글픔이 가장 큰 듯하다. 나도 그렇다.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름 젊다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가 됐고, 이제는 그런 착각도 의미 없는 나이가 됐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있다. 무척 과묵한 친구인데, 이상하게 나만 만나면 말이 많아진다. 둘이선 술 없이도 하루 종일 수다가 가능하다. 나이 50살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도 나름대로 복이지 않을까 싶다. 2002 월드컵 당시 그 친구와 함께 나눴던 호들갑스러웠던 대화가 지금도 생생하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을 가서 좋기는한데 우리도 곧 30살이다. 진짜 실감이 안난다. 이제 우리도 진짜 아저씨구나. 젊은 시절은 아웃?"
당시엔 둘이서 노래방도 곧잘 가곤 했는데 특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참 많이 불렀다. 당시에는 30살을 넘기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가 싶었는데, 지금은 무려 50살이다. 현재 시선으로 보면 30살은 정말 청포도처럼 파릇파릇한 나이인데 당시에는 왜 그리 생각했는지.
얼마전에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해 "우리 이제 50살이다"라고 운을 띄웠다. 그러자 친구는 "응? 누가 50살? 우리 50대 아냐. 40대지. 만으로 한 살 빼고 거기에 생일도 안 지났으니 한 살 더 빼서 48살이다. 40대와 50대는 느낌부터 다르다"고 대답했고 이내 함께 웃었다. 솔직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제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기로 했다.
늦은 나이에 그림을 배우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해 12월 '내년에 50인데 웹툰 작가 도전합니다 https://omn.kr/26x3c'란 기사가 나간 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우연히 기사를 봤는데 동갑내기여서 관심이 갔다, 그림을 배우면서 궁금한 사항이나 노하우 등을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젊은 시절부터 만화가 생활을 해서 경력이 상당한 듯 싶었다.
그단 '그 나이에 무슨 웹툰이냐', '정말 현실 감각 없다'는 등의 말도 많이 들었는데 응원을 해주는 현직 작가가 있다는 생각에 나름 마음 든든했다. 사실 궁금한 것도 내가 어느 정도 할줄 알아야 생긴다. 아예 백지 상태에서 무엇을 물어 볼 수 있겠는가. 뜬금없이 '수익은 얼마나 되나요?', '웹툰작가하면 먹고 살 수 있어요?' 등을 물어볼 만큼 철없는 나이도 아니다. 동갑내기 작가가 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건강'이었다.
"1975년생이 그림을 배우겠다는 것, 더욱이 그전에 전혀 안 해보신 분이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함에 가깝죠.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아주 많이 늦었거든요. 하물며 완전 초보에 그림에 큰 관심도 없으셨다고 하니까…, 사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건강이에요. 나이라도 젊다면 에너지 빨로 밀어붙이지만 그러기도 이젠 힘들잖아요. 50살이면 은퇴하는 작가분들도 많아요. 그만큼 힘든 작업인데 눈도 침침하고 관절도 약한 상태로는 쉽지 않죠. 젊은 사람들처럼 관리된 몸이 아니라면요."
그래서 나는 육체적으로 관리가 되었냐고? 전혀 아니다. 물론 타고난 체력은 어느 정도 있었다. 군대에서도 누구보다 산악구보, 오래달리기도 잘했고 실제로 30살 전후까지 마라톤대회 참가할 생각까지 있었다. 단순한 자신감이었겠지만. 그 뒤 몇 년 전까지 상가책자 만드는 일을 했는데 한달에 하루 이틀 정도는 밤새워 일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노안도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팔다리 근육도 많이 약해져 있다. 무엇보다 잠에 대한 집착이 시작됐다. 예전에는 잠을 조금 자건 많이 자건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요새는 6시간 정도는 자야 다음 날이 멀쩡하다. 예전처럼 4시간 전후로 자면 하루 종일 머리가 핑핑 돈다. 분명히 나이로 인해 약해진 것은 맞고 더불어 관리도 전혀 안되어있다.
▲ 꿈 혹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너무 나이에 목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신경쓰고 노력하면 발전은 있다. |
ⓒ 김종수 |
여중생에게 '파이팅!' 응원을 받았다
저번회에서도 밝혔다시피 나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가장이다. 나이에 비해 철이 없을 때도 많지만 적어도 가족을 뒤로하고 기약 없이 그림만 배운다고 뜬구름 위를 뛰어다닐 정도의 철부지까지는 아니다. 아무리 미래 가치가 높은 활동도 당장 생활비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때문에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경제활동은 하면서 틈틈이 웹툰 공부를 하고 있다.
사실 웹툰학원 야간반은 다닌지 일주일 만에 그만두려고 했다. 아는 것이 너무 없고 수업 진도도 따라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야간반 신청을 할 때만 해도 여느 학원처럼 수강생 모두가 똑같은 조건일 것이라 착각했다. 전혀 아니었다. 같이 배우는 수강생이 15명 정도되었는데 하나같이 경력자들이었다.
미대 출신, 애니메이션학과 출신, 문하생 출신, 어시스턴트 출신 등 이미 최소 3~4년 이상 공부를 했거나 관련 계통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유일하게 나와 동갑내기인 수강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분도 3년 이상 독학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어 늦은 나이에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고. 실제로 그림도 정말 잘 그렸다. 강사들 또한 수강생들이 기초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안다고 판단한 채 수업을 진행했다.
그렇다면 나는? 만화를 그리는 클립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의 존재도 학원에 나와서 처음 알았고 어떻게 켜야 되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난 몰라요'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 나 때문에 나머지 14명이 피해를 볼 수는 없으니까. 소극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계속 손을 들며 질문 공세를 퍼붓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질문 또한 대부분 수강생들이라면 다들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스스로에게 무력감이 들었고 학원에 나올 때마다 '괜한 짓 한 것 같은데 그냥 관둘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상당수 수강생들은 나를 그림 계통 경력자로 생각했다고 한다. 중년 아저씨가 아무것도 모른 채 덥석 웹툰 수업을 듣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관련 프로그램을 다루는 게 서툰 건 그냥 아저씨니까 그런 것이고 펜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은 실력자일 것으로 여긴 듯했다. 경력자 아닌데 왕초보인데.
내가 듣던 수업은 4층에서 진행되었는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되는 특성상 4층은 물론 3층 입시반 수강생들과도 종종 마주친다. 한번은 어떤 여학생이 두꺼운 책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며 환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아마 선생님인 줄 알았나보다.
어린 학생에게 인사를 받는 것은 학원에서 처음 있었던 일인지라 궁금한 마음에 물어봤더니 3층 입시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2학년 여중생이었다. 1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찍부터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부러웠다. 저 나이부터 저렇게 노력하면 얼마나 멋진 작가로 성장할까 싶었다. 문득 여학생을 응원하고싶어 한마디 건넸다.
"지금부터 이렇게 열심히하면 정말 성공할 듯 싶어요. 아저씨는 지금 50살인데 웹툰이 좋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이렇게 학원을 나왔어요. 진짜 왕초보라 수강생들 중 압도적 꼴찌에요. 아저씨같은 사람도 이렇게 배우고 있으니 학생도 파이팅해요."
역시 선생님인줄 알았는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던 여학생은 이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우와!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대답하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더니 "응원할게요. 파이팅!"하고는 입시반으로 들어갔다. 응원을 해주려다가 응원을 받은 상황인지라 잠깐이지만 참 기분이 묘했다. 더불어 좀 참고 학원을 다녀보자는 생각이 들게 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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