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밸류업 정책에 ‘찬물’…지주사, 두산밥캣 지배력 확대
두산그룹이 과감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지만 시장에서 날 선 비판에 직면했다. 두산 오너 일가가 비용 부담 없이 그룹 캐시카우 두산밥캣 지배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 권익이 훼손됐다는 것이 요지다. 두산밥캣 주주들은 “강제로 상장폐지당할 판”이라며 두산 오너 일가를 성토하는가 하면, 캐시카우를 내주게 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날벼락을 맞았다”며 비난 여론이 들끓는다. 시장 일각에서는 자본시장법상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며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기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논란의 핵심은 합병비율이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크게 3단계다. 두산에너빌리티를 1 대 0.25 비율로 존속 사업법인과 두산밥캣 지분(46.1%)을 보유한 신설회사로 인적분할한다. 그 뒤 신설회사를 1 대 0.13 비율로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주가 보유한 두산밥캣 잔여 지분 44.9% 등을 두산밥캣 주식 1주당 두산로보틱스 0.63주로 바꾸는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취득한 뒤 두산밥캣을 상장폐지한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 모두 합병비율에 불만을 갖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사이에선 합병 비율 ‘0.03’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는 분할합병 완료 시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갖고 있는 투자자가 로보틱스 주식 3주를 받는단 의미다. ‘0.03’이라는 숫자가 도출된 과정은 이렇다. 상장사 A(두산에너빌리티)의 특정 사업 부문을 떼내 상장사 B(두산로보틱스)에 합병시키면 A 주주들은 사업 부문을 넘겨준 대가로 B의 신주를 받는다. 신주를 얼마나 받을지는 A가 사업을 떼낼 때 적용한 분할비율과 그 사업을 B가 흡수할 때 합병비율을 곱한 ‘분할합병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이 때문에 분할합병비율은 ‘0.24(분할비율)×0.13(합병비율)’을 하면 대략 0.03이 된다. 시장 일각에선 에너빌리티 분할합병 과정에서 신설회사가 비상장사가 돼 기업 평가가 시장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두산밥캣 주주도 합병비율을 두고 분통을 터뜨린다. 두산밥캣 주주는 밥캣 1주를 내놓으면 로보틱스 0.63주밖에 못 받는다. 두산밥캣 주주 C씨는 “우량 기업에 직접 투자해 미래 성장을 공유하려 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고평가 로봇 테마주로 바꾸든지 현금 청산을 당하든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논란이 확산한 배경은 두산밥캣과 로보틱스 간 본질 가치 차이 때문이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 9조7589억원, 영업이익 1조3899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 530억원에 영업손실 192억원을 냈다. 2015년 설립 이후 줄곧 적자다. 밥캣 주주 사이에서 연간 1조원을 버는 알짜 회사 주식 대신, 중장기 성장이 불확실한 로보틱스 주식으로 교환해야 하고, 그마저 1주에 0.63주밖에 못 받는 상황이 달갑지 않단 해석이 확산한 배경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꼬집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두산 측이 산정한 합병비율 산정 방식 자체는 절차적 흠결이 없다. 우리 자본시장법은 상장회사 합병 시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했다. 결국 이번 지배구조 개편 최대 수혜자는 두산 지배주주라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두산 → 두산에너빌리티(30%) → 두산밥캣(46%)으로 이어지던 지배구조는 ㈜두산 → 두산로보틱스(42%) → 두산밥캣(100%)으로 변경된다. 두산의 두산밥캣 간접지분율은 14%에서 42%로 대폭 증가한다.
기관 투자자도 당혹감
분할합병 시너지를 두고도 모호하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는 물론 펀드매니저 사이에서도 당혹감이 읽힌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 발표 직후 삼성증권은 “건설장비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이 로봇 회사 주주가 되는 셈”이라며 “일반적으로 시장은 복합 기업, 지주사보다 순수 영업 회사를 선호한다”며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조정했다. 목표주가 역시 주식매수청구가격까지 낮췄다. 사실상 매도 의견을 낸 것으로 시장은 해석한다.
보고서를 낸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로보틱스로 편입되는) 이번 변화가 두산밥캣 재무와 영업 활동에 미치는 효과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신주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 배당 능력이 우수한 두산밥캣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효과가 있지만, 두산밥캣은 단순히 대주주가 바뀔 뿐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국내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교환비율은 자본시장법상 시가로 결정되는 것이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로보틱스를 살리려 밥캣 주주들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인 탓에 주가 추이를 살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용평가업계에서는 시각이 갈린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두산그룹 전체로 보면 두산밥캣 지배력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두산에너빌리티의 배당수익 기반과 재무 대응력 약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더 이상 두산밥캣 배당수익을 받지 못하고, 투자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던 두산밥캣 지분(2조2000억원 규모)이 사라져 재무 융통성이 약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설 법인으로 자산과 부채가 넘어간 것도 부채비율 상승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신설 법인으로 넘어가는 회사채는 두산밥캣 지분이 담보로 제공된 3억달러 외화보증사채가 전부다. 신용등급을 보유한 1800억원 규모 회사채는 존속법인에 남는다. 나신평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차입금 이관과 투자 주식 처분으로 유동성을 보강할 예정이지만, 두산밥캣을 잃는 데서 초래되는 부정적 영향을 모두 상쇄하기에는 미흡하다고 봤다.
한국기업평가 시각은 조금 달랐다. 한국기업평가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여전히 양호한 사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종속회사 지분 처분이 재무안정성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이번 변화가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김경민·배준희·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9호 (2024.07.24~2024.07.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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