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팬덤]⑧"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요즘 팬덤과 달랐던 노사모
네거티브 대신 포지티브한 작동방식
지도자 닮은 꼴인 정치 팬클럽
편집자주 - 한국 정치에서 '팬덤'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팬덤이 정치를 지배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이재명 전 대표까지 팬덤이란 정치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동훈 신임 국민의힘 대표 역시 팬덤을 중심으로 당권까지 잡았다. 다만 팬덤은 극단적인 행동을 보여서 정치 양극화를 초래하고 갈등을 확대 생산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팬덤 정치의 실태와 이유를 진단·분석하고 변화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①"한동훈은 도구" "이재명은 적격" ②온·오프 넘어 유튜브, 언론까지 활동 확산 ③책 사서 변호사비 모으고 SNS 릴레이 후원 ④숫자 많은 '재명이네 마을' vs 조회 수 높은 '위드후니' ⑤ '팬덤 공포' 걱정하는 지지자들 ⑥팬덤에 몸살 앓는 정치인들 ⑦'억' 소리 나는 정치 유튜브 ⑧요즘 팬덤과 달랐던 노사모
정치인 팬덤과 관련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줄여서 노사모다. 한국 정치인 팬덤의 시작으로 꼽히기도 하고, 현재의 팬덤 문화를 비판할 때 번번이 비교 대상이 되는 이들도 노사모다. 노사모는 현재의 팬덤과 어떻게 달랐을까.
2002년 노사모에서 낸 책 '우리는 노사모입니다'에 보면 노사모의 지향점은 '사랑'에 맞춰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일꾼으로 자신을 소개한 명계남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며 "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을지라도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녹여내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당시 노사모와 관련된 사람들은 지역주의에 맞선 용기 있는 정치인 이른바 '바보 노무현'에 대한 존경과 사랑, 헌신을 기억했다.
참여정부 시절 의전비서관을 지냈던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서갑원 전 의원은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노무현을 구하자는 목소리를 냈지, 누군가에 대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술회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광주 지역 선거운동을 했었던 서 전 의원은 노사모의 헌신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노사모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분기점이 된) 광주 경선을 열흘 정도 앞두고 서울에서만 배달되는 한 신문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1등을 했다. 근데 정작 광주에서는 이 신문을 못 보니 알 수가 없었는데, 당시 광주에 뿌리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한 차 가득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규모가 엄청나 배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때 노사모들이 왔길래 부탁했더니, 군소리 안 하고 한나절 만에 다 뿌렸다. 당시 노사모 회원들은 선거인단에 전화를 걸어 설득하고, 집 앞에 찾아가 '서울에서 온 누구인데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달라'고 전달하며 설득하기도 했다. 이들의 감동적인 노력이 모여 노 전 대통령은 광주 경선에서 1위를 했다."
노사모는 경쟁 후보에 대한 공격에 나서는 이른바 네거티브 대신, 지지를 호소하는 포지티브 선거운동을 벌였다. 이런 노 전 대통령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참모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달리할 때는 반대운동보다는 적극적인 찬성이나 지지 운동이 바람직하며 거부나 반대운동은 비도덕적인 행위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사모가 연예인 팬덤으로 비교되는 요즘 팬덤과 달랐던 것은 양측 사이의 건강한 긴장감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지자와 지지 대상의 결합이지만 양측은 건강한 긴장 관계를 이뤄왔다.
노사모의 성격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고 지지자를 만난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여러분은 제가 대통령이 되면 뭘 할 것이냐"고 물으니 노사모 회원들은 "감시" "감시"를 연달아 외쳤다. 대통령이 된 노 전 대통령이 제대로 국정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여러분 말고도 흔들 사람 꽉 있다"며 "(저도) 감시도 하고,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 좀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03년 3월 이라크 파병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사불란의 시대는 갔다. 정치적인 소속이 같다고 해도 사안별로 의견을 달리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며 "노사모가 대선 당시 나를 지지했다가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별수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하는 방향에 대해 노사모가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지만, 반대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노사모와 노 전 대통령이 바라왔던 관계는 어땠을까.
퇴임을 6개월 앞둔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6월 노사모 창립총회에 영상 축하 메시지를 통해 그 일단락을 보여줬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참여정부의 성과를 언급한 뒤 "여러분(노사모)을 믿고 옳은 일이면 과감하게 맞섰고, 부당한 저항에 대해서는 정면 돌파했다"며 개혁의 공을 노사모에 돌렸다. 이어 대통령 퇴임 이후 노사모의 미래와 관련해 "노사모는 노무현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든 모임"이라며 "임기를 마치면 노사모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현재까지 회자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바라왔던 노사모의 미래였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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