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3관왕 안산마저 탈락…韓양궁 36년 천하 이끈 '공정의 힘'

김효경 2024. 7.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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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10연패 위업을 이룬 전훈영(왼쪽부터), 임시현, 남수현이 ‘10’을 상징하는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국 양궁이 정상을 굳건히 지켰다. 임시현(21·한국체대), 전훈영(30·인천시청), 남수현(19·순천시청)이 활약한 한국 여자 양궁대표팀은 2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중국을 세트스코어 5-4로 꺾었다. 이 종목 올림픽 10회 연속 금메달이다.

한국 양궁의 첫 금메달은 1984 LA 올림픽에서 서향순이 따냈다. 당시엔 개인전뿐이었다. 단체전이 도입된 1988 서울올림픽에서 김수녕이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하며 2관왕에 올랐다. 한국의 독주는 거센 도전에 부닥쳤다. 여자 단체전 10연패를 기록한 36년간 토너먼트와 세트제, 슛오프 등이 도입되는 등 경기 규칙이 6차례나 바뀌었다.

코치진, 대회 끝난 뒤엔 수백장 보고서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네덜란드와의 준결승, 중국과의 결승에서 연거푸 한 발씩 번갈아 쏘는 연장전을 치렀다. 긴장한 상대와 달리 한국 선수들은 자신 있게 시위를 당겼다. 특히 결승에서 전훈영과 임시현은 보란 듯이 10점을 적중시켰다. 중국 리지아만은 “미래에는 한국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표정은 어두웠다. 한국의 올림픽 10연패 동안 중국은 결승에서 한국을 다섯 번 만나 모두 졌다.

한국 양궁이 승부처에 강한 비결. 무엇보다 과학적, 체계적 훈련의 결과다. 예를 들면 국가대표 평가전은 슛오프(동점 때 과녁 중앙에서 가까운 쪽이 승리) 방식으로 채점한다. 이처럼 한 발로 승패를 가려온 한국 선수에게 이번 대회 준결승과 결승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게다가 심리상담과 경기 전 습관(루틴) 관리까지 도입해 압박감을 극복하는 훈련도 해왔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비결은 한국 양궁의 공정 경쟁이다. 6~7개월에 걸쳐 수천 발을 쏘는 대표선발전과 평가전을 거쳐야 한다. 지난 대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제아무리 화려한 경력의 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국가대표 8명도 지난해 9월부터 남녀 각각 101명의 선수가 1~3차 선발전을 거쳐 선발됐다. 이어 두 차례 평가전 끝에 6명이 파리행 태극마크를 달았다.

실제로 2020 도쿄 올림픽 3관왕 안산도 대표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반대로 국가대표 경력은 있지만 큰 대회 경험이 없는 전훈영이 파리에 올 수 있었던 건 이런 시스템의 결과다. 대회 전 대표팀에 쏟아진 우려에 “나도 걱정했는데, 뽑힌 걸 어떡해요”라며 웃었던 전훈영은 금메달 직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칙에 기반을 둔 지원 시스템도 숨은 공신이다. 선수, 지도자는 계속 바뀌지만 문제가 없다. 훈련과 노하우가 체계적, 연속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대한양궁협회와 코칭스태프는 대회마다 수백 페이지 보고서를 작성한다. 대표팀 상징처럼 된 소음훈련도 이렇게 탄생했다. 또 파리 올림픽 양궁장과 환경이 비슷한 남한강변에서 바람 적응 훈련도 했다. 심지어 진천선수촌에 파리 올림픽 양궁장을 그대로 재현한 ‘쌍둥이’를 마련했다. 사대, 표적판 플랫폼, 카메라 박스, 심박수 측정캠, 입장 동선까지 올림픽을 재현해 모의시합을 치렀다.

김영희 디자이너

사실 여자 대표팀은 올림픽 전 두 차례 월드컵에서 파리 올림픽 결승 상대였던 중국에 패했다. 홍승진 총감독은 “선수들이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점점 좋아지고 있고 올림픽에선 100%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실제로 좋아졌다. 경기를 거듭하며 쏘는 순서를 최적화했다. 경기 중에도 계속 대화를 나누는데, 마지막 주자 임시현은 앞선 두 선수 슈팅 동작을 분석해 알려주고, 먼저 쏜 선수는 바람 정보를 전한다.

또 하나, 양궁 국가대표는 늘 “(개인전보다) 단체전 금”을 첫 번째 목표로 앞세운다. 함께 이루는 승리가 더 값지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결국 10연패라는 신화의 바탕이 됐다. 임시현은 “개인전은 실수하면 내 탓, 잘하면 내 덕이다. 하지만 단체전은 (실수하면) 세 명이 메달을 못 따는 거라 부담이 있고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대표들 “단체전 금이 첫번째 목표”
대한양궁협회는 체육경기단체 중 대표적인 모범단체다. 1985년부터 꾸준히 협회 회장사를 맡은 현대차그룹 덕분이다. 국내 단일 종목 최장기 후원이다.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그룹의 기술력을 활용한 화살 검사용 초정밀 슈팅머신,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비 등을 지원했다. 최근에는 대표선수들이 훈련용 슈팅로봇과 일대일 대결 훈련도 했다. 정의선(현대차그룹 회장) 협회장도 2008 베이징 올림픽부터 현장을 찾아 선수들을 챙겼다.

협회는 경기장 인근에 스포츠클럽을 통째로 빌려 양궁대표팀을 위한 전용 연습장도 마련했다. 남수현은 “훈련 여건이 너무 좋아 편안하다”고, 임시현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 (10연패라는)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협회에서 금메달 3개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3개는 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도 열심히 돕고 선수들도 열심히 해서 욕심나는 만큼 더 많이 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2024년 파리 올림픽 양궁 리커브 여자 단체전 금메달

「 전훈영
◦ 출생 1994년(30세)
◦ 소속 인천광역시청
◦ 주요 기록 2014 세계대학양궁선수권대회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

임시현 세계랭킹 2위
◦ 출생 2003년(21세)
◦ 소속 한국체육대학교
◦ 주요 기록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혼성 단체전 금메달·리커브 여자 단체전 금메달·리커브 여자 개인전 금메달

남수현
◦ 출생 2005년(19세)
◦ 소속 순천시청
◦ 주요 기록 2024 양궁월드컵 여자 단체전 금메달

자료: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

파리=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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