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의리축구' 인정한 홍명보, 엇갈린 여론
[이준목 기자]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신임 감독으로 선임된 홍명보가 무려 22일만에 뒤늦은 취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홍명보 감독은 과거 10년전 대표팀 감독 시절의 과오와 최근 선임 '특혜 논란'에 대하여 팬들에게 고개숙여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홍 감독은 차기 북중미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제시하며 팬들의 응원을 당부했지만, 홍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축구팬들의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7월 29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홍명보 감독의 축구대표팀 취임 기자회견이 열렸다. 홍 감독은 K리그 울산 HD 감독을 맡고 있던 지난 7일 돌연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축구협회는 13일 이사회 승인을 거쳐 홍 감독을 정식 선임했다. 그동안 '대표팀 감독을 맡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여러 번 강조했던 홍명보 감독이 돌연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며 말바꾸기를 한 것에 대하여, 축구팬들은 '감독이 신의를 저버리고 시즌 도중 팀을 버리고 떠났다'며 강한 배신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축구협회가 다른 감독후보들과 달리 홍명보 감독에게만 제대로 된 절차나 검증 과정없이 사실상 감독으로 추대한 것을 놓고 '특혜 논란'까지 일었다.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에 참여했던 박주호 등 후배 축구인들의 연이은 내부 폭로와 비판, 문체부의 축협 감사 결정까지 이어지며 상황은 걷잡을수 없이 악화됐다.
축구협회는 사태가 커지자 뒤늦게 공식 입장문을 통해 홍명보 감독 선임과 관련되어 '특혜는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궁색한 논리와 아전인수식 해석에 치우친 입장문은 오히려 의혹만 더욱 부채질하는데 그쳤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성난 비판 여론속에 첫 공식 일정으로 취임 기자회견이 아닌 유럽파 점검을 명분으로 도망치듯 해외출장을 선택해야 했다.
▲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진 홍명보 A대표팀 감독 |
ⓒ 대한축구협회 |
홍명보 감독은 유럽에서 외국인 코치 후보 면접을 포함해 손흥민, 김민재 등 유럽에서 활약 중인 국가대표 선수들과 면담을 마치고 25일 귀국했다. 홍 감독이 이날 마침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지 약 3주만에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의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여전히 좋지않은 여론을 의식한 듯 홍 감독은 이날은 기자회견 내내 무거운 표정으로 먼저 '반성과 사과'를 강조했다. 대표팀 감독 선임 직후 울산 HD 사령탑으로의 마지막 기자회견 당시 "나는 나는 버렸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는 자기중심적인 입장에만 도취한 태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과 비교하면 한결 조심스러워진 모습이었다.
홍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 취임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8장 분량의 원고지에 정리한 내용을 낭독하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홍 감독은 "지난 5개월 간 여러 논란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처드린 점 축구인의 한 명으로서 죄송하다. 큰 성원을 보내드린 울산 팬들에게 특히 사과와 용서를 구한다. 그렇기에 이번 선택이 팬들에게 상처와 실망감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고개숙여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며 일어나서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 감독 취임 기자회견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며 준비해 온 8장짜리 원고를 읽고 있다. |
ⓒ 이정민 |
이어서 홍 감독은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했다. 홍 감독은 북중미월드컵의 목표에 대하여 "최종 예선을 시작하면서 북중미 월드컵 결과를 얘기하는 건 이른 감이 있다"면서도 "한국 대표팀이 원정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 16강이었는데,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본인의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특혜 논란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홍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게 된 이임생 기술이사와의 대화에 대하여 "한국 축구의 기술 철학, MIK 프로젝트, 연령별 대표팀 간 연계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설명하며 "대화 후 내 마음이 변하게 된 것은, 나도 대표팀 감독과 전무이사를 해봤고 월드컵과 아시안컵에서 있었던 문제를 보고 내 역할이 필요하다는 이임생 이사의 말씀에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아니어도 더 훌륭한 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표팀 감독직이 내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한편으로 홍 감독은 "많은 기대 속에 팀이 출발하면 좋았을텐데 지금은 반대로 우려와 비판 속에 출발하게 돼 마음이 무겁다. 10년 전 이 자리에 왔을 때는 기대와 박수로 출발했던 기억이 난다. 비판은 감수하면서 나가야 한다. 항상 겸손하게 받아들이겠다"며 최근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K리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즌 중 감독을 사퇴한 모순에 대해서도 "내가 평생 안고 가야할 것이다. K리그 팬, 구성원 모두에 다시 한 번 죄송하다"며 재차 사과했다.
