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선수 악수 거부한 우크라 검객…첫 메달 따고 오열
우크라이나의 ‘국민 검객’ 올하 하를란이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최세빈(한국)을 꺾고 동메달을 땄다.
15점을 획득해 승리를 확인한 후 하를란은 감격에 차 오열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잠시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에 입을 맞췄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겪은 수난을 아는 관중은 1만3500㎡가량 면적을 자랑하는 그랑 팔레 중앙홀이 떠나갈 듯이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질렀다.
하를란은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펜싱 메달리스트다. 2008년 베이징,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 은메달을 땄다.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 올림픽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를란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악수 거부’ 사건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64강전에서 러시아 출신 선수인 안나 스미르노바를 15-7로 물리쳤다.
경기 종료 후 마주 선 스미르노바가 다가가 악수하려 했으나 하를란은 자신의 검을 내민 채 거리를 뒀고, 악수는 하지 않은 채 피스트를 벗어났다. 규정상 의무로 명시된 악수를 하지 않은 하를란은 실격당했다.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 실격으로 파리 올림픽 출전에 필요한 세계랭킹 포인트를 딸 기회가 사라진 하를란에게 올림픽 출전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를란 “러시아에 의해 죽은 선수들 위한 메달”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 하를란이 나타나자 우크라이나 기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격하게 환영했다. 하를란도 함께 소리치며 감격의 순간을 공유했다. 환희에 찬 우크라이나 매체들과 자국어로 먼저 인터뷰한 후 다시 외신들을 위해 영어로 말한 하를란은 “(이번 동메달은) 정말 특별하다. 믿을 수가 없다”며 “조국을 위한 메달이고,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메달”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기 오지 못한 선수들, 러시아에 의해 죽은 선수들을 위한 메달”이라며 “여기로 온 선수들에게는 참 좋은 출발로 느껴질 거다. 조국이 전쟁 중인 가운데 (대회에) 출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메달이 금메달과 같다. 무슨 메달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금메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기 직후 마스크와 피스트에 입맞춘 순간을 돌아보며 “이건 내가 따낸 5번째 메달이다. 그저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감사했던 것뿐”이라고 미소지었다.
시상식을 마친 후 공식 기자회견에 참여한 하를란은 여기서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하를란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경 쓰고 있다. 그건 힘든 일”이라며 “우리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다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메달이 조국에 기쁨, 희망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며 “우크라이나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IOC,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 불허
한편, IOC는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불허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IOC 헌장 50조는 시위나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동을 올림픽 경기장과 시설 등에서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스포츠의 정치 중립을 강조하는 조항이다.
실제 전쟁에서 자국의 선전을 응원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하를란의 발언이 ‘정치적 표현’의 범주에 들지는 향후 지켜볼 대목이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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