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차 마을신문의 분투기, 전직 기자도 놀랐습니다

김성호 2024. 7. 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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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바로여기 5] 진심 가득한 마을기자들... 대전 '관저마을신문' 편집회의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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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기자]

그저 가벼운 걸음이었다. 전주에서 참여해야 할 일정이 생겼고 가는 길에 대전을 잠시 들르기로 한 참이다. 알고 지내는 이가 대전에서 마을신문 편집장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나는 마을신문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터였다. 그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겸 하여 일정을 잡았다. 때마침 퍼부은 폭우로 그가 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다 나는 편집장 없는 편집회의를 날 것 그대로 중간부터 참관하게 됐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대전에 내렸다. 중부지방에 말 그대로 물폭탄이 쏟아진 다음날이었다. 역 앞 천변엔 뿌리째 뽑힌 커다란 나무가 떠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크기가 있는 태양광 집광기들도 줄지어 떠내려 왔다. 천변에 사람들이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가 건너야 할 다리 교각이 주저앉아 경찰이 출동해 통행을 막아섰다. 버스는 크게 둘러 시간을 꼭 맞춰서야 목적지에 나를 내려놓았다.

내가 내린 이곳은 대전 서남쪽에 위치한 관저동이다. 1동과 2동을 합쳐 6만5000여 명이 사는 이곳을 나는 특별히 기억할 것이다. 10년 째 이곳에서 발간해온 지역매체 <관저마을신문>이 이날 여정의 목적지다. 들어선 사무실에선 편집회의가 한창이다. 테이블 양편을 가득 매운 이들이 이 신문의 기자며 편집자라 했다.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구성, 남자 하나에 여자가 일곱이다.

애정 가득한 지적, 신문 가득 빨간펜 메모 
 
▲ 관저마을신문 지난 10일 관저마을신문 기자들이 편집회의에 열중하고 있다.
ⓒ 김성호
 
들어섰을 땐 편집회의가 이미 절반쯤 된 상태. 펼쳐진 면은 9면이다. 자리를 잡자마자 윤귀자 기자가 상·하단 구분이 모호한 점을 지적한다. 위에 실린 카페 기사와 아래 공원 공사기간을 적은 광고가 마치 하나처럼 보인단 것이다. 참석한 몇몇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뜻을 표한다. 윤 기자는 성에 차지 않는지 한 마디를 더한다.
 
"우리 신문이 16면인데, 절반을 딱 펼치면 나오는 면이에요. (여기) 어마어마한 자리입니다."

과연, 펼치면 나오는 정중앙이 8면과 9면이다. 그중 우측면 기사가 아닌가. 수차례 펼쳐봤어야,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지적이다.

이정주 기자 앞에 놓인 신문에 눈길이 간다. 면 이곳저곳에 빨간 펜으로 줄을 치고 메모도 해놓았다. 회의에 들어서기 전부터 여간 꼼꼼히 살펴본 게 아닌 모양이다. 그가 업무협약 체결에 대한 보도에 대해 한 마디를 보탠다. 관내 기관 간 업무협약 체결을 건조하게 전하는 보도를 두고서 "기관 이름만 적을 게 아니라 협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목으로 넣는다면 좋지 않을까요" 말한다. 그러고 보면 과연 그러하다. 주민들은 기관 이름보단 그 내용에 관심을 가질 테다.

문득 떠오른 부끄러운 기억
 
▲ 관저마을신문 편집회의에 참석한 이정주 기자가 신문 위에 빨간 펜으로 메모를 가득 해놓았다.
ⓒ 김성호
 
문득 떠올랐다. 사실 4년 전 나는 6년차 기자였다. 기자 수만도 200명을 헤아리는 커다란 언론사였는데, 그럼에도 편집회의는 요식행위라 해도 좋을만한 것이었다. 부서 대표로 이따금씩 들어간 회의에서 기사의 이모저모를 따지는 말은 없다시피 했다. 지면에 들어간 기사가 취재냐 자료냐를 보고하듯 말하면 그에 따라 고과를 매기는 점수가 떨어졌다.

