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는 노인 따귀 때렸다…여름밤 감옥, 공포의 그날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강주안 2024. 7. 3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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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위험 커지는 구치소 과밀수용〉

강주안 논설위원

증오와 폭력의 계절이 돌아왔다. 6만2000명이 사는 교도소·구치소 얘기다. 여름이 되면 교정시설은 찜통이 된다. 특히 61년 전에 건립된 안양교도소(소장 신동윤)를 비롯해 30년 이상 된 구금시설 28곳의 맨 위층은 지붕이 흡수한 태양열이 그대로 재소자에게 전달된다. 펄펄 끓는 기후 위기에 수도권 교정 시설마다 정원의 140%가 넘는 과밀수용까지 겹쳐 위태로운데도 수용동엔 에어컨이 없다.


낡고 푹푹 찌는 교도소·구치소


재소자들은 밤이 두렵다. 나란히 누워서 잘 공간이 안 나온다. 서로의 어깨가 짓눌리는 걸 피하기 위해 머리와 발을 교차로 누워 서로의 발 냄새를 맡으며 자곤 한다. 한밤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열대야에 밀집한 몸이 뿜는 36.5도의 열기는 인간의 심성에 악만 남겨놓는다고 경험자들은 증언한다.
최근 출소한 전직 고위 공직자는 “구치소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직접 생활해보니 여름철 위험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한 구치소 통계가 증명한다. 지난해 8월 그곳에선 재소자 간 폭행이 229건 벌어졌다. 1월(117건)의 거의 두배다. 통계에 안 잡힌 폭력이 훨씬 많다. 과밀수용이 주범이다. 경제 범죄로 3년 정도 수감됐던 A씨는 한여름에 거동이 불편한 70대 노인이 당한 일을 떠올렸다.
“9명 정원인 방에 15명까지 수용됐어요. 밤이면 옆 사람 뒤통수를 보며 칼잠을 잤습니다. 온종일 땀이 흐르니 체취가 심합니다. 변을 보면 물로 씻기로 했습니다. 휴지로만 닦으면 계속 냄새가 나요. 거동이 불편한 70대 노인이 잘 안 씻었어요. 대체로 노인들이 여름엔 기운이 없으니 잘 안 씻어요. 무더위 속 악취에 흥분한 젊은 녀석이 노인에게 ‘좀 씻어’라며 따귀를 때렸어요.”

열대야 고통 속 똑바로 못 눕고 서로 발 냄새 맡으며 자

폭행을 저지르면 징벌을 받고 심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촘촘한 공간에 들어간 수만 명을 소수의 교도관이 완전히 감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 성범죄 전과자의 증언.

“제가 코를 좀 고는데 옆자리가 살인미수범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코를 조금씩 골게 되는데 그때마다 세게 때렸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죠. 신고하고 싶지만, 잠버릇이 심한 거라고 발뺌을 하더군요.”


정원 5명 방에 9명 수용

현장 확인을 위해 법무부에 노후한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소장 김문태) 현장 취재를 신청했다. 비교 차원에서 서울 동부구치소(소장 박경선) 방문도 시도했다.
지난 26일 오전 10시쯤 서울구치소를 찾아갔다. 기온이 30도 정도로 푹푹 찌는데 건물에 들어서도 시원한 느낌이 없다. 가장 위인 3층에 올라갔다. 건물이 낡은 탓인지 3층은 더 덥다. 금세 땀이 난다. 정원 5명 방에 9명이 있다. 교도관이 문을 열자 방에서 열기가 나온다. 체취도 코를 찌른다. 순간 “방에서 서열 높은 사람이 문 쪽 자리를 차지하는데, 복도가 그나마 기온이 낮아 철문에 살을 대면 좀 낫기 때문”이라고 했던 출소자 얘기가 떠올랐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9명이 누울 수 있을까. 문밖을 보니 취침 자리를 지정한 그림이 붙어 있다. 5명은 세로로, 3명은 가로로 누우며 1명은 화장실 문 쪽에 붙는다. 작은 상자에 과다한 짐을 욱여넣는 요령을 설명하는 매뉴얼 같다.


