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어느 작업복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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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동창인 Y는 울산의 한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다.
졸업하자마자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고, 부산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 있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어서.
자신처럼 생산직을 알아보라고 하기엔 요즘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는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작업복 입고도 열심히 일하면 집 한 채 장만하고,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시절은 애저녁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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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동창인 Y는 울산의 한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다. 그는 입버릇처럼 행운아라고 했다. 졸업하자마자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고, 부산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 있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어서. 그리고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잘 피해 왔기에.
이런 그에게 걱정이 하나 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나 된 외아들이 놀고 있어서다. 자신처럼 생산직을 알아보라고 하기엔 요즘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는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이런저런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만 전전하다 최근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업복 입고도 열심히 일하면 집 한 채 장만하고,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시절은 애저녁에 갔다.”
청년층 취업 문제는 그 집만의 일이 아니다. 취업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젊은이들은 숫자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대졸 이상 학력의 비경제활동인구가 월평균 405만8000명에 이르렀다.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구직을 포기했거나 그냥 쉬는 이들이 비경제활동인구다. 범위를 청년층(15~29세)으로 좁히면 20대 대졸자 가운데 비경제활동인구는 월평균 59만1000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7000명 늘었다. 구직활동을 길게 하고 있거나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층이 늘어나는 이유로 ‘양질의 일자리가 적다’고들 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대기업, 그리고 정규직이다. 전체 근로자의 약 14%만 이런 1차 노동시장에서 일한다. 나머지 86%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2차 노동시장에 있다.
1차와 2차 노동시장 사이에는 임금, 근로시간, 복지 격차라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자리한다. 단적으로 1차 노동시장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차 노동시장보다 1.7배 높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348만원, 비정규직은 188만1000원이다. 대기업 근로자 평균소득은 월 591만원, 중소기업은 286만원이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은 그동안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쪼개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내버려 둔 탓이 크다. 대기업으로 이익이 몰리고, 중소기업은 말라비틀어지는 산업구조에서 틈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Y는 아들 얘기를 할 때마다 한숨을 푹 쉬었다. 지방에 터를 잡은 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도권 대학에 보내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고 한탄했다. “아빠보다 잘살 자신도 없고, 잘살 수도 없는 세상이라는데 대꾸를 못 하겠더라. 미래가 없는데 결혼은 아예 꿈도 안 꾼다고 한다.”
어디에 손을 대야 하는지는 모두 알고 있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겨냥한 정부의 노동개혁은 헛돌고 있다. 곪을 대로 곪은 노동시장은 ‘국가비상사태’라는 저출산을 부추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1일 ‘2024 한국경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독립 챕터로 ‘인구 감소’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OECD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질의 격차, 육아휴직 같은 복지의 차이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누구나 1차 시장에 진입하길 원한다. 그래서 유치원·초등학교부터 사교육에 빠지게 된다. 교육과 취업 여건이 좋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이는 수도권 집값 급등을 촉발한다. 저출산과 지방 소멸에까지 이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Y는 자랑스럽게 여겼던 작업복이 이제 꼴도 보기 싫다며 눈물을 지었다. 아들이 처한 현실이 모두 자신의 탓 같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는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대기업은 이익을 낸다. 임금도 대기업 직원은 팍팍 오르는데, 협력업체는 기약 없다. 이게 현실이야. 이러니 다들 돈벌이 확실한 의사, 변호사, 대기업 정규직만 바라보는 거다.”
김찬희 편집국 부국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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