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KBS교향악단과 정명훈의 가치

2024. 7. 3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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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정명훈(71)이 KBS교향악단의 유력한 차기 상임 지휘자란 기사가 쏟아진 건 7월 초였다. 지난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정명훈과 KBS향의 연주를 봤다. 유유자적해진 슈베르트 교향곡 ‘미완성’에서 더욱 깊어진 음악성을 느낄 수 있었고 로시니 ‘스타바트 마테르’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합창이 극적인 인상을 남겼다.

KBS향의 계관 지휘자인 정명훈은 2021년 당시 음악감독 최종 후보 중 하나였다. 현 감독 잉키넨의 3년 임기가 올해 말 종료됨에 따라 차기 지휘자로 다시 거론된 것이다.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과 지휘자 정명훈의 공연 모습. [사진 KBS교향악단]

정명훈에 대해 단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우호적이다. 함께 연주를 여러 차례 하면서 많이 익숙해졌고, 2021년 새로 들어온 젊은 신규단원들은 좀 더 긍정적이라고 KBS향 관계자가 전했다. 정명훈은 26년 전인 1998년 KBS향에 제5대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1983년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던 정명훈은 장기계획의 부재, 복잡한 결재과정, 관이 주도하는 음악행정의 부족한 전문성 등을 이유로 거절했었다. 뛰어난 독주자들에 비해 발전이 더딘 한국 오케스트라의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음악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연간 10주간 한국에 머물며 10회의 공연을 지휘하는 조건이었다. KBS향의 발전을 위해 정명훈은 피렌체 극장 상임 지휘자 출신 주세페 메가를 부지휘자로 영입해 자신의 부재중 단원들을 훈련할 것을 요구했지만 1998년 IMF 사태가 터지자 부지휘자건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해 4월 정명훈은 부지휘자 영입 외에 스튜디오 확보, 악보, 상임 지휘자실 등 약속이 이행되지 못했다고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허니문 기간도 없이 짧게 끝나버린 26년 전과 달리 정명훈과 KBS향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때 어느 오케스트라도 음악감독을 맡지 않겠다던 정명훈이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고국에 기여하고 헌신하며 마무리하고 싶다”는 심경을 지인들에게 밝혀왔다고 알려졌다.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KBS향은 2016년부터 연간 108억원을 KBS로부터 받고 있다. 그 마지막 해가 내년 2025년이다. 이후에는 새로운 업무협약을 맺어야 한다. 티켓 가격 대폭 인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을 때 명망 높은 정명훈이 KBS향의 얼굴이 되는 건 최선의 그림이다. 악단의 이미지도 제고되고 기업의 펀드레이징으로 숨통이 트일 수 있으리란 관측이다. 오늘날 지휘자는 예술적 탁월함은 기본이고 예산을 끌어오는 역할을 요구받는 게 세계적 추세다. 공연장 객석에서 감동을 하는 청중이 그 수혜자가 될 것이다.

10년 전 서울시향 사태 때 “너무 많이 받는다”고 거칠게 대중의 대화에 오르내렸던 정명훈의 예술적 가치는 이번 KBS향과의 동행을 통해 더욱 폭넓게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KBS향의 차기 음악감독은 9월 전에는 확정될 전망이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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