화장실서 물 끼얹으며 열 식혀


이곳을 거쳐 간 전직 차관급 인사는 “여름철 혹서기엔 에어컨이 필요하다”며 “이는 복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전직 금융권 인사는 “차라리 징벌방에 혼자 있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사고를 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교정 당국은 치솟는 기온에 에어컨 설치를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교도관 사이에서도 “죄수에게 무슨 에어컨이냐”는 반대가 나왔다. 병동 복도에만 설치하고 중단했다. 이를 두고 인터넷엔 “교도소가 호텔이냐”는 비난 글이 올라온다. 한 전직 경찰 고위 간부는 “쪽방촌 노인도 에어컨 없이 지내는데 교도소 에어컨 설치는 국민 정서에 안 맞는다”고 말했다.


“생존 위해 에어컨 필요” vs “죄수가 호텔방 왔냐” 논란


이런 반감에 대해 한 전직 이사관은 “밖에선 못 견디게 더우면 외출이라도 하지만, 교도소에선 옴짝달싹 못 하니 폐소공포증까지 엄습한다”며 “양계장 닭들도 여름엔 물을 뿌려주는데 수용자는 닭만도 못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도관은 “죄수라 안 된다는 논리면 겨울에 난방은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에어컨이 예산을 절감한다는 주장도 있다. 엄청난 수도요금 탓이다. 한 출소자는 “교대로 화장실에서 물을 끼얹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한다. 교도소 화장실엔 샤워 꼭지가 없다. 물통에 모아 바가지로 끼얹으니 물 소비가 많다.
한 교도관은 “물 사용을 단속하지만, 수많은 방 화장실을 일일이 들여다볼 수도 없고 실내 온도가 너무 높아서 안전상 막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 교도소 간부는 “서울구치소나 동부구치소는 한 달 수도료만 5억원이 넘어 전기요금의 몇배가 된다”고 했다. 차라리 에어컨 트는 게 절약이란 얘기다.
한 교도소에서 12명이 있는 거실의 화장실 모습. 수용자가 폭염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서 물로 더위를 식히는 일이다. 수용동 온도가 너무 높아 구매한 음식이 상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수용자들은 화장실 물통에 음식을 담아 보관하는 일이 잦다. 법무부




서울구치소 한찬희 교위는 “과밀수용은 폭력과 청결 등 안전상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며 “특히 요즘 여성 수용자의 과밀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보이스피싱 연루자 등을 대거 검거하면서 여성 수용자 여건이 심각하다. 정원의 200%를 넘긴 교도소들도 있다.

보이스피싱 사범 늘며 여성 교도소 수용률 200% 넘기도

주혜란 여성처우팀장은 “너무 더우니 낮에도 전등을 꺼준다”며 “안타깝지만 해줄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주 팀장은 “여성 수용자도 옆 사람 발을 보며 자거나 코 고는 데 따른 문제가 커진다”며 “사회 복귀 준비가 중요한데 관리에만 급급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반발에 교도소 신축 못해


과밀수용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도 계속 경종을 울렸다. 헌재는 2016년 과밀수용이 기본권 침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역시 1인당 2㎡ 미만 거실에 수용된 사람들이 낸 소송에서 잇따라 국가배상 인정 판결을 내렸다. 그래도 개선이 안 된다. 현장을 돌아보며 계산하니 한 사람당 2㎡에 못 미치는 방이 수두룩하다. 시설 부족으로 미결수는 구치소에, 기결수는 교도소에 분리 수용하는 원칙은 무너진 지 오래다. 해결을 위해선 새 건물을 짓거나 노후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 지역 반발과 이를 부추기는 일부 정치인이 암초다.