그 뒤로 내가 할 말이란 '(수정할 것도 할 말도) 없습니다'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대다수가 그러했다. 지면에 결정권을 가진 이는 어차피 소수이고, 말단 기자들은 나 맡은 기사나 제대로 쓰면 될 일이라 여겼다. 부끄럽지만 내가 겪은 매체, 프로들로 가득한 신문사의 편집회의가 그러했다.

정말이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관저마을신문>은 14년 차 지역 언론이다. 대전 서구 관저동 주민들이 직접 기자가 되어 마을의 기삿거리를 발굴해 취재하고 기사를 써 신문을 발행한다. 취재부터 기사 작성까지 교육을 받았다곤 하지만, 직업기자가 아닌 마을주민이자 봉사자인 이들의 작업이다. 편당 소정의 고료를 받아 취재에 나선다. 그런데 편집회의 참여는 물론, 직접 신문을 배부하기까지 한다.

아파트가 밀집한 관저동 일대를 일일이 발로 뛰며 6000부가 넘는 신문을 배포하는 작업이 만만할리 없다. 모든 매체가 온라인과 영상을 지향하는 시대, 신문과 글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작업이 특별히 귀하게 다가선다.

매달 16면을 채우는 작업이 만만할 수 없다. 전문 기자가 아닌 이들이 직접 취재에 나서는 건 매순간이 도전이다. 부담은 고스란히 개별 기자가 감당할 몫이다. 나온 기사를 말할 때는 그토록 열성적이던 기자들이 다음호 기사계획을 두고선 숙제 안한 학생으로 변신하였다.

회의를 주관한 김성옥 부편집장의 눈을 피하고 지목된 이는 쑥스런 미소에 변명을 늘어놓는다. 마치 어린 시절 선생님과 학생들을 보는 듯한 풍경이다.

발로 뛰며 6천부 신문 배포까지... 6만여 명 주민에 필요한 마을신문
 
▲ 관저마을신문 사명이 적힌 액자글
ⓒ 김성호
 
마을신문 활동이 이들에게 남긴 것이 있다. 그 변화가 이들을 마을신문 활동에 붙들어 놓는다. 권혁숙 기자는 "기자로, 사회적인 시각으로, 사건과 사물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며 "취재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런 걸 견문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마을 안에서 견문이 많이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송영희 기자도 보탠다. 송 기자는 "기존에는 신문이나 잡지를 볼 때 글만 딱 보고 말았다면 이제는 어떤 기자가 썼나 먼저 기자 이름부터 보고 글을 본다"며 "이 사람은 어떤 느낌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썼겠구나, 좀 알게 되니까 (그런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들은 어느덧 만드는 이가 되었다. 단순히 읽고 그치는 게 아닌, 만나고, 묻고, 쓰고, 전하는 기자로 거듭난 것이다.

<관저마을신문>이 특별히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 이행순 기자는 특별히 두 코너를 언급한다. '주민만나기'와 '슬기로운 상가생활'이다. 이 기자는 "전에는 가게를 다녀도 그냥 돈 내고 먹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기자생활을 하고 난 뒤엔 한 분 한 분이 다 주민이고 (취재 대상이기도 하니) 예사로 안 보인다"며 "이런 주민들이 내 가까이 살고 있었단 걸 알게 되면서 어떤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과의 연결은 <관저마을신문> 운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철숙 기자는 독자의 응답을 받았던 경험을 소개한다. 이 기자는 "앞에 말한 것처럼 큰 딸이 인터뷰를 했는데, 신문이 배포된 아파트에 사는 둘째딸 친구가 실린 사진을 찍어서 딸애한테 보내줬다"며 "자기 아빠가 보고 '여기 누구누구 언니 나왔다'고 알려줬다고 하는데 그런 피드백 하나하나가 되게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6만5000명 주민, 그들에게 매달 전할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기자들이 있다. 고작 6만5000명의 인구라서, 아직은 그보다도 훨씬 적은 독자를 가져서 이 신문의 경영은 결코 넉넉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가능하다고도 말한다. 나 또한 그것이 가능했으면 한다. 다른 모든 언론이 그러하듯, 어쩌면 그 이상으로 <관저마을신문>은 독자의 관심이 절실하다.
   
▲ 관저마을신문 관저마을신문을 이끌어가는 기자들이자 대전 지역 주민들이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김성호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작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와 <미디어날>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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