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에 활짝 웃은 허미미, 아쉬운 반칙패는 옥에 티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 여자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경상북도 체육회)가 첫 출전한 올림픽 무대에서 은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이뤄냈다. '당당한 패자'의 모범을 보여준 허미미는 시상대 위에서도 환한 미소를 보이며 팬들의 응원과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석연치않은 판정으로 인한 패배는 옥에 티였다.
▲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드마르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유도 여자 57kg급에서 은메달을 딴 허미미가 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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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오전(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샹드마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급 결승전에서 허미미는 라이벌인 크리스타 데구치와 접전 끝에 석패하며 은메달을 기록했다.
세계랭킹 3위인 허미미는 2번 시드를 배정받아 32강을 건너뛰고 16강부터 경기를 시작했다. 첫 경기에서는 이스라엘의 팀나 넬슨 레비를 연장전에서 반칙승으로 제압했다. 8강에서는 몽골의 르하그바토고를 상대로 경기 중 부상에도 불구, 종료 약 15초를 남겨두고 상대 안다리를 걸어넘기며 짜릿한 역전승을 이뤄냈다. 4강전에서는 브라질 라파엘 실바를 연장전에서 업어치기 이후 누르기로 절반을 얻어 결승행을 확정했다.
결승 상대는 예상대로 세계랭킹 1위의 데구치였다. 캐나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데구치는 허미미와 이미 지난 5월 세계선수권 결승에서도 맞붙은 바 있다. 당시 허미미는 연장전 끝에 지도 3개를 얻어 반칙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림픽 결승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두 선수는 팽팽한 경기를 펼쳤으나 정규시간 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먼저 지도 2개를 받으며 불리한 상황이었던 허미미가 체력이 떨어진 데구치를 공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던 흐름이었다.
▲ 허미미가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드마르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유도 여자 57kg급 결승전에서 캐나다 크리스타 데구치에게 위장 공격을 시도한 것으로 주심이 인정해 반칙패를 판정받자 김미정 감독이 위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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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선수가 아니라 심판 판정이 승부를 좌우한 꼴이 됐다. 허미미는 결승전 내내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한 반면, 데구치는 누가 봐도 소극적인 경기운영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프랑스 심판은 승부를 회피하는 데구치보다 정면승부를 선택한 허미미의 동작을 계속해서 더 문제삼았다. 그것도 올림픽 결승전, 두 선수 모두 지도 1개로 승부의 흐름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었기에 더욱 아쉬운 판정이었다.
단순히 오심 논란을 떠나 현행 유도 경기 규정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경기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위장 공격'과 '지도 3회 누적시 판정패' 규정은 가뜩이나 유도의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위장공격은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먼저 공격을 시도하는 척 하면서 쓰러지는 동작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다. 그런데 허미미처럼 업어치기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에게는, 이미 체력소모가 극심한 상황에서 유효타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일부러 쓰러지는 위장공격으로 오인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반면 데구치는 허미미와의 정면승부를 피하고 도망만 다니다가 사실상 지도를 이끌어내는 작전에 가까웠다. 데구치가 받은 지도 2개가 소극적인 플레이로 얻은 결과였다면, 허미미는 지도 3개중 2개는 위장공격으로 판정됐다. 이는 두 선수의 상반된 경기운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데구치의 '침대유도' 전략이 먹혀서 금메달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냉정히 말하면 데구치가 규정을 위반했다거나 심판의 오심 탓은 아니지만 어쨌든 '규정의 허점'을 이용한 꼼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올림픽 같은 무대에서 이런 식의 경기운영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유도'에 대한 비판과 의구심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가 5대손으로 화제
비록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허미미의 선전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한 선수로, 2021년에 과감히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며 유도 국가대표가 됐다. 또한 그녀가 일제강점기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허석의 5대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이미 일본에서도 유도 유망주로 주목받던 허미미는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할머니의 유언을 따라 한국 국적을 선택한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허미미는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하며 최근 2년 간 국제대회에서 8차례나 우승할만큼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우뚝 섰다.
허미미의 은메달은 한국 여자유도에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정보경(은메달, 48kg) 이후 8년 만에 따낸 값진 메달이었다. 2002년생으로 아직 22세에 불과한 허미미는 4년뒤 다음 올림픽을 기약하기에도 충분한 나이다.
또한 아쉽게 올림픽 금메달을 목전에서 아쉽게 놓쳤지만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 허미미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 후 방송 인터뷰에서 허미미는 "조금 아까웠지만 그래도 메달을 따서 다행이다. 판정은 시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금메달을 따고 시상대 위에서 부르려고 애국가 가사까지 외웠는데 아쉽다. 다음 올림픽 때는 꼭 부르고 싶다"고 말하며 다음 도전을 기약했다.
허미미는 시상대 위에서도 은메달을 들고 당당하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떤 결과든 쿨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에 응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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