하지만 감독 선임에서 정몽규 회장의 개입설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다만 홍명보 감독은 "2020년 7월에 정몽규 회장이 자신에게 축협 회장직을 제안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당시 홍 감독은 "회장직보다는 현장에 나가서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제안을 거절했던 사실을 설명하며 "이번 선임 관련해서는 정 회장과 연락한 적이 없고 이임생 이사와의 대화만으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홍명보 감독의 아픈 흑역사로 꼽혔던 10년전 브라질월드컵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거론됐다. 당시에도 홍명보 감독은 자신이 제시한 선수선발의 원칙을 스스로 깼던 '말바꾸기'와 박주영 등 자신이 아는 선수들만 중용한다는 '의리축구' 논란으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홍 감독은 당시 대표팀 감독직에 불명예스럽게 사임한 이후 브라질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는 되도록 거론하지 않았다.
선수들과의 소통 강조한 홍명보
▲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 감독 취임 기자회견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 이정민 |
하지만 현재는"그동안 K리그에서 3년 반 동안 생활했고 각 팀 주요 선수들, 대체하는 선수들 리스트도 있다. 팀에 헌신할 수 있는 선수,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들이 머릿속에 있다는 게 10년 전과 차이"라며 본인이 지도자로서 한층 경험이 쌓이고 성숙해졌다는 어필도 덧붙였다.
세간에 알려진 '카리스마' 감독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선수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강조한 홍 감독은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딱딱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수평적인 거 좋아한다. 카리스마는 하나의 특징이지 저의 모든 걸 대변하지는 않는다. 울산을 비롯하여 지도자 생활 하면서 수평적인 분위기를 꾸준히 반영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감독은 "다만 우리는 팀 스포츠이기에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팀이다. 팀에는 문화, 정신, 정체성이 있어야 하고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대표팀의 주인은 팬들이다. 나 역시 이 팀에 잠시 와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며 모든 구성원들이 팀을 위한 공통된 희생과 헌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홍 감독은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홍 감독은 "대부분의 리스크는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감독으로서 대표팀 내 핵심적인 내용을 대화로 공유할 생각이다"라고 선수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약속했다.
이밖에도 홍 감독은 손흥민의 주장 재신임, 외국인 코치의 영입과 철저한 역할 분담, 국가대표 선수선발의 유연성과 개방성 등을 강조하며 앞으로 '홍명보호 2기'를 이끌어나갈 청사진을 밝혔다. 홍 감독은 "실망하신 팬들에게 용서받는 방법은 축구대표팀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것뿐이다. 더 큰 책임감으로 이 자리에 임하겠다"고 다짐하며 팬들의 성원을 당부했다.
홍명보 감독의 기자회견에 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어쨌든 월드컵 최종예선이 임박한가운데 홍명보 감독이 새로운 대표팀 감독이 선임된 것은 돌이키기 어려워졌다. 본인이 과오를 인정하고 재차 사과까지 한만큼 일단 홍명보호를 믿고 가야한다는 응원의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축구협회와 밀실 행정과 절차적 문제, 홍명보 감독의 자격 논란과 모호한 축구철학에 대한 의구심 등이 해소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홍 감독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최근 문체부 감사에 이어 정몽규 회장의 회고록 논란 등, 축구협회를 둘러싼 잡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홍 감독의 기자회견이 열린 29일 당일날,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에 축구협회 해체를 요구하는 청원은 5만여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처럼 축구협회를 향한 비판 여론이 여전히 거센 상황에서 '홍명보호 2기'의 첫 출항은 역대 그 어떤 대표팀의 시작보다도 험난해 보인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정이 엉망진창'...이 카르텔 하루빨리 해체해야
- "서장이 전화해서, 용산이 보고있다고..." 경찰판 '채해병 사건' 터졌다
- "99세 할머니까지 걱정... '위험천만' 제주2공항"
- 삼세판 승부 만에 이겼다... 남자 양궁, 올림픽 단체전 3연패
- "망한 위메프서 광고비 내라 문자 와" 피해업체들 헛웃음
- 화엄사 마당에 늘어선 '모기장'... 인기가 이 정도입니다
- 요즘 우리 집 구호는 '오이 111', 이게 무슨 뜻이냐면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두동훈
- 보수를 욕보이는 사람들
- 최민희, 탈북 의원에 "전체주의에서 생활해 민주주의 안보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