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만에 미군이 박살났다…교훈 된 한반도 첫 '전차전' [Focus 인사이드]
귀관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
6.25 전쟁 초기 국군이 일방적으로 밀린 가장 큰 이유는 북한군과의 현격한 전력 격차 때문이었다. 특히 북한군이 남침 선봉에 내세운 전차는 이후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인상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아군의 훈련 부족과 잘못된 대응으로 피해가 더 커졌다는 반론도 있지만, 자신만만하게 참전한 미군도 1950년 7월 5일 최초로 교전을 벌인 오산 전투에서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참패당했다.
곧이어 7월 7일부터 벌어진 천안 전투에서 미 제24사단 예하 제34연대장으로 급거 부임한 로버트 마틴 대령이 직접 대전차전에 나섰다가 전사했을 정도로 미군은 T-34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은 제34연대를 대신해 제21연대는 천안과 조치원 사이의 전의에 다음 방어선을 구축했는데, 이번에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M24 전차 8대로 구성된 미 제78전차대대 소속 전차소대가 7월 9일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방어에 나선 제21연대 장병들은 환호를 지르며 이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정작 전차소대원들은 앞으로 그들이 맞붙어야 할 T-34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은 미국으로부터 M3, M4를 공여받아 사용했기에 미국제 전차의 성능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관련 정보는 북한군에 전수된 상태였다. 반면 미군은 소련군과 같은 편이었기에 T-34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였다.
당시 한반도에 제일 먼저 투입된 미군 병력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징병된 이들이어서 전투 경험도 없었다. 그래서 지휘관들의 고민은 컸다. 전선을 시찰하던 월튼 워커 미 8군 사령관이 전차소대를 마주한 뒤 어떻게 싸울 것인지 물었을 때 소대장은 과감히 돌격하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조지 패튼의 선봉장으로 유럽을 휩쓸고 다녔던 워커는 성급한 정면 돌격이 무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M24는 화력과 기동력은 무난하지만, 정찰용으로 개발된 경전차라는 방어력 빈약하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애당초 T-34와의 정면 대결은 무리였다. 이를 잘 알던 워커는 혈기왕성한 전차소대장에게 "지금 우리는 공격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유리한 장소에서 적을 지연시켜야 할 때"라고 말하며 신중히 작전을 펼칠 것을 주문했고 적 전차를 상대하는 요령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천안에서 출발한 북한군이 11대의 제105전차사단 소속 T-34를 앞세우고 1번 국도를 따라 남하했고 마침내 7월 10일 전의에 나타났다. 적의 출현을 기다리며 제21연대와 함께 능선에 매복 중이던 M24가 적들이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일제히 포격을 가했다. 최우선 목표는 오산과 천안에서 연이어 미군에게 망신을 안겨준 T-34였다. 그렇게 6.25 전쟁 최초의 전차전이 시작되었다.
적을 얕잡아 본 대가
일제히 날아간 포탄에 남진하던 선두의 T-34가 정확히 가격당한 뒤 불타올랐다. 그러자 모든 M24가 젊은 소대장이 워커에게 말한 대로 일제히 적진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지금까지 거침없이 전진만 하던 북한군 전차는 미군 전차와 마주하자 일순간 당황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21연대 장병들은 환호작약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번 전투에서 전차소대가 보여 준 전부였다.
전차소대장의 낙관과 달리 북한군은 즉시 전열을 정비해 반격에 나섰다. 북한군 보병이 도로 양편으로 산개함과 동시에 잔여 T-34들이 화염에 불타는 선두 전차를 도로 밖으로 밀어낸 뒤 달려오는 M24를 상대하기 위해 전투 대형으로 기동했다. 그렇게 전의를 관통하는 1번 국도 일대에서 불꽃 튀는 기갑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워커의 우려대로 T-34와 M24의 정면 격돌은 무리였다.
하다못해 M24보다 체급이 큰 M4 전차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차와 교전을 벌일 경우 전술적으로 우위에 서지 않으면 섣불리 교전하지 않았다. 그러했던 선배들의 조심성을 젊은 전차소대원들은 간과했던 것이었다. 결국,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젊은 장병들의 용기를 무조건 칭찬할 수 없었던 장군의 예상대로 한반도에서 벌어진 최초의 전차전은 불과 한 시간 만에 미군의 참패로 끝났다.
초전 기습으로 1대의 T-34를 격파했지만, 미군은 모두 7대의 M24를 잃었다. 그렇게 아군의 전차소대가 무참히 터져 나가는 모습을 목도 한 제21연대 장병들은 사기가 급락한 채 대전으로 다시 후퇴했다. 그렇게 예하 연대들이 계속해서 터져나갔지만, 제24사단의 수모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후 공주 전투와 대전 전투에서도 패하면서 사단이 와해 될 지경에 이르렀고 윌리엄 딘 사단장이 북한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전쟁터에서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장병들의 저돌적인 의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의지를 승리의 수단으로 이끌 수 있는 풍부한 경험 또한 필요하다. 미군이 6·25 전쟁 참전 초기에 연이어 엄청난 수모를 겪었던 가장 큰 이유는 워커의 우려처럼 과거의 경험을 망각하고 적을 얕잡아 보았던 것도 크게 한몫했다. 그렇게 미 육군에게 한반도에서 벌어진 최초의 전차전은 두고두고 곱씹는 커다란 교훈을 남겨줬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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