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진퇴양난 ‘의정 대치’에 돌파구 필요하다
정부의 의대 정원 1509명 증원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렇다 보니 일반 국민은 정부 안에 반대하며 휴진을 불사하겠다는 의사협회뿐 아니라 학교와 병원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경우라도 의료인은 진료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과대학의 학사제도와 병원의 인사체제를 바꾸면서까지 안간힘을 써도 의대생과 전공의는 복귀하지 않을 것 같다. 의료 개혁 와중에 가까스로 운영되는 병원에서 진료사고라도 발생하면 의사들에 대한 환자와 가족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별다른 돌파구 없이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머잖아 다가올 파국과 재앙이 걱정된다. 정부 정책에 불만을 토로하며 휴진을 공언했지만, 의사들은 전공의의 빈자리를 메꾸며 의료 공백을 최소화시켰다. 하지만 필수의료 부문 진료와 고난도 치료의 보루인 대형병원의 경영은 거의 파탄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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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별휴학 허용해 증원 충격 덜고
전공의 사직과 이직도 허용 필요
의학교육의 총체적 혁신도 시급
」
의대생 대량 유급과 전공의의 사직으로 의사 인력 배출까지 급감하면 의대 증원을 통해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계획과 목표가 틀어진다. 아무런 개선 없이 재원 확보를 위해 진료수가만 인상한다면 의료비를 급증시켜 국민의 저항을 부를 수도 있다. 의대 교육은 또 어떤가. 증원에 따라 상당수 지방 의대가 서울의 ‘빅5 병원’ 의대보다 학생을 더 많이 받는다. 하지만 병원 규모와 교수 수는 몇 분의 1에 불과하다. 세간에 살기 편하다고 인식되는 수도권 소재 의대와 2차 병원으로 지방 의대 교수와 스텝의 이직 열풍이 시작되면 지방의대의 부실화는 회복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다 엉망이 된 학사 관리 시스템까지 더해지면 의대 증원에 따른 이공계 ‘반수 열풍’에 더해 미래가 불안해진 지방 의대생들이 수도권 의대 입시 태풍을 몰고 올 것 같다. 생사를 거는 대학 입시 경쟁에 의대 증원의 부작용이 겹치면 단순히 이공계 기피뿐 아니라 수도권 의대 쏠림과 지방대 의대 부실로 번질 것이다.
얽히고설킨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고민해보자. 불법을 자행했다며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을 계속 몰아붙이는 것이 과연 상책일까. 오히려 의대생들의 개별 휴학을 허용해 증원 충격을 완화하면 어떨까. 학생 스스로 계획을 세워 점진적으로 복학하면 대량 유급을 피할 여지가 생긴다.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적응하도록 전공의들의 사직과 자유로운 이직도 허용했으면 한다.
인기 진료 분야의 일반 의사 초봉이 의정 갈등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고, 해외 이직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의학도들의 불안과 불만을 정부가 보듬어 학업과 수련에 정진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어렵사리 구축한 1, 2, 3차 의료전달 체계를 유지할 인력이 확보된다.
필수진료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 대형병원 운영과 온라인 진료 등 수도권과 지방을 묶고 의료 인력을 개방형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의료계가 검토했으면 좋겠다. 경영이 어려운 지방병원 설립보다는 수도권과 지방의 기존 병원들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강화해 지역의 필수의료, 응급 진료, 재난 의료 기능을 강화하면 어떨까. 이제는 기업의 의료사업 투자 촉진을 위해 정책 수정과 인센티브를 강화할 때도 됐다.
의대 증원 이후 처음으로 올해 대입 수능 시험을 치르면 청소년과 학부모의 혼란과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제대로 된 의학 교육과 의사 양성을 위해 교육의 총체적 혁신이 시급하다. 성적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적성과 재능을 중시하는 공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자녀들이 의대나 인기대학 진학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해도 고소득 취업이 보장되고,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해 학부모의 선택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각 대학 교수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교육 문제는 물론 양극화에 따른 사회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의료 개혁 성공을 위해서라도 피교육자인 의대생과 전공의는 물론 의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좀 더 배려해야 한다. 그들이 바로 미래 의료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의사 집단도 자세를 낮추고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주기 바란다. 의정 갈등 와중에도 힘겹게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인들에게 따뜻한 시선도 필요한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정묵 서울대교수회 회장·농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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