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가족의 재구성
내게 ‘가족’이란 그리 따뜻한 곳은 아니었다. 개척교회 목사 아들로서 경제적 어려움도 싫었지만, 목사인 아버지께서 제시하는 율법들의 기준에 맞춰야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느낌이 무거웠다. 또한 가족끼리의 유대를 가질만한 시간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 가족은 어색한 단어였고, 거의 언급하지 않는 단어였으며, 기회가 되면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단어였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치기 어린 시선이었으나 내게 가족은 그러했다. 그런데 이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심방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성도의 가족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감사하게도 평온한 가족 안에서 자라난 이들도 있지만, 나처럼 가족 간의 유대가 그리 깊지 않거나 심지어 깨진 가족이나 역기능 가족에서 성장한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짓누르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특이점의 시대가 도래한듯하다. 그간 인류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혈연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해왔다. 그런데 문명사 내내 한 번도 의심받은 적 없던 이 혈연 가족 개념이 해체되며 동시에 재구성의 과정을 밟고 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사회 교과서에는 우리 사회가 ‘확대 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말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제는 ‘1인 가족’ 혹은 ‘핵개인’이라는 말이 성행하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 앞에 부작용이 크다. 돌아갈 곳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이제 자신이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가족을 벗겨내 자유를 얻었으나 대신 불안도 얻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들은 흐름에 역주행한다. 여러 형태가 있는데 예를 들면 ‘동거’가 그렇다. 법적 테두리 밖 임의의 가족들을 만든다. 서로 아무 책임도 없지만 정서적 유대감은 취하고 가족이 있다는 안정감을 얻는다.
전혀 새로운 양상도 보인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임명하는 것. 어쩌면 굉장히 지혜로운(?) 선택들이다. 그런데 기존 가족을 해체하고 임의로 재구성한 가족들은 정말 괜찮을까. 앞서 예로 든 동거. 수틀리면 언제든 해체될 그런 관계에 가족이란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있을까. 또한 그사이 태어난 아이들은 어찌 되는 것일까.
반려동물은 어떠한가. 교감은 가능하나 사람 사이에서의 유대감까지는 불가하다. 그리고 간혹 반려동물을 사람과 동등하게, 혹은 그 위에 놓으려는 시도가 또 다른 사회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족이 꼭 이렇게만 규정돼야 할까. 사실 가족의 정의에 있어 유일하게 요청되는 조건은 다름 아닌, ‘나’라는 구성원을 받아주고 보호하고 사랑받음을 누리게 하는 집단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모든 것의 근원에 대해 말하는 창세기는 최초의 가족이 ‘혈연’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와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다만 타락한 가인 이후로, 가족은 ‘혈연’ 관계로만 축소됐다고도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가족은 ‘혈연’을 주제로 자기 중심성에 물든 죄인들의 모임이 돼버렸다. 때문에 혈연 가족은 당신을 반드시 실망하게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우리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건 가족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인들이 임의로 규정한 가족 역시 마찬가지로 반드시 당신을 실망하게 할 것이다. 주제만 다를 뿐, 결국 자기중심적 존재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제3의 길을 제안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와 사랑을 온전히 받게 된 자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입양돼 그분의 가족이 된 자들. 성령 하나님의 하나 되게 하시는 인도를 받는 이들이라면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게 교회다.
세상은 가족을 축소시키고 자아를 비대하게 하지만, 신앙은 하나님이 내 가족이 되어주시고, 또 다른 가족을 넓혀 누리게 한다. 그렇다. 교회공동체는 그런 곳이다. 가족이 되어주는 곳. 이를 통해 그가 보호받고 용납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누리는 곳. 이 땅의 교회들이 그렇게 현존한다면, 무언가 많이 달라질 듯하다.
손성찬 이음숲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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