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코끼리 코가 장화만 하던 시절에
덥고 습한 나날, 가히 우기라 불러도 좋을 여름의 복판을 통과하고 있다. 이럴 땐 아예 책 속의 정글로 숨어버리면 어떨까. 『정글북』으로 잘 알려진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동물 동화 『아빠가 읽어주는 신기한 이야기』는 모두 ‘기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표범의 얼룩은 왜 생겼을까?’ ‘코뿔소의 가죽은 왜 쭈글쭈글할까?’ ‘게는 어떻게 집게발을 가지게 되었을까?’ 등등. 키플링이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함께 이 수수께끼들은 만족스럽게 풀린다.
가장 사랑스러운 주인공은 아기코끼리가 아닐까 싶다. 코끼리의 코가 장화만 하던 시절, 호기심이 넘치는 아기 코끼리는 온종일 질문을 던진다. 어른들은 대답을 알려주기는커녕 늘 엉덩이만 찰싹찰싹 때린다. 그러다 “악어는 저녁으로 무얼 먹나요?”라고 물었더니 모두가 달려들어 단체로 엉덩이 찜질을 한다.
이에 굴하지 않고 림포푸 강으로 향한 아기코끼리는 겁도 없이 당사자에게 묻는다. 이 아기의 운명은? 코끼리의 현재 모습을 알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이미 힌트가 있다. “저녁으로 코끼리를 먹지!” 대답과 함께 와락 코를 문 악어,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아기코끼리, 구해주려고 코끼리 다리를 감고 반대쪽으로 잡아당기는 비단뱀, 이렇게 양쪽으로 당기고 당겨서…지금처럼 코끼리의 코가 길어진 것이다.
이 길어진 코로 아기 코끼리는 귀찮게 하는 파리를 탁 쳐서 쫓고, 과일을 따 먹고, 더우면 진흙을 끼얹어 모자를 만들어 쓴다.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자기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쳐댄 모든 어른의 엉덩이를 갈겨주는 결말은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우리에게 닥친 불운이 정말 불운이기만 할까. 길어진 코는 못생겨 보일지는 몰라도 쓸모는 대단히 많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까지 매료시킬 만큼 키플링의 동화는 풍요롭고 환상적이다. 게다가 좋은 동화만이 일으킬 수 있는 마법, 어른에게서 아이를 끌어내는 마법을 부린다.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내듯이.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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