수도권 교정 시설 수용률 150% 육박하며 사고위험 커져


1963년 지어진 안양교도소의 모습. 주변에 새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교도소의 재건축이 진척이 안 돼 주변 경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서울 동부구치소를 비롯한 공공기관 옥상에 태양광 발전 장치를 설치하고 있지만 이곳은 안전 우려로 설치하지 못한다. 서울구치소를 비롯한 낡은 교정시설 건물들은 태양광 패널 설치에 제한이 크다. 법무부

안양교도소의 경우 시설 현대화를 위한 행정소송에서 2014년 대법원 승소 판결까지 받았으나 10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이다. 2022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가 안양시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고 박성재 장관도 직접 현장을 방문했으나 진척이 더디다. 현대식 건물로 지은 서울 동부구치소에 비하면 흉물에 가깝다. 2017년 완공한 동부구치소는 건물 외관이 깔끔하고 법원·검찰청이 함께 있어 재소자가 수사나 재판을 받으러 갈 때 차량이 아니라 지하로 걸어서 이동한다. 보안과 인권 측면에서 진일보한 방식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에선 법원·검찰청과 구치소를 함께 조성하는 ‘저스티스 콤플렉스’가 많이 생기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1] 2017년 건립한 서울 동부구치소는 법원·검찰청사와 나란히 자리했다. [2] 1963년 지은 뒤 지역 갈등으로 재건축을 못한 안양교도소는 주변에 안 어울리는 흉물이다. [3] 내부는 붕괴를 막으려 쇠기둥을 설치했다. 법무부


구치소 증설이 어렵다면 수감자 수라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검찰의 영장 청구나 법원의 법정 구속이 늘수록 과밀은 심각해진다. 모범수의 가석방을 늘리는 것도 한 방편이다.
지난 23일 오후 찾아간 안양교도소는 복도에 기둥이 촘촘하다. 붕괴 방지용이다. 강당은 안전 문제로 사용을 중단했다. 맨 위층 12명 수용실을 들어가니 후끈한 열기와 강한 냄새가 엄습한다.


“생존권 보장해야 교정 가능”


문득 정부가 최근 펴낸 ‘북한 인권 2024’가 떠올랐다. 처참한 상황을 고발하는 내용 중 ‘피구금자의 권리’가 있다. ‘북한의 구금시설에선 수감자들을 좁은 공간에 구금’한다면서 ‘피구금자마다 방 한 칸이 제공돼야 하며, 공동침실의 경우 서로 원만히 지낼 수 있는 수의 피구금자들을 수용할 것을 권고’한다고 지적했다. 삽화로 그려진 북한 수용실의 밀집도는 취재 과정서 본 남한 구치소·교도소보다 나아 보인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권수진 실장은 “몇 년 전 부산교도소에서 여름철 사망 사건까지 일어났다”며 “인간으로서 최저 수준의 생활이 보장돼야 교정과 교화가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재소자들을 돕는 현대일 신부는 “교정시설이 공기청정기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며 “ 과밀 해소가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정 시설은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곳인데 지금처럼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며 “냉방장치를 포함해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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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유치해 많은 혜택"


대한민국 제10대 법무부 교정본부장
신용해 법무부 교정본부장(사진)은 29일 “지구 온난화와 과밀수용이 맞물려 수도권 구치소의 거실 온도가 30도를 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름철 과잉수용에 인권 문제가 제기된다.

“이상 기후 속에서 수용 편의가 아니라 생존 등 인간의 기본권 문제가 되고 있다.”

-과밀수용이 왜 해결이 안 되나.

“지역주민의 반대와 지자체의 노력 미흡이 교도소 신축을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교정시설 주변이 정말 위험한가.

“많은 요원이 사법 절차를 수행하고 있어 오히려 안전하다. 최근 개청한 거창구치소와 대구교도소는 테니스장과 어린이집을 주민들이 이용하며 주민 채용과 지역 농산물 구매로 호응을 얻는다.”

교정 시설 책임자들은 기후 위기 속에서 수용자들이 폭염에도 안전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한다. 수용실 온도가 너무 높아져 위험할 때는 강당에 모이게 해 위기를 넘기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수용자들이 거실에 머물러야 하는 야간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고민이라고 한다. 과밀수용을 해결하기 위해선 교도소와 구치소 신설이 시급하나 일부 지역의 반발로 어려움이 크다며 교정 시설은 매우 안전할 뿐 아니라 시설이 들어서면 주민 채용 등 지역에 혜택이 많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박경선 서울 동부구치소장(왼쪽)과 신동윤 안양교도소장. 법무부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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