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겸손하지 못한 권력은 결국 국민 외면 받는다

2024. 7. 3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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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별 기대감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22대 국회에 대한 말이다. 서로 다른 정치 세력 간의 다툼이야 특별할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정치 엘리트라고 하는 국회의원이 보여주는 모습이 이 수준밖에 안 될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격조와 절제는커녕 고함, 삿대질, 욕설이 난무하는 저잣거리의 싸움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거나 “당신은 겁쟁이야”라는 말은 우리 국회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말로 받아들여지지만, 좀 나은 정치를 하는 국가에서는 이 정도 말도 의회의 품격을 해치는 비의회적 표현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영국 의원이 의회에서 이런 말을 썼다면 하원의장의 지적을 받고 심지어 한동안 의회 출입을 못하는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성질을 다스리고 절제된(good temper and moderation) 언어 사용을 의회 정치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의 발전에 비해 정치는 여전히 개도국 시절의 4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 22대 국회, 여전히 4류 수준 행태
여야 모두 책임, 민주당 잘못 커
탄핵 남발은 완장 찬 힘자랑 해당
국민의 권력 집중 우려 직시해야

이렇게 된 데에는 여야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현재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다수당 민주당의 잘못이 더 커 보인다. 문제 삼을 만한 곳은 여럿이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법사위원회다. 정제되지 않은 말과 고압적 태도로 지켜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법사위원장은 무려 4선 의원이란다. 그렇게 긴 시간동안 국회에 있었다는데 도대체 정치를 어떻게 배웠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들었다. 요즘 그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말하면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 나오는 저수지 감시원 종술이나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를 보는 느낌이다. 절제도 신중함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힘자랑, 곧 완장이다.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이 정청래 위원장에게 의사 진행 방식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청래 의원뿐만 아니라 지금 민주당의 전반적인 모습이 완장을 찬 종술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힘을 과시하는데 너무나 거리낌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탄핵이다. 매우 예외적이고 제한된 상황에서 사용되어야 할 탄핵이 행정부나 사법부를 압박하는 손쉬운 정치적 도구로 가볍게 활용되고 있다. 탄핵으로 몰아갈 명분 축적도 없고 ‘직무상의 중대한 비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약한 상황에서 정파적 이해관계를 위해 ‘가진 힘’을 마구잡이로 쓰고 있다.

민주당은 무리하게라도 의회 권력을 활용해서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면 집권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면 2016~2017년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생각은 좀 다르다. 요즘 민주당을 바라보면 이 정당이 대통령 권력까지 차지하면 우리 정치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든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해서 입법부는 물론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직까지 가져가게 되면 말 그대로 ‘민주당 천하’가 될 것 같다. 국회 의석 175석에 우군까지 합하면 190석에 가까운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정치 세력이 대통령과 행정부를 장악하게 되면, 지금도 권력 행사가 절제되지 않는데 그 때는 지금보다 더한 방식으로 사법부를 압박할 수도 있을 것이고, 결국 모든 권력을 하나의 정치 세력이 독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도 간 권력의 분립이나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작동되기 어려워질 것이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를 비롯한 야당 법사위원들이 대통령 탄핵발의청원 증인 출석요구서 대리 수령 약속 번복 관련 야당 법사위원 대통령실 항의 방문을 위해 1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이동하던 도중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물론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이런 우려를 갖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오늘날 민주당이 당내 이견이 용납되지 않는 일사불란한 단일대오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에 민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당의 지도자인 대통령 한 사람이 ‘민주당 천하’를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의 집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주주의에는 언제나 부정적으로 작동했다.

정국을 주도하지만 민주당은 여태껏 제대로 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힘에 의한 일방주의가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집권 이후 ‘민주당 천하’에서라면 집중된 권력 하에서 이러한 일방주의의 유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은 그만큼 더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지금 민주당이 누리는 의회 권력의 짜릿함은, 절제되거나 관리되지 않는다면, 민주당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야당은 반대당(opposition)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집권 대안세력(government-in-waiting)으로도 불린다. 야당이라고 해도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라 집권을 위한 역량과 신뢰,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겸손하지 못한 권력은 결국 국민의 외면을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총선 때 그로 인해 엄한 벌을 받았다. 향후 선거에서 겸손하지 못함에 대한 평가 대상은 아마도 민주당이 될 것이다. 마구잡이로 휘두를 때보다 칼집에 들어있을 때 칼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법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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