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근의 시선] 정치도, 정부도 안 보인다

조민근 2024. 7. 3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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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경제산업디렉터

사흘이나 이어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청문회를 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었던 건 단지 그 공방의 수준 때문이 아니었다. 결론이 뻔한 이슈에 묻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법안들이 눈에 밟혀서다. 무한 정쟁의 배경인 MBC 사장 선임이 중요한 문제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래 봐야 일개 방송사다. 미래가 걸린 경제·민생 법안들까지 모조리 팽개쳐둘 만큼 정말 사활이 걸린 문제일까.

그중 하나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과방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AI(인공지능) 기본법’이다. 미래 핵심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유럽연합(EU), 미국 등이 저마다 입법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다. 국내에서도 지난 21대 국회 때부터 관련 법안이 발의되긴 했다. 하지만 지루한 방송법 공방에 밀려 결국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야에서 6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조차 못 했다.

「 국회는 타협 없는 무한 정쟁
정부는 결기 없이 눈치만 봐
누굴 믿고 불확실성 돌파하나

기업들은 애가 탄다. 어떤 규제가 도입될지, 또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멀찌감치 앞서가는 해외 빅테크를 쫓아가야 하는 형편이니 말이다. 오죽하면 업계에서 국회 과방위를 과학기술과 방송으로 나눠달라는 호소까지 나왔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 과방위 소속 20명의 여야 의원 중 과학기술 분야 출신은 단 5명뿐이다. 대부분은 언론, 정치권 출신이다.

국회가 이 모양이니 민간 경제 주체들이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를 돌파할 결기나 일사불란함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거대 야당과 용산 대통령실 사이에 낀 채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주 나온 세법개정안이 그랬다. 28년 만에 상속세를 대폭 손보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상속세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40%로 내리고, 최대 주주의 할증도 없애겠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당초 대통령실이 최고세율 30%를 들고 나오고, 기재부는 난색을 표하며 최대 주주 할증만 없애는 안을 검토하던 상황에서다. 논쟁적인 이슈인 만큼 정부가 추진을 결심했다면 언론 브리핑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적극적인 여론 설득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기업 승계와 경제 선순환 측면에서 제약이 있다”는 원칙적이고 건조한 설명이 전부였다. 왜 40%로 결정됐는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최고 세율 26%와 주요국들의 상황을 감안했다는 정도다. 이래서야 거대 야당의 ‘부자 감세’ 프레임을 돌파할 수 있을까 싶다. 정부 역시 국회 문턱을 넘어가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용산 눈치에 마지못해 집어넣은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드는 건 그래서다.

정부가 불확실성을 줄여주긴커녕 스스로 혼선을 만들기도 한다.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르자 정부는 1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이런 류의 회의에서 핵심은 시장이 과열로 향하지 않도록 명확한 신호를 주는 것이다. 최상목 경제 부총리는 이날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추가 공급 확대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정작 공급대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에서 “공급은 충분하다”는 결이 다른 뉘앙스의 언급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앞서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추세 상승은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언급한 뒤다. 물론 부처마다 상황 판단이 다를 순 있다. 그래서 관계장관 회의도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엇갈리는 신호가 지속할 경우 시장은 혼란에 빠진다. 결국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이 18주 연속 상승했다는 집계가 나오자 정부는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부랴부랴 다시 내놔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주체들은 불안하다. 미국 대선 결과가 세계 경제의 판도를 어떻게 뒤바꿀지, AI 혁명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도무지 가늠하기 힘들다. 2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금융사의 최고경영자조차 “요즘은 1년은커녕 당장 6개월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잘못 삐끗하면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조마조마하다”고 고충을 전했다. 이런 기업인들이 늘다 보니 요즘 경영 컨설팅업계가 때아닌 호황을 맞았단다. 하지만 자구책만으론 부족하다. 시급한 현안에 최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향후 닥칠 수 있는 상황별로 촘촘한 대비책을 세워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줄여줘야 한다. 그게 민생을 외치는 정부와 여당, ‘먹사니즘’을 들고나온 야당이 할 일이다.

조민근 경제산